대전지역 작가들, 프랑스 파리서 '예술혼' 태운다
오는 8월부터 10월까지 세 달 동안 유럽 미술 현장 탐방
박용선 "인간·시간에 관심… 장르 관계 없이 표현 다채"
정지수 "공통 체험, 시각적으로 표현… 순환 도구 연구"
허은선 "행위 예술 실험 집중… 평면적 기록 실험 과정"
대전 이응노미술관은 지역 내 예술가들이 국제적 감각을 기르고 창작 활동의 새로운 동력을 찾을 수 있도록 해외 프로그램과 작업 공간을 지원하고 있다. 일명 '파리이응노레지던스' 사업이다. 레지던스 입주 작가로 선정된 예술가들은 8월부터 10월까지 세 달 동안 프랑스 파리 인근 보-쉬르-센(Vaux-sur-Seine)에 머무르며 유럽 미술 현장을 탐방하고 비평 워크숍, 파리 갤러리 개최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미술관은 해마다 세 명의 작가를 파견 보내는데, 지난해까지 총 24명의 예술가들이 선발됐다. 올해는 박용선, 정지수, 허은선 작가가 대전을 대표하는 입주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을 만나 어떤 작품관을 지니고 창작 활동에 매진하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박용선= 사물이나 현상의 '이면'을 주요 작업 주제로 삼고 있다. 최근에는 인간과 시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작업하고 있다. 조각을 전공했지만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설치, 입체, 회화 등도 병행하는 중이다. 근래에는 영상 작업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표현 방식이 자유로운 편인다.
정지수= 존재의 변화를 겪는 '몸'의 다양한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 계속 변화하는 몸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누군가 죽거나 사라지더라도 육체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다른 물질로 변화된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몸이 어떤 물질로 순환할지 공상하면서 그림으로 표현한다.
허은선= 대전을 주둔기지 삼아 활동한 지 11년 차에 접어들었다. 서양화를 전공했으나 관객을 집적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에 행위 예술(퍼포먼스) 관련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일상에서 경험한 기억이나 감정을 행위로서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한다. 요즘에는 그 기억과 감정을 평면적으로 기록하는 작업에 집중하는 단계다.
◇파리이응노레지던스에 참여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박= 대전을 연고로 둔 작가들은 이응노레지던스에 관심이 많다. 해외 현지에서 활동하는 데다 전시까지 이뤄지는 프로그램 기획을 좋아들 한다. 다만 3개월간 먼 이국의 땅에서 살기 힘드니까 각오가 필요했다. 더 늦으면 망설임이 더욱 커질 거란 생각에 열심히 준비해서 응모했더니 운이 좋아 함께하게 됐다.
정= '대전', '이응노', '파리' 세 가지 열쇠말이 관통했다. 대전에서 나고 자랐지만, 학업을 이어가다 보니 서울 생활에서 생활한 지 10년 넘었다. 타지에서 혼자 살면서 대전이란 공간은 '정서적인 집'으로 기능했다. 게다가 이응노미술관이 대전에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위안이 됐다. 프랑스 파리도 마찬가지다. 대전이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면, 파리는 화가로서 시작점이라고 말해도 좋다. 대전에 있는 이응노미술관에서 파리로 파견을 보낸다니,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허= 개인적으로 관심 갖고 지켜보던 레지던스다. 3개월간 해외에 머문다는 건 긴 시간이지 않나. 10년 정도 쉴 틈 없이 작업을 쏟아내기만 했다. 쉼표를 찍고 뒤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지금까지의 창작을 돌아보고 작가로서의 방향을 확고히 다지고 싶었다. 행위 예술은 결국 사라지기 때문에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아쉬움이 남는 작업이다. 이응노 선생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한 예술가다. 이응노 선생이 머물렀던 공간에서 그동안 쌓아온 행위를 표면적으로 탐구하고자 한다.
◇평소 어떤 시선과 태도로 작품을 대하는지 알고 싶다.
박= 창작은 하나의 언어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는 큰 관심이 없다. 구체적인 형상보다 언어로 의미를 전달하고 싶다. 작품을 통해 관객과 관계를 맺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관객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질문하고, 대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정= 그림은 하나의 인격체다. 개인적인 체험이 시각적으로 표현된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는데 긴 터널을 지나고 지상으로 나오는 순간 객석에 앉은 모두가 동시에 한강을 바라본 일이 있다. 그때의 기억으로 '바다의 조각들'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서로 모르는 관계인데도 약속한 듯 고개를 돌렸던 이유가 '우리는 모두 바다에서 온 조각들이기 때문 아닐까'라는 상상을 했다. 이처럼 그림을 통해 공통된 체험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고 싶다.
허= 작품을 대하는 가치관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여러 감정을 품고 살지 않나. 내 행위 예술을 통해 보편적인 감정과 맞닿고 싶다. 양파를 까면서 우는 작업을 한 적 있다. 내가 우는 이유는 따로 있는데 '양파가 매워서'라고 둘러대는 것처럼, 다양한 감정을 행위라는 방식을 통해 삶과 연결 짓고 싶다.
◇파리에서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은지 궁금하다.
박= 작업을 이어온 세월만 20년이 넘는다. 작품 세계가 안정화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고립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젊을 때와 다른 딜레마다. 프랑스 현지에서 조금 더 나를 열어놓고 정서적 환경을 받아들이고 싶다. 이질적인 공간에서 내 변화를 살펴보고 관찰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정= 순환되는 도구나 재료를 연구해보고 싶다. 선조들이 동굴에서 벽화를 그릴 때는 붓 같은 미술 도구가 없지 않았나. 프랑스에서 입주하게 될 공간도 자연 속이더라. 나뭇가지나 이파리, 풀 등을 엮어서 붓 대용으로 쓸 수 있을 테고, 꽃이나 마른 잎을 전통 재료에 섞어 물감으로 활용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허= 자연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재료를 프린트 위에 실험해보고 싶다. 주된 창작 재료인 '솜이불 조각'을 이번에도 들고 갈 것이다. 이응노 선생이 머물렀던 공간에서 번뜩이는 영감을 얻어 이불 속에 켜켜이 녹여내고 전시하고 싶다. 그전에는 솜으로 작업을 하더라도 행위가 끝나고 나면 다시 새것처럼 깨끗하게 만들어 재사용했는데, 앞으로는 작업했던 공간에 따라 다르게 구성하고 싶다. 대전에서 작업하면 '대전 이불', 파리에서 작업하면 '파리 이불' 하는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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