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버려진 환자들…교수들은 ‘메스’ 놓고 ‘펜’ 들었다
심장병 환자 “약이라도 타게 해 달라” 호소하기도
휴진한 교수, ‘전문가 집단의 죽음’ 심포지엄 개최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한지 4개월 만에 교수들도 끝내 가운을 벗었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17일 무기한 휴진에 들어갔다. 진료와 수술이 미뤄진 환자들은 치료 '골든타임'을 놓칠까 불안에 떨고 있었다.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이날부터 응급실, 중환자실 등을 제외한 진료과목의 외래 진료와 정규 수술 등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대 의대 산하에는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서울대병원강남센터 등 4개 병원이 있다. 비대위가 20개 임상과를 대상으로 휴진 참여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전체 교수 967명 중 54.7%(529명)가 전면 휴진에 들어갔다.
이날 오후 1시께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환자와 보호자들은 진료가 취소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철렁했다고 했다.
선천성 심장병으로 태어나자마자 이곳을 다녔다는 김태원(36)씨는 지난 13일 병원으로부터 신경과 진료를 볼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김씨는 "진료를 못 보면 '약이라도 타게 해 달라'고 병원 측에 애원했다"며 "피를 돌게 해주는 약이라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복용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휴진이 언제 끝날지 몰라 환자 입장에서는 착잡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병원 진료실도 평소보다 한산한 모습이었다. 진료실 16곳 중 7곳에서만 환자들이 진료를 받고 있었다. 두 달 전 대기실 자리가 부족해 서서 진료를 기다렸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75석이 놓인 대기실에는 단 세 명의 환자와 보호자만이 자리를 채웠다.
불 꺼진 진료실 옆에는 비대위가 작성한 '휴진을 시행하며 환자분들께 드리는 글'이 붙어 있었다. 비대위는 "의료진은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왔다"며 "이번 휴진 결정은 너무나도 어려운 선택이었다"고 했다.
어린이병원 한켠에 붙어있는 '환자의 권리와 의무'라는 글도 눈에 띄었다. 여기에는 "환자는 적절한 보건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고 성별, 나이, 신분, 문화적 가치관, 종교적 신념,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건강에 관한 권리를 침해받지 않으며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고 나와 있었다.
6살 아들과 함께 부산에서 온 박아무개(40)씨는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한곳만 다녔는데 이제 와서 옮길 수도 없지 않겠느냐"며 "의사들의 입장이 이해는 가지만 (항의하는) 방법과 절차가 한참 잘못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암병원을 찾은 환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에는 비수도권에서 올라온 환자와 보호자들이 대다수였다. 이들은 전날 병원 근처에 숙소를 예약하고 진료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행여 당일에 진료가 취소될까 봐 마음을 졸였다고 했다.
광주에서 KTX를 타고 온 김아무개(66)씨는 "병원에 가도 교수님이 안 계실까 봐 걱정이었는데 진료를 볼 수 있다기에 천만다행"이라면서 "의사와 정부의 싸움도 벌써 네 달째인데 해결될 실마리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비대위는 무기한 휴진에 들어가더라도 중증·응급·희귀질환 등 필요한 진료를 유지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응급실에도 의료진이 없다"는 하소연이 나왔다.
항암치료 중인 아내의 고열 증세로 이날 오전 7시께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다는 방아무개(61)씨는 "안에 의사가 두 명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뉴스에서 응급실은 정상적으로 운영한다고 해서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방씨는 병원 측으로부터 입원을 거부당했다고 했다. 그는 "아내의 염증 수치가 높아 열이 40도까지 올랐는데 서울대병원에는 입원할 수 없다고 했다"며 "다른 병원에 전원 요청을 했지만 아직 회신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무기한 휴진에 들어간 교수들은 서울대병원에서 휴진의 시작을 알리는 집회를 열었고, 오후에는 '전문가 집단의 죽음'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비대위는 이날 집회에서 "이미 의료 붕괴가 시작됐는데 정부가 귀를 막고 도대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마지막 카드는 전면 휴진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재승 비대위 투쟁위원장은 "의료 붕괴는 이미 시작됐고 우리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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