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할게!” 하는 자녀에게 이렇게 말해보세요

김미영 기자 2024. 6. 1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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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자녀와의 대화법

대화보다 아무말 안하는 게 낫기도
대화 중 친구 관계 건드리면 안 돼
명령이나 지시·강압적 말투 피해야
말할 땐 ‘칭찬-충고 약간-칭찬’으로
게티이미지뱅크

“고등학교에 진학한 만큼 사춘기가 끝날 줄 알았어요. 마음 잡고 공부하고, 엄마한테도 다정한 딸이 될 줄 알았는데, 제 기대가 너무 컸나 봐요. 공부는커녕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밤새 스마트폰 보고, 대화라도 해보려고 하면 ‘내가 알아서 할게!’ 방어막부터 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고등학교 1학년 딸을 둔 강경란(48·가명)씨의 고민이다. 대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말 건네기도 어렵고 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갈등만 커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강씨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부모 말을 잘 듣고, 공부도 제법 하는 착한 딸이었다”며 “뒤늦게 사춘기가 찾아왔다고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해보지만, 몇 달 사이 급변한 딸의 모습에 당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토로했다.

강씨처럼 사춘기, 더 나아가 청소년기 자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조선미 아주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춘기, 기적을 부르는 대화법’을 쓴 박미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 ‘사춘기 딸에게 힘이 되어주는 부모의 말 공부’를 쓴 이현정 작가, ‘사춘기 아들의 마음을 잡아주는 부모의 말 공부’를 쓴 이은경 작가에게 청소년기 자녀와의 대화 요령에 관한 조언을 듣고, 이를 정리했다.

■ 청소년기 정서적·심리적 특징

청소년기, 특히 사춘기는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급격히 발달하는 시기여서 쉽게 흥분하거나 좌절하는 등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 부모나 교사에게 대들고 반발하거나, 자기주장이 강해지면서 규율과 규칙을 무시하는가 하면 감정이 폭발해 욕설과 폭력 등이 나타날 수도 있다. 어른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어린아이의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받고자 하는 시기여서 자신의 말과 행동에 간섭하는 부모의 대화 자체를 거부할 확률도 높다. 하지만 이 시기 청소년들은 부모의 우려와 이 과정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며,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해 간다.

조선미 교수는 “설령 부모의 기대만큼 공부를 안 한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자녀 스스로 ‘나중에 해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끼고 있는 경우이기 때문”이라며 “‘할 것’을 그럭저럭하고 있다 싶으면 굳이 대화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낫다. 특히 청소년들은 친구 관계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대화 중에 친구 관계를 건드리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게티이미지뱅크

■ 청소년기 부모와 대화는 중요

청소년기 자녀가 대화를 거부하는 것과 별개로 전문가들은 이 시기 자녀와 부모와의 대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부모와 어떻게 소통했는지가 성인이 되었을 때 인격 형성과 대인관계 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부모와의 관계가 틀어질수도 있으므로 대화를 통해 신뢰에 기반한 유대관계를 형성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미자 소장은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와 상호작용을 통해서 생각이 깊어지고 인간성이 풍부해지는 특징이 있는데, 청소년들은 대화에 매우 민감하다. 과도하게 혼내지 말고, 과도하게 칭찬하지 말아야 하며, 일일이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며 “무엇을 말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태도로 말하는지에 대해서 부모를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며,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칭찬-충고 약간-칭찬’의 순서로 대화해 자녀가 부모한테 비난받았다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고려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누구나 인간은 자신을 존중하고 친절하게 말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특히,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하거나 지시하는 대화법을 매우 싫어하며,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기를 희망한다”며 “대화를 통해 애정과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기대치를 내려놓으면 감정적으로 대하는 일이 훨씬 줄어든다. 조건 없는 지지로 자녀의 편이 되어 마음을 이해해줘야 한다. 자녀가 “나가!” “싫어!” “빡치네!” “뭔 상관이야!” 등 반항이 섞인 공격적인 말을 한다고 해서 화를 내고, 심각하게 여겨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조선미 교수는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독립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방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노크를 하고, 방이 돼지우리이거나 씻지 않아도, 무슨 옷을 입거나, 밤새 핸드폰을 한다 해도 학교에 지각만 하지 않는다면 참아야 한다. 그러면 잔소리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관계도 점차 개선될 수 있다”며 “자녀는 개입하거나 가이드를 하는 것 자체를 참견, 잔소리라고 생각한다. 자녀가 하는 행동이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응원하고 지지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 생각 존중하고 듣는 것부터

청소년기 자녀와 대화할 때 부모는 일방적으로 보호하고, 감싸려고 하기보다는 자녀의 감정을 존중하고 듣고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자녀의 일상과 경험을 이해하고 존중함으로써 자녀가 자신감을 키우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는 것이 우선이다.

