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명소' 된 구둣방의 한숨…"흡연구역 폐쇄되자 이런 일이"[르포]
"꽁초 때문에 소방차도 왔어요."
지난 12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수송동 한 건물. 이곳에서 구둣방을 운영하는 A씨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구둣방 옆에는 직장인 2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 연기는 창문을 타고 구둣방 안까지 들어왔다. 구둣방 옆에 놓인 박스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A씨는 "매번 기침하는 게 일"이라며 "평소 천식이 있는데 담배 연기 때문에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또 "담배 꽁초 때문에 또 불이 날까봐 주전자에 물도 담아둔다"며 "민원을 수십건 넣어도 개선이 안 된다"고 전했다.
이곳 구둣방 옆이 종로구 '담배 명소'가 된 것은 뒷건물에 있던 흡연구역이 폐쇄되면서부터다. 흡연 공간이 사라지면서 흡연자들은 공원 앞, 인도 옆, 구둣방 옆으로 모였다.
서울시 등에 따르면 25개 자치구가 지정한 실외 흡연 시설은 총 118개다. △종로구 1개 △마포구 1개 △구로구 1개 △동작구 1개 △강서구 2개 △광진구 2개 △노원구 3개 △성동구 5개 △중구 7개 △영등포구 10개 △서초구 48개 △서울시 11개 한강공원 37개 등이 있다.
종로구 거리는 점심 시간 흡연을 위해 건물에서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로 가득찬다. 이런 현실과 달리 실외 흡연 구역은 수송공원 한 곳뿐이다. 무더운 날씨를 뚫고 수송공원까지 오가기 힘든 시민들은 거리 곳곳에서 담배를 피운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금연구역 외 어디에서든 흡연할 수 있다.
보행자는 불만을 토로한다. 30대 임산부 김모씨는 "광화문 거리를 걷다 보면 뿌연 연기가 자욱하다"며 "회사 출퇴근할 때마다 기침을 하는데 진짜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흡연자도 마찬가지다. 50대 직장인 설모씨는 "금연 구역이 아니라도 사람이 지나가면 괜히 고개를 돌린다"며 "무조건 없애고 억누른다고 좋은 게 아니라 퇴로를 만들어줘야 부작용도 없다"고 말했다.
종로구 흡연 구역인 수송공원 역시 정돈되지 않은 모습이다. 종로구청에 따르면 수송공원 자체는 금연공원이다. 다만 공원 내 흰색으로 표시된 8 X 2m 구역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있다.
공원을 찾은 시민들 중 공원 내 흡연 구역이 따로 있는지 아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공원 안에는 '수송 공원은 금연 공원', '수송공원 내 흡연구역 운영' 등 내용이 정반대인 현수막이 동시에 걸려 있었다.
이날도 흰색 구역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들과 공원 밖 도보에서 일렬로 줄을 선 채 담배를 피우는 이들이 섞여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길을 지나 가던 시민들은 얼굴을 찌푸리며 코를 막거나 연기를 손으로 휘날리며 걸었다.
직장인 김모씨는 "공원 안에서는 담배 피우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당연히 밖에서 피웠다"며 "안쪽에 흰색 표시도 흐릿하게 적혀 있어서 흡연구역이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종로구는 흡연 구역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수송공원 역시 사유지 일부를 무상 임대 형태로 토지 사용을 승낙 받아 흡연 구역을 설치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흡연 구역을 설치하려면 보행자의 간접 흡연 방지를 위한 충분한 거리 확보 등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며 "구도심인 종로구의 경우 좁은 보도 특성상 흡연 구역을 설치할 장소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흡연권과 간접흡연 사이의 절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신승호 대구보건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2001년 일본에서는 담뱃불 때문에 어린아이가 실명된 이후 길거리 흡연은 금지되고 구역별로 흡연 구역이 마련됐다"며 "흡연 구역이 생기자 도심은 깨끗해지고 간접 흡연도 사라지도 흡연권까지 보장됐다"고 말했다.
이어 "흡연률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간을 없앤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담뱃값 절반은 세금으로 쓰이는 만큼 흡연자들에게 혜택을 실질적으로 돌려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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