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오류' 판결문 수정, SK 1.4조 재산분할 뒤집히나…대법원 고민 길어진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이혼을 심리한 항소심 재판부가 최 회장 측에서 '치명적 오류'라고 지적한 부분을 반영해 판결문 일부를 수정하면서 대법원의 고민이 깊어졌다. 1·2심 판단이 엇갈린 데다 항소심 재판부 판단의 전제가 된 사실관계를 두고도 혼란이 빚어지면서 대법원 최종판결까지 '장기전'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문 일부 수정으로 향후 재판에서 최 회장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SK그룹 주식의 모태, 옛 대한텔레콤(현 SK C&C) 주식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이냐가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당초 판결문에서 △1994년부터 1998년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까지 △별세 이후부터 2009년 SK C&C와 합병 상장할 때까지 최태원 회장의 대한텔레콤 주식 가치 증가분을 비교하면서 회사 성장에 대한 선대회장의 기여 부분을 12.5배로, 최 회장의 기여 부분을 355배로 판단했다가 이날 최 회장 측이 반박 기자회견을 한 지 3시간만에 선대회장의 기여분을 125배로, 최 회장의 기여분을 35.5배로 수정했다.
최 회장이 경영하면서 키운 주식 가치보다 선친이 키운 주식 가치가 더 많다면 최 회장이 보유한 SK그룹 주식은 상속재산, 일종의 특유재산 성격이 더 강해진다. 특유재산은 부부 중 한 명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이나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 원칙적으로는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된다.
최 회장 측은 "항소심 재판부가 잘못된 계산을 전제로 최 회장의 기여가 더 높기 때문에 최 회장을 자수성가형 기업가로 봐야 하고 노 관장도 자수성가에 크게 기여했다고 판단했다"며 "이런 이유로 재산분할 비율을 높게 책정했다는 취지를 판결문 곳곳에서 설명한 만큼 재산분할 결론을 처음부터 다시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의 기여도가 과대 평가되면서 해당 주식이 특유재산이 아닌 부부 공동재산으로 인정됐고 재산분할 금액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만큼 제대로 평가한 주식가치를 토대로 분할재산을 특정하고 분할액을 다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결론을 수정할 정도의 오류는 아니라고 판단해 1조3808억원 규모의 재산분할 주문을 수정하지는 않았다.
법조계에선 의견이 분분하다. 판사 출신 문유진 법무법인 판심 대표변호사는 "주식가치 산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항소심 판결 결론에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사유"라고 말했다. 가사소송 전문 한 변호사도 "대법원에서 주식가치 기여도가 결정적인 사안이라고 본다면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노 관장 측이 여전히 유리하다는 의견도 있다. 노 관장 측 대리인은 이날 최 회장 측의 기자회견 직후 내놓은 입장문에서 "해당 부분은 SK C&C 주식 가치의 막대한 상승의 논거 중 일부일 뿐 주식 가치가 막대한 상승을 이룩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결론에도 지장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주식가치 평가와 관련해 최 회장 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재판부가 판결문 일부를 수정하긴 했지만 결론을 바꾸지 않은 것은 본질적인 내용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이날 기자회견과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문 일부 수정 과정을 신중하게 지켜본 것으로 전해진다. 대법원 내부에서는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해 심리불속행 결정을 내리기는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심리불속행은 원심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을 때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일정대로라면 대법원이 상고 기록을 받은 날부터 최대 4개월 이내인 오는 10월 초중순 심리불속행 결정이 나올 수 있다. 최 회장 측은 상고 기한인 오는 21일 전에 상고한다는 계획이다.
문유진 대표변호사는 "최 회장 측이 상고하면 대법원이 본안심리를 열어 새로운 판단을 할 여지가 크다"며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는 부부공동재산을 특정하기 위해 대법원에서 주식가치 산정에 관해 집중적으로 심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번 소송을 심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정치·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들을 주로 담당하며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는다.
법조계 관계자는 "사건 판결을 확정하고 새로운 판례를 세우게 되는 만큼 대법관들이 법리를 꼼꼼하게 들여다볼 것"이라며 "전원합의체에서 결론이 나게 되면 향후 이혼소송 재판에서 재산분할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가영 기자 park0801@mt.co.kr 정진솔 기자 pinetree@mt.co.kr 심재현 기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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