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다양한 북미 원주민들을 뭉뚱그려 ‘인디언’이라 부르나요?

도재기 기자 2024. 6. 1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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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18일 개막
’북미 원주민’ 삶과 문화·예술 국내 첫 조명···티피·공예·회화 등 151점 전시
“고정관념·편견 떨치고 다시 보는 계기···현대인 삶에 깊은 성찰 제공”
북미 원주민들의 삶과 문화, 예술을 살펴보는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이 18일 개막한다. 사진은 루이세뇨족 후손인 현대미술가 프리츠 숄더의 회화 ‘인디언의 힘’(1972년, 미국 덴버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미타쿠예 오야신”(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북미 원주민(인디언) 여러 부족이 나누는 인사말이다. 간단한 인사말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과 자연·세상을 대하는 그들의 심오한 가치관, 삶의 방식이 녹아 있다. 서구의 선형적 사고와 달리 동양의 원형적·순환적 사고와 닮았다. ‘세상 모든 존재는 그물처럼 연결돼 영향을 미친다’는 불교 ‘인드라망’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최근 북미 원주민들의 가치관, 삶의 방식이 주목받는다. 물질보다 정신을, 무한경쟁 속 각자도생보다 더불어 함께 살기를 강조한 그들의 사상이 현대인을 각성시키고 성찰을 이끌기 때문이다. 자연과 교감·소통하는 친환경 사고와 태도는 기후재앙 속에 ‘문명 대전환’을 위한 대안적 의미로 다가온다. 또 상상력을 자극하는 독특하고 다채로운 문화와 예술도 눈길을 잡는다.

북미 원주민들의 삶과 사상, 역사와 문화·예술을 살펴보는 전시회가 국내 처음으로 마련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18일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하는 특별전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이다.

북미 원주민 부족인 라코타족의 ‘대평원의 보금자리, 티피’(1880년경, 높이 467.36㎝c, 덴버박물관 소장) 전시 모습. 도재기 선임기자
네즈퍼스 부족의 존경의 상징인 ‘독수리 깃털 머리 장식’(1860~1890년대, 길이 207㎝, 덴버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전시장 전경 일부. 도재기 선임기자

특별전에는 우리가 맹목적으로 ‘인디언’이라 부르던 북미 원주민들의 의·식·주 관련 갖가지 용품, 의례용 도구, 상징성이 담긴 공예, 회화 등 모두 150여 점이 선보인다. 또 백인들 눈에 비친 원주민 모습, 원주민들의 수난의 역사, 원주민 후손 예술가들의 현대미술 작품 등도 만날 수있다. 이번 특별전은 북미 원주민 관련 컬렉션으로 유명한 미국 덴버박물관과의 공동전시로 전시품 상당수는 덴버박물관 소장품이다.

북쪽 알래스카에서 남쪽 뉴멕시코까지 광활한 북미 대륙에 살고 있는 원주민 부족은 570여 개에 이른다. 이들을 하나의 단일 공동체로 이해하거나 뭉뚱그려 일반화시키는 것은 큰 오류다. 각 부족은 지리적 특성·기후 등 자신들을 둘러싼 자연환경에 따라 저마다 다채로운 삶의 방식, 언어·풍속을 지녔기 때문이다. 전시기획자인 김혁중 학예사는 “우리가 북미 원주민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매우 단편적”이라며 “이번 전시는 30여개 부족의 다채로운 문화를 최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 없이 다시 바라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영화 등 여러 대중매체를 통해 형성된 단편적이고 왜곡된 이미지 너머의 문화적 다양성을 살피겠다는 것이다. 기획자의 의도는 전시명에서도 나타난다. ‘인디언’이란 용어는 1492년 콜럼버스가 북미 대륙을 인도로 착각한 데서 유래됐다. 대대로 북미 대륙에서 살아온 다양한 원주민들을 임의로 재단·규정한 용어다. 김 학예사는 “원주민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인디언’이 아니라 ‘북미 원주민’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카이오와족의 ‘아기를 위한 요람’(1915-1920년, 덴버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콰콰케와크족의 ‘구리 방패 깨뜨리기 의식에 사용된 기둥’(왼쪽) 등의 조각(덴버박물관 소장). 도재기 선임기자

전시는 크게 ‘하늘과 땅에 감사한 사람들: 상상을 뛰어넘는 문화적 다양성’(1부), ‘또 다른 세상과 마주한 사람들: 갈등과 위기를 넘어 이어온 힘’(2부)으로 구성됐다. 1부는 다양한 전시품을 통해 북미 원주민들의 삶의 방식, 자연과 인간·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 등을 살펴보는 자리다.