이은경 작가는 “사춘기 이전의 대화가 ‘자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기’였다면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 목적은 ‘아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라며 “알려주기 위한 대화, 알아내기 위한 대화, 일깨워주기 위한 대화로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정 작가는 “아이를 향한 ‘보호해줘야 하는 대상’으로의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아이’ ‘책임을 배워가는 아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부모가 마냥 어린아이처럼 대하고 끊임없이 챙겨주며 아이를 믿지 못하면 아이는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완성할 수 없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기대치를 내려놓고, ‘믿는 마음’으로 대해야 청소년기 자녀의 책임감이 더욱 커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미자 소장은 “대화의 목적을 설득에 두기보다는 공유하고 이해하는 과정에 두어야 한다. 대화를 통해 자녀에게 존중과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청소년들이 바라는 사랑이기 때문에 생각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대화법으로 대등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며 “자녀를 무시하는, 강압적인 태도와 말투는 자칫 자녀와의 관계를 틀어지게 할 뿐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회복이 쉽지 않을 수 있으므로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가 대화 자체를 거부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현정 작가는 “이럴 때일수록 조급하게 대화를 시작하기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아이가 원하는 주제의 대화를 시도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며 “‘간섭한다’ ‘통제한다’ 느낌이 들지 않는 선에서 메시지나 쪽지 등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게티이미지뱅크

■ 명령형 대신 의문형·나 전달법

청소년기 자녀와 대화하는 방식은 명령형 대화가 아니라 의문형 대화일 때 더 효과적이다. “공부 잘 되니?” “남친과는 잘 지내고 있니?” “점심 뭐 먹고 싶어?”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네가 좋아한다면 ○○ 해보는 건 어때?” 등 자녀의 관심사를 주제로 단답형으로 간단하게 자녀의 생각을 물으면 자연스럽게 대답을 유도할 수 있다.

다만,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없는 열린 질문은 시간에 쫓길 때는 금물이며, 자녀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활용하는 것이 좋다. 자녀에게 정확한 정보나 대답을 얻고 싶을 때는 되도록 단답형으로 간단하게 질문해야 한다.

박미자 소장은 “부모의 질문에 즉답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말해주면 좋겠다고 여지를 남겨주면 좋다”며 “‘물어볼 때는 말 안 하고 이제 와 딴소리냐’고 면박을 주면 이후에는 더욱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게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조선미 교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을 때는 ‘몇 시까지 얘기해줘’라고 명확한 지침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딱 1시간만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 ‘숙제는 몇 시까지 끝냈으면 좋겠어’ 같은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의 질문에 자녀가 답할 때는 개방적인 자세로 격려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줘야 한다. “그래. 잘 했어” “고생이 많구나” “괜찮아. 다시 하면 돼” “그런 생각을 했구나. 나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다” 등의 말로 자녀가 잘한 점은 인정하고 칭찬하며, 치열한 입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자녀에게 격려와 지지, 응원과 용기를 줌으로써 자신감을 키우고 긍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너는 도대체 왜 그래!” “너는 매일 알아서 안다고 하는데, 안 하고 넘어간 게 몇 번이야!” “네가 잘했어야지!” 등처럼 ‘너’를 주어로 활용할 경우 공격적이 되거나, 자녀에게 상처를 주기 십상이다. 따라서 자녀와의 대화에서는 ‘나 전달법’(I-message)이 훨씬 유용하다.

“나는 네가 이렇게 하면 좋겠어.” “나는 너를 믿는다.” “나는 네가 이렇게 해줘서 고마워” “나는 네가 공부를 소홀히 해서 속상해.” “내가 그건 잘못 판단한 것 같아. 미안해.” 등 부모가 주어가 돼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식이어서 자녀에게 존중받는 느낌이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현정 작가는 “부모가 생각한 대로 청소년기 자녀를 이끌기보다는 자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허용 가능한 선에서 스스로 시행착오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말은 어쩌면 기회일지 모른다. 답답하고 한심해 보이더라도 기회를 주면 결국 자녀는 스스로 해내는 과정을 경험하며 더 멋진 어른으로 자랄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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