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망상이 까만 글씨에 묻힙니다"

이향휘 선임기자(scent200@mk.co.kr) 2024. 6. 1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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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1년이 됐을 때 한국전쟁이 발발해 아버지를 잃었다.

20여 년 전 종단 총무원 부장으로 임명되자 어머니는 "안 올라가면 안 될까. 있는 듯 없는 듯 살지" 하며 만류했다.

그는 이어 "모두가 '답게'만 살 줄 알면 만사형통"이라며 "자기 선 자리에 맞게, 학생은 학생답게 교사는 교사답게 그러면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답게'만 살면 부처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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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서예전 여는 탁연스님
어머니 따라 출가 55년 수행
日서 불교 유식학 박사 밟고
비구니 첫 총무원 부장 역임
"나답게 살줄 알면 만사형통"
탁연스님의 서예작품 '선묵일여'. 참선과 붓글씨는 하나라는 뜻이다.

태어난 지 1년이 됐을 때 한국전쟁이 발발해 아버지를 잃었다. 여섯 살이 되자 어머니가 출가했다. 스물 넷의 나이였다. 할머니 손에 자란 그의 손엔 교대 합격증이 주어졌지만 어느 새벽 편지 한 통 남겨놓고 머리를 깎았다. 어머니를 따라 마음공부를 하겠다는 발원이 선 것이다. 주인공은 출가한 지 55년 된 탁연 스님(75)이다. 2003년 비구니 역사상 처음으로 조계종 총무원 고위직인 문화부장에 오른 그다.

지난 12일부터 서울 인사동에서 생애 첫 서예전을 연 스님은 "글씨가 창피하다"며 "아이고 괜히 나가서 몰매를 맞고 있다"며 부끄러워했다. 최근 2년 사이 쓴 붓글씨 46점이 경인미술관 1·2층을 채우고 있다. 대부분이 반야심경 260자부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청정심시불(淸淨心是佛), 선묵일여(禪墨一如) 등 불교 관련 구절이다. 욕심이 없어서 그런지 소박하고 맑은 글씨다.

붓을 든 지는 꼬박 22년째. 젊은 시절에도 배워볼까 궁리하다 성철 스님으로부터 수행이나 하라는 야단을 맞고 중단했다. 그사이 강원과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9년간 공부하며 석박사를 밟고 봉녕사에서 학인 스님들을 가르쳤다. 그러다 오십 줄에 한 스승을 만나 "늙은 저도 되겠어요?"라고 용기를 내었다. 서예의 매력은 뭘까. "붓끝에 마음이 가면서 잡념이 끝내주게 없어져요. 제가 심장이 나빠서 기운이 없는데 붓을 잡으면 써지거든. 일어나는 망상이 까만 글씨에 묻히죠. 붓을 쥘 팔힘만 있으면 되니까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같아요."

과거에는 스님처럼 전쟁과 가난에 가족이 줄줄이 출가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성철스님의 딸 불필스님, 청담스님의 딸 묘엄스님의 이야기도 유명하다. 불필스님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른 적이 없었다"고 했다. 탁연스님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어머니 소리도 못했어요. 어머니라는 소리는 어설픈 소리로 들려요. 혀가 잘 안 돌아가. 스님이라는 말이 훨씬 정겹죠."

모친인 벽해스님은 지병으로 2019년 입적했다. 마지막 10년을 스님이 경남 사천 용화사에서 모셨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수행자의 삶은 어땠을까.

"참 좋은 것 같아요. 불교에서 말하는 용어를 써도 말이 잘 통하니까. 척하면 척이죠."

20여 년 전 종단 총무원 부장으로 임명되자 어머니는 "안 올라가면 안 될까. 있는 듯 없는 듯 살지" 하며 만류했다.

"총무원 부장이 본사 교구 주지급이에요. 아직 비구니 가운데 본사 주지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지요. 그나마 한국 불교가 남방불교보다 여성의 지위가 높지만 아직 사회 평균보다는 낮은 셈이지요."

스님은 평소 신도들에게 '나답게 살라'는 말을 많이 건넨다.

"저도 참선할 체력이 안 됐어요. 허리가 아파서 오래 버티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죠. 병치레도 많이 하고 간도 나쁘고. 한 번은 작은 암자 주지를 하는데 신도님들이 하소연하고 가면 그게 너무 크게 와닿아서 한 달 정도 아팠어요. 주지는 못하겠다 싶어서 공부를 파고들었죠."

그는 이어 "모두가 '답게'만 살 줄 알면 만사형통"이라며 "자기 선 자리에 맞게, 학생은 학생답게 교사는 교사답게 그러면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답게'만 살면 부처가 된다"고 말했다.

스님은 일본 릿쇼대학에서 유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식학은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 작용하는 거라는 겁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다 업이 돼 팔식이라는 창고에 쌓이게 돼요. 노력하고 노력하면 이뤄지는 거지요."

모두에겐 각자에게 맞는 수행법이 있다. "참선을 못하는 나 같은 입장에선 염불을 해야 합니다.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한 덩어리가 돼 너무 좋지요. 그런데 30분 하면 지쳐요. 그래서 경전을 봤지요. 독경·사경을 하든지 뭐든지 해보고 나에게 맞는 걸 잘 찾아야 합니다."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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