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저출생 세대 착취할 건가

김인수 기자(ecokis@mk.co.kr) 2024. 6. 1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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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23만명 출생 세대가
70만~100만명 세대를
국민연금 보험료 내서
부양하라는 건 착취다

부부가 아이 1명을 낳는 게 고착화되면 그 아이 1명은 몇 명을 부양해야 하는 걸까. 부모 2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조부모와 외조부모도 오래 산다. 그들 역시 부양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아이 1명이 6명을 부양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출산율이 1명이 안 된다. 작년 합계출산율이 0.72명이다. 이런 식이면 뒷세대 1명이 앞세대 여러 명을 부양해야 한다. 뒷세대 입장에서는 너무 과도한 부담이라고 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반론도 제기한다. "내 노후는 내가 책임진다"며 "뒷세대에 손 내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러나 그런 자신감은 우리 마음속 '편향'을 생각할 때 믿을 게 못 된다. 인간은 현재의 작은 보상을 얻기 위해서라면 미래의 큰 보상을 포기한다. 이른바 '현재 편향'이다. 그래서 인간은 수중에 돈이 생기면 미래 노후를 준비하기보다 당장의 쾌락을 위해 쓴다. 그런 편향이 없다면 노인 빈곤율이 40%에 육박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 사회는 뒷세대가 앞세대를 부양하는 사회체계를 발전시켰다. '효'의 윤리가 대표적이다. 부모를 봉양하지 않으면 불효자라고 욕했다. '효'를 의무화함으로써 자식이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도록 한 것이다. 다만 '효의 윤리'는 사적 책임이었다. 핏줄이 닿는 부모만 부양했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부터는 부양이 사회 전체의 책임이 됐다. 공적 연금이 대표적이다. 젊은 세대가 연금 보험료를 내서 노후 세대를 부양한다. 그 젊은 세대가 나이 들어 은퇴하면 새로운 젊은 세대가 낸 보험료로 연금을 받아 생계를 잇는다. 뒷세대가 앞세대를 책임지는 '사회계약'이 맺어진 것이다. 선진국 연금이 이런 구조다.

그러나 한국은 이게 불가능하다. 저출생 탓이다. 1971년에 102만명이 태어났고 1991년 71만명이 출생했지만 작년에는 겨우 23만명이 태어났을 뿐이다. 이들 23만명에게 앞으로 성장해서 각종 세금을 내는 것은 물론이고 연금 보험료까지 납부해 71만~102만명씩 출생한 앞세대를 부양하라는 건 사실상 착취 아닌가.

저출생 세대 입장에서 생각하면 지금의 20·30대 청년 역시 기득권 세대다. 이들 청년도 한 해 47만~73만명이 태어났다. 만약 이들이 보험료 인상에 반대한다면, 그래서 향후 국민연금기금이 소진된 뒤 자신들보다 훨씬 수가 적은 저출생 세대가 낸 보험료로 생계를 잇겠다고 한다면 너무 뻔뻔한 요구 아닌가.

지금 29세 청년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2060년이면 65세가 돼 연금을 받게 된다. 제5차 재정계획이 맞는다면 국민연금기금은 그보다 5년 앞서 소진될 것이다. 이후부터는 젊은 세대한테서 당해 거둔 보험료로 노령 세대에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2060년이면 국민연금을 받는 수급자 수가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 수의 1.25배에 이를 전망이다. 1명이 납부하는 보험료로 1.25명이 연금을 받아 생활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미래에 보험료를 내야 할 지금의 저출생 세대에게 너무 가혹한 일 아닌가.

그 같은 착취를 막으려면 국민연금을 개혁해야 한다. 40·50대 기성세대는 물론이고 20·30대 청년 역시 보험료를 지금보다 더 많이 내야 한다. 그 돈으로 국민연금기금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 나중에 은퇴하면 그렇게 쌓인 기금에서 연금을 받아야 한다.

현행 9%인 보험료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5%로 올린다고 해도 국민연금기금은 2084년(기금투자 수익률 5.5% 가정)에 고갈될 전망이다. 그때부터는 저출생 세대에게 손을 벌려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정도 보험료를 부담하면 '염치는 있다'는 소리는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염치 없이 착취만 하려고 한 세대'라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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