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이 던진 ‘상법개정+경영판단원칙’ 도입…“도리어 소액주주 보호 저해 우려”
법조계 “미국 델러웨어주도 주주 이해관계 충돌 때 경영판단 원칙 배제”
재계, 경영판단 원칙은 2002년 대법 판례 이후 소극적 적용돼
‘상법 개정안’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꺼내든 ‘경영판단 원칙’ 법제화를 두고 법조계와 재계에서 모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영판단 원칙이 도입되면 법조계에선 소액주주를 위해 마련되는 상법 개정 자체를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이유로, 재계에선 경영판단 원칙만으론 잦은 소송에 시달리는 문제를 막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이 원장이 ‘경영판단 원칙’이라는 개념을 주장한 건 지난 14일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넓히는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다. 상법개정안 추진 전제 조건으로 경영판단 원칙을 법에 명시하자는 것이다.
‘경영판단 원칙’이란 이사가 회사 관리자로서 일반적으로 지켜야 할 의무(선관의무)를 다했다면, 회사가 손해를 입었더라도 개인적 책임을 지우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이 원장은 “단순히 선언적인 형태로 도입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이사회가 그 내용 및 절차 면에서 중요 의사결정시 거쳐야 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의무를 명시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기업과 관련한 모든 민형사상 법적 다툼에 적극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본다.
경영판단 원칙은 현재 국내에 명문 규정으로는 없지만 2002년 대법원 판례를 시작으로 법원이 재량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경영판단 원칙은 현재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 취지와 충돌한다고 본다. 경영판단 원칙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에까지 반영되면 자칫 일반 주주에 해를 끼치는 기업의 의사결정을 법적으로 오히려 보장해주는 역효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이 입법례로 삼는 미국 델라웨어주는 이 때문에 ‘이사 충실의무’ 사안에서는 경영판단 원칙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변호사)은 “미국에서는 주주간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합병과 같은 사안에서 경영판단 원칙이 배제되고 완전한 공정성 기준(entire fairness standard)이 적용된다. 절차적, 실체적 공정성을 합병을 하려는 이사가 증명해야 하지만 매우 엄격한 기준이어서 인정 받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말했다.
2014년 이후 델라웨어 법원은 독립된 특별위원회 승인, 이해관계 없는 주주들의 승인 등 일부 요건을 전제로 이해관계 상충 사안에서도 경영판단 원칙을 적용했다. 하지만 지난 1월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은 일론 머스크에게 560억달러(77조원) 규모 스톡옵션 보상을 지급한 테슬라이사회 결정을 문제삼은 소액주주 소송에서 경영판단 원칙이 아닌 공정성 기준을 적용시켰다. 지난 4월 델라웨어주 대법원은 경영판단 원칙을 적용하는 두가지 요건을 더 강화하는 판례를 내놓기도 했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안에서 경영판단 원칙을 적용하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다.
재계에서도 경영판단 원칙+상법개정안 투트랙 방향에 반대한다. 일단 이미 판례상 적용되고 있는 개념이지만 이를 통해 민형사 책임이 완화되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한국경제인협회의 2022년 보고서를 보면, 경영판단원칙을 다룬 대법원 판례는 지난 10년(2011~2021년)간 총 89건(민사 33건, 형사 56건)에 불과했다. 이중에서도 경영판단 원칙이 인정된 재판은 34건(38.2%)에 그쳤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기업들의 법적 리스크는 상시적으로 소장이 날아와 소송에 시달리며 생기는 문제”라며 “경영판단원 원칙 법제화 자체는 찬성하지만 그것만으론 상법 개정에 대한 기업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도 “한국은 미국과 달리 합병가액 및 합병비율 산정 규제가 있고 주식매수청구권이란 주주 보호장치도 있다”며 “미국식 경영판단 원칙 등을 가져오려면 제도적으로 완벽하게 도입해야 하는데 현행 한국 법제도와 맞지 않는 면이 많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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