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대병원 집단 휴진 첫날, 외래진료 27% 줄어
휴진 안내했다지만 일부 환자 불편 겪어
비대위 내부 ‘무기한 휴진’ 의견 엇갈려
“수술 뒤 첫 검사를 오늘 받기로 했는데, 담당 교수님이 휴진하셔서 검사가 취소됐대요. 검사를 해야 재발 우려도 알 텐데.”
지난해 9월 유방암 수술을 한 윤아무개(55)씨는 17일 영상 검사를 받으러 서울대병원(서울 종로구 연건동)을 찾았다가 헛걸음을 했다. 검사 날짜는 27일로 다시 잡았지만, 진료가 가능할지는 “그때가 돼봐야 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윤씨는 “다른 병원에 갈 수도 없고, 휴진 사태가 길어진다면 큰 문제”라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무기한 휴진’에 들어간 첫날인 17일, 서울대병원 본원·분당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강남센터 등에서는 외래 진료가 미뤄지며 발걸음을 돌리는 환자들이 눈에 띄었다. 응급실·중환자실 등은 이전처럼 유지되며 병원 기능이 마비될 정도의 혼란은 없었지만, 장기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비판의 목소리는 커졌다.
이날 보건복지부와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의 외래 진료는 1주 전인 지난 10일에 견줘 약 27% 줄었다. 평소 하루 1800여명을 진료하는 암병원 외래 환자가 200명 이상 감소하는 등 암환자들의 검사·항암 일정이 많이 밀렸다. 서울대병원에서는 수술도 1주 새 23% 줄었다. 그나마 분당서울대·보라매병원의 진료 감소 폭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비대위는 무기한 휴진에 앞서 17~22일 서울대병원 4곳에서 진료·수술을 맡은 교수 967명 중 529명(55%)이 수술·시술·검사 일정을 연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휴진에 참여한 비대위 교수들도 병원으로 출근해 응급·중증환자 진료는 유지하기로 하면서, 진료가 ‘반토막’ 나는 정도의 차질은 이날 없었다. 일부 교수는 일정 변경을 안내하는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한 환자가 병원에 찾아온 경우 진료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병동 입원 환자에 대한 진료도 평소처럼 이뤄졌다.
대장암 4기로 2주에 한번씩 항암치료차 서울대병원을 찾는 김정미(65)씨는 “휴진 이야기에 걱정이 돼서 지난주에 교수님께 ‘저 어떡해요’ 물어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며 “새로운 외래 진료는 안 받아도 기존 환자들은 봐주시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간호하는 40대 박아무개씨는 “교수님이 평소처럼 병동 회진을 봐 이날 휴진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불편을 겪는 가운데 비대위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휴진 철회의 조건으로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취소 △의대 정원 재논의 등을 재차 요구했다. 방재승 비대위 투쟁위원장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완전히 취소해 주시기 바란다”며 “전공의는 범법자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직업에 대한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비대위 안에서도 ‘출구전략’에 대한 고민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 피해는 물론 비대위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일 가능성도 낮기 때문이다. 비대위 집행부는 휴진 기간을 두고 상반된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에게 “더는 ‘무기한’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일주일 뒤 (진료) 일정을 조절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대위는 이날 오후 자료를 내어 “1주일간만 휴진을 유지하겠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입장을 뒤집었다.
환자단체와 의사단체 등은 비대위가 예고대로 휴진을 강행하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입장문을 내어 “목적 달성을 위해 무기한 전체 휴진이라는 선택을 꼭 했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정부를 압박하는 도구가 환자의 불안과 피해라면 그 어떤 이유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노총 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도 “누군가 대신 할 수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 자행하는 집단휴진은 환자들에게 사망 선언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사단체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도 성명을 내어 “일부 의대 교수들이 정부와 전공의 간 중재자 역할을 포기하고 의사 증원 반대 투쟁에 앞장서는 현 상황에 반대한다”며 “의대 교수들의 진료 중단은 벼랑 끝에 놓인 환자들의 등을 떠미는 행위”라고 밝혔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고경주 기자 goh@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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