부족마다 다양한 문화를 지녔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에는 공통점도 있다. ‘미타쿠예 오야신’에서 보듯, 세상을 양끝이 있는 선이 아니라 그 끝이 연결된 둥그런 원으로 본다. 그 세상에서 너와 나, 인간과 자연, 조상과 자손, 초자연적 존재 등 인간과 비인간 모두는 연결됐기에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이런 가치관은 존재들 사이의 조화와 균형, 나눔과 배려, 교감과 소통,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북미 원주민들의 미적감각 등이 녹아들어 있는 항아리들(덴버박물관 소장). 도재기 선임기자

전시장에서 만나는 원뿔모양의 이동식 집인 라코타족의 ‘티피’에도 이런 가치관이 녹아 있다. ‘티피’의 둥근 바닥은 땅을, 가운데 세운 나무기둥은 땅과 하늘의 연결을 의미한다. ‘티피’들이 여러 개 세워질 때는 둥그런 원 모양을 이룬다. 아기의 요람에서는 자연과의 교감을 중요시하는 그들의 태도를 읽을 수있다. 존경받는 이들이 착용하며 존경을 상징하는 네즈퍼스족의 ‘독수리 깃털 머리 장식’,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덮개와 깔개 같은 직물과 옷, 독특한 미감의 항아리와 바구니, 갖가지 의례용 공예품 등에는 조화와 균형의 가치관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녹아들었다.

2부는 북미 원주민들의 근현대 수난의 역사와 변화·적응 과정, 현대를 살아가는 원주민 후손 예술가들의 진솔한 생각이 담긴 여러 예술작품을 만날 수있다. 특히 서부개척 시대 등 미국의 국가 형성과 발전과정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도 있다.

프리츠 숄더의 회화 ‘운디드니-아메리카 대학살’(1972, 왼쪽)과 리틀 빅혼 전투를 다룬 화이트 스완의 ‘전쟁을 기록한 그림’(1890년경)의 전시 전경. 도재기 선임기자

콜럼부스 이후 북미 대륙에는 유럽 백인들의 이주가 이어진다. 원주민과 백인들의 첫 만남은 비교적 평화로웠지만 오래갈 수 없었다.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원주민과 달리 백인들에게 ‘신대륙’은 노다지였고, 땅과 동식물은 정복·소유·관리의 대상일 뿐이었다. 양측에 평화협정들이 맺어지기도 했으나 깨지기 일수였다. 월등한 무기로 무장해 스스로를 문명인으로 여긴 백인들에게 토마호크와 화살·창을 가진 원주민들은 ‘열등한 야만인’이었기 때문이다.

북미 원주민들의 아픈 역사는 19세기 후반 서부 개척시대에 절정에 이른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골드 러시’가 시작되고, 1869년 최초의 대륙 횡단철도가 개통되면서 개척시대는 본격화됐다. 모험과 용기 같은 ‘프런티어 정신’의 서부개척정신 이면에는 끝없는 탐욕이 자리한다. 원주민의 땅을 빼앗았고 그들의 가족을 죽이는 일도 망설이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인디언 기록문학의 걸작’이라 평가받는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원제 Bury My Heart at Wounded Knee)를 저술한 디 브라운은 ‘서부개척사의 또다른 이름은 인디언 멸망사’라고 표현했다.

에드워드 S 커티스의 ‘압사로가 부족 어머니와 아이’(1908년, 미국국회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사장에서는 1876년 6월 몬태나주 리틀 빅혼에서 미합중국 육군 제7기병연대를 상대로 원주민들이 대승을 거둔 ‘리틀 빅혼 전투’, 1890년 12월 사우스다코타주 남서부 운디드니에서 제7기병연대의 원주민 대학살 사건인 ‘운디드니 사건’ 등과 관련된 자료를 살펴볼 수있다. 또 원주민 기록사진으로 유명한 사진가 에드워드 커티스(1868~1952)의 사진, 백인 이주민들이 본 원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사진 등도 나왔다.

이들 그림·사진에서 원주민들의 모습은 대부분 낭만적이고 평화로워 보인다. 상당수가 서부 개척·확장을 장려할 목적으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이미지 곳곳에서 차별적·우월적 시선도 엿보인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을 다룬 사진·그림에서 느껴지는 제국주의적 시선·인식, ‘이미지 정치’같은 요소들이다.

제임스 루나(루이세뇨족 후손)의 정체성과 편견을 다룬 사진작품 ‘반은 인디언, 반은 멕시코인’-(1991년, 덴버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포포족 후소인 애니 분의 ‘새의 깃털로 장식한 바구니’(1900년대 초반, 덴버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번 전시에서는 평소 접하기 어려운 북미 원주민 후손 예술가들의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있다. 루이세뇨족 후예들인 프리츠 숄더(1937~2005)의 회화 ‘인디언의 힘’(1972), 제임스 루나의 사진 ‘정체성과 편견-반은 인디언’을 비롯해 포모족 후손인 애니 분의 ’새의 깃털로 장식한 바구니‘(1900년대 초) 등이 대표적이다. 전통 문화의 현대적 계승과 재창조 등의 노력이 밴 작품들이다. 이들 현대미술은 우리 곁에 북미 원주민들의 문화와 예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번 특별전은 세계의 문화적 다양성을 소개하는 기획의 일환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북미 원주민의 문화와 예술을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으로 다룬다”며 “북미 원주민들의 역사와 문화를 보다 제대로 깊게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중앙박물관은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행사도 마련했다. 유튜브 채널 지식해적단과 협업한 ‘대륙횡단철도와 들소’를 주제로 한 북미 원주민의 이야기를 들을 수있고, 19일에는 북미 원주민 출신의 덴버박물관 큐레이터 다코타 호스카의 강연회, 28일과 7월 26일에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강연회, 이후 공동 학술대회가 예정됐다. 또 서울 전시에 이어 부산시립박물관에서 순회전시도 열린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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