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총수 이혼 소송에 이례적 그룹 차원 대응, 이유는?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로 위기감에 휩싸였다.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사옥에서 열린 재판 관련 현안 설명회에 최 회장이 직접 등장한 배경도 항소심 판결이 총수 개인의 사생활 이슈에 그치는 것이 아닌 '지배구조 리스크'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전날 밤까지 참석 여부를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번은 앞에 나와서 직접 사과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 이 자리에 섰다"는 게 최 회장의 설명이다. 최 회장은 지난 3일 SK수펙스추구협의회와 사내 게시판을 통해 입장을 낸 바 있다. 다만 공식 석상에 직접 나서 사과한 것은 지난달 30일 항소심 판결 이후 18일 만에 처음이다.
실제 항소심 판결 이후 재계는 크게 술렁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 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할 것을 판결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이 주식 외에 다른 형태로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2000억~3000억원 수준이며 자산 대부분은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SK㈜ 지분이다. SK㈜는 SK텔레콤(30.57%), SK이노베이션(36.22%), SK스퀘어(30.55%), SKC(40.6%)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최 회장은 SK㈜ 지분 17.73%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다른 계열사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항소심 판결이 확정될 경우 SK㈜ 주식이 부부 공동재산으로 지목돼 최 회장은 보유 주식을 노 관장과 나눠야 하고 결과적으로는 지배구조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항소심 판결로 SK그룹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헤지펀드 위협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슐리 렌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는 지난 4일(현지시간) '10억 달러 규모의 한국 이혼, 수치심에 실패했을 때 작동하는 방법'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 최대 대기업 중 하나가 적대적 인수합병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며 "최 회장의 SK에 대한 지배력은 약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SK그룹 차원에서 본격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읽힌다.
이날 최 회장 측이 항소심 재판부가 대한텔레콤(현 SK C&C)의 주식가치를 1000원에서 100원으로 잘못 계산해 판독했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에 오류가 있다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SK㈜를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은 판결 논리까지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항소심 재판부가 그동안 '6공 비자금 300억원 유입' 등을 인정하며 SK그룹 안팎에서 '수십년간 구성원들의 노력이 무시 당했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한몫했다. 최 회장은 이날 항소심 재판부가 인정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 유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법조계에서는 신중론과 최 회장 측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혼재한다. 김형완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주식가치 산정도 있지만 결국 SK㈜를 분할 대상 재산에 포함시키느냐가 쟁점"이라며 "기본 법리는 혼인 중에 형성한 재산이 분할 대상에 포함하는 것으로 노 관장이 SK그룹 성장 과정에서 운영에 직접 관여했는지를 봐야 한다"고 했다. 반면 최희준 덴톤스 리 대표변호사는 "최 회장 측 주장대로라면 심각한 오류인 만큼 판결경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상고를 통해 바로잡아야 할 문제"라며 "대법원은 법률심이지만 판단 과정에 있어서 논리적 오류 등을 살펴볼 수 있기에 충분히 다퉈볼만 하다"고 했다.
최 회장은 이날 "개인적인 일로 국민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사과드린다"면서도 경영 활동은 왕성히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최 회장은 "판결과 관계없이 경영 활동을 충실히 해 국가 경제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최 회장은 오는 28~29일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리는 경영전략회의에도 참석해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 그룹 경영진과 함께 각종 현안과 기업문화를 살필 예정이다. 지난 6일에는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등 경영진과 함께 대만에서 웨이저자 TSMC 회장 등 정보기술(IT) 업계 주요 인사들과 자리를 갖고 인공지능(AI)·반도체 분야 협업 방안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이날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헤지펀드 위협 현실화 우려는 일축했다. 그는 "이번 일 외에도 저희는 수많은 고비를 넘어왔다"며 "적대적 인수합병과 같은 위기로 발전하지 않게 예방해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설사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충분히 막을 역량이 존재하는 만큼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다.윤선영기자 sunnyday7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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