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란 거냐…앞으로가 막막" 서울대병원 휴진 환자들 '분통'(종합2보)
진료실 운영 절반 수준…오후 소폭 늘어
"오늘은 담당교수 출근했지만…너무 불안"
노조·환자단체 "잘못 없는 환자만 죽어나"
비대위 "근거 없는 정책엔 온몸으로 저항"
[서울·성남=뉴시스]뉴시스 사건팀 = 서울대병원 교수 절반 이상이 1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돌입했다. 이날 뉴시스가 찾은 병원은 우려했던 만큼 큰 혼란은 보이지 않았지만 진료실 가동이 반토막 나 한산했다. 병원을 찾은 환자들도 휴진 장기화로 인한 의료공백 걱정에 심란함을 숨기지 못했다.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강남센터 등 4개 서울대병원 교수 절반가량이 이날부터 휴진에 돌입했다. 참여자는 전체 교수의 54.7%에 달하는 529명이다.
이날 응급·중환자와 희귀·난치 질환에 대한 진료는 유지하면서 현장에 큰 혼란은 빚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월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대해 사직서를 내고 대거 병원을 떠난 후 60%대로 떨어진 수술실 가동률은 30%대로 하락했다.
때문에 환자들 사이에선 집단휴진 장기화로 인한 의료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서울대병원 암병동 두경부암센터는 이날 오후 기준 진료실 29곳 중 12곳만 운영 중이었다. 암병동을 찾은 환자들은 자신의 담당 교수가 휴진에 참여하지 않아 다행이라면서도 불안을 숨기지 못했다.
초등학생 딸의 뇌종양 진료를 위해 뇌종양센터를 찾은 장모(42)씨는 "휴진 때문에 상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아이가 작년에 큰 수술을 했는데 의료진이 없으니 약 부작용에 대한 대처가 없어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가 한 번씩 응급실을 오게 되면 여기로 와야 하는데 받아주지 않아서 쓰러졌다. 근처 병원에서 받아줘서 응급처치를 했지만 많이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울대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중증·희귀질환 환자 진료와 응급실·중환자실 같은 필수분야 진료는 계속한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이미 현장에선 응급 진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암 투병 중인 부인과 함께 병원을 방문한 이모(66)씨는 "의사가 파업에 동참해서 항암치료 중간검사 4개 중 초음파 검사는 빼고 해야 한다고 들었다"며 "서울대병원은 일반 대학병원과 달리 국가에서 지원하는 공공병원이라는 상징성이 있는데 이럴 때 먼저 손해보고 헌신해야 하지 않냐"고 지적했다.
내분비질환으로 내원한 최모(59)씨는 "갑상선수술이 작년 6월 검진 후 1년째 연기되고 있는데 연락도 없다. 악성암이 아니라는 이유로 계속 미뤄지는 것 같다"며 "담당 의사가 휴진하는지 연락도 없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보라매병원도 한적했다. 병원에서 만난 한 봉사자는 뉴시스에 "평소보다 환자가 30%는 줄어든 것 같다"고 전했다.
한 정형외과 교수는 "휴진에 모두 하나로 참여하는 건 아니다"라며 "지금 진료하는 의사들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다 자율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출산을 앞둔 딸을 돌보는 유모(64)씨는 "딸이 만삭인데 조산 우려가 있어서 입원하고 있다. 그런데 의료진도 안 보이고 입원실도 병원도 텅텅 비어있다"며 "산부인과도 폐쇄되는 건 아닌지 불안할 정도"라고 우려를 표했다.
아들의 CT검사를 위해 방문한 신모(52)씨는 "여기는 공공병원이라 다른 곳보다 어려운 분들이 많이 오는 걸로 안다"며 "서울대가 국립대학이라서 등록금 혜택을 본 건데 사회에 환원하는 마음이 있어야지. 지금 휴진하는 건 환자들보고 죽으라는 거냐"고 비판했다.
보라매병원은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이 많이 찾는 공공의료기관으로 서울대병원이 수탁 운영 중이다. 공공의료 기능을 하고 있어 서울시로부터 운영보조금도 받는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와 분당서울대병원에도 환자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이날 오전 뉴시스가 찾은 분당서울대병원 1층 로비는 대체로 한산했다.
화성에서 암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은 김석현(56)씨는 "한 달 전에 예약했다"며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휴진한다는 소식을듣고 병원에 계속 전화를 해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인들이 휴진한다는 문자가 오지 않으면 가서 진료받으면 된다고 해 불안하지만 일단 올라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진료 및 예약 취소로 환자들이 불안해하는 가운데, 환자단체와 노조도 휴진에 나선 교수들을 비판하고 나섰다.
분당서울대병원 노조는 지난 10일부터 지하1층과 지하3층 등 병물 건물 일부에 '히포크라테스의 통곡'이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
대자보에는 "의자제국 총독부의 불법파업결의 규탄한다. 휴진으로 고통받는 이는 예약된 환자와 동료뿐!"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노조는 교수들의 무기한 휴진으로 다른 직원들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며 일방적인 휴진 방침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단연)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목적 달성을 위해 무기한 전체 휴진이라는 선택을 꼭 했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정부를 압박하는 도구가 환자의 불안과 피해라면 그 어떤 이유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왜 환자들이 의료계와 정부의 극단적인 대립 속에서 피해를 봐야 하느냐"며 "환자는 의대정원 숫자,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취소,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추진과 관련해 아무 잘못도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대 의대 산하 4개 병원(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학교병원·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강남센터) 진료 교수 중 55% 가량에 해당하는 520여 명(응급실·중환자실 등 필수 부서 제외)이 휴진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 융합관 양윤선홀에서 집회를 열고 전공의 대상 행정처분 완전 취소, 상설 의·정협의체 신설, 2025학년도 의대정원의 재조정과 2026학년도 이후 정원 재논의 등을 정부에 거듭 촉구했다.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대한민국 최고 의료 교육기관 교수로서 근거 없는 정책이 강행되는 것을 온몸으로 저항한다"며 "현장을 모르는 정책결정권자가 우리나라 의료를 망치는 것을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을 선언한 만큼 향후 수술장 가동률도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휴진으로 병원 손실이 발생하면 구상권 청구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서울대병원에 이어 세브란스병원·강남세브란스병원·용인세브란스병원 소속 교수들도 오는 27일부터 응급·중증환자 진료를 제외한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삼성서울병원도 무기한 휴진을 논의키로 했다. 삼성서울병원 등 성균관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무기한 휴진에 대해 논의한 후 전체 교수(삼성서울병원·강북삼성병원·삼성창원병원)들을 대상으로 무기한 휴진 관련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전체 교수 총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서울성모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의대 교수들도 추가 휴진 여부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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