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섬 도착한 난민, 해안경비대가 바다에 내던져”···BBC ‘난민 밀어내기’ 폭로

선명수 기자 2024. 6. 1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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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에리트레아와 수단 출신 이주민 40명을 태운 보트가 이탈리아 람페두사섬 남쪽 지중해에서 전복돼 사람들이 헤엄치고 있다. 이 배에 탑승했던 이주민들은 NGO 오픈암즈 대원들과 이탈리아 해안경비대에 의해 구조됐다. AP연합뉴스

그리스 해안경비대가 지난 3년간 지중해를 통해 그리스 섬에 도착한 난민 수십명을 다시 바다로 밀어내 사망에 이르게 했으며, 이 가운데 최소 9명은 보트나 구명조끼 없이 그대로 바다에 내던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17일(현지시간) 영국 BBC는 생존자와 목격자 증언, 관련 자료 및 현장 영상 등을 토대로 이같이 보도했다.

그리스는 아프리카·중동 출신 난민들이 지중해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이다. 그간 그리스 정부는 지중해를 통해 유입되는 이주민이 급증하자 해상에서 표류하는 난민선을 발견하면 자국 영해 밖으로 이를 견인하는 이른바 ‘난민 밀어내기’를 해 수년간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러나 그리스 당국은 이를 부인해 왔다. 망명 신청자를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강제 송환하는 것은 국제법상 불법이다.

BBC는 2020년 5월부터 2023년 5월까지 3년간 그리스 해안경비대가 최소 15차례 ‘난민 밀어내기’를 해 최소 43명이 바다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 가운데 5건은 이주민들이 그리스에 상륙해으나, 해안경비대에 의해 직접 바다로 던져진 사건이다.

한 카메룬 출신 이주민은 2021년 9월 천신만고 끝에 그리스 사모스섬에 상륙했으나, 검은 옷을 입고 복면을 쓴 남성들에게 체포돼 그리스 해안경비대 보트로 옮겨졌고, 곧이어 이들에 의해 바다에 내던져 졌다고 BBC에 증언했다.

그는 “‘살려 달라’고 외쳤지만 물 속에 던져졌고, (보트에 매달리자) 머리 위로 주먹질이 쏟아졌다. 마치 짐승을 때리는 것 같았다”면서 구명조끼도 없이 바다에 그대로 던져졌다고 말했다.

이 생존자는 해안가까지 수영을 해서 가까스로 생존했지만, 함께 바다로 던져진 2명은 결국 사망해 튀르키예 해안가에서 시신이 수습됐다. BBC는 이 생존자가 그리스 당국에 살인 사건을 수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말리아 출신의 또 다른 이주민은 2021년 3월 그리스 키오스섬에 도착하자마자 군인들에게 붙잡혀 해안경비대로 넘겨졌고, 해안경비대가 바다로 배를 몰고 나가 자신의 양손을 뒤로 묶은 채 바다에 빠뜨렸다고 증언했다. 이 남성은 결박된 손이 풀리면서 가까스로 생존했고, 튀르키예 해안경비대에 발견돼 구조됐으나 일행 중 3명은 사망했다고 말했다.

지난 3월6일(현지시간) 이주민들이 소형 보트를 타고 유럽으로 입국하기 위해 영국 해협을 건너고 있다. EPA연합뉴스

인명 피해가 가장 컸던 사건은 2022년 9월 85명을 태운 난민선의 모터가 그리스 로도스섬 인근에서 고장나며 발생한 참사다. 이주민들은 인근에 있던 그리스 해안경비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해안경비대는 이들을 구명보트에 태워 튀르키예 해역 쪽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구명보트의 밸브가 제대로 잠기지 않으면서 침몰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도움을 요청했으나 해안경비대는 이들을 버리고 가버렸다고 생존자들은 증언했다.

그리스 국내법은 망명을 원하는 이주민들이 여러 섬에 마련된 등록센터에서 망명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뷰에 응한 이주민들은 센터에 도착하기도 전에 체포됐으며, 체포한 이들이 제복을 입지 않은 채 복면을 쓰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인권단체들은 유럽으로 망명을 원하는 수천명의 난민들이 그리스에서 튀르키예로 강제 송환돼 국제법과 유럽연합(EU)법에 명시된 망명 신청권을 거부당하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오스트리아의 인권 활동가 피야드 뮬라는 지난해 제보를 받고 그리스 레스보스섬에서 여성과 아기가 포함된 한 무리의 이주민들이 불법 체포돼 바다에 버려지는 영상을 촬영했다. 해안경비대는 육지에 도착한 이들을 다시 바다 한가운데로 옮긴 뒤 뗏목에 태워 표류하도록 방치한 채 떠났다. 이 영상을 확인한 전직 그리스 해안경비대 특수작전 책임자 드미트리 발타코스는 BBC에 “명백한 불법이며, 국제 범죄”라고 말했다.

그리스 정부는 해당 영상에 담긴 내용을 조사 중이라고 BBC에 밝혔다. 그리스 해양경비대는 ‘난민 밀어내기’를 부인하며 “생명과 기본권에 대한 존중을 갖고 국제적 의무를 완전히 준수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1월10일(현지시간) 그리스 레스보스섬에서 난민선 난파 사고가 발생한 후 구명정이 해안가에 떠밀려 와 방치돼 있다. AP연합뉴스

유럽 남부에 위치한 그리스는 이탈리아와 함께 유럽행 난민들의 주요 관문이다. 지난해 해상을 통해 유럽에 도착한 난민은 26만3408명에 달하며, 그리스는 이 가운데 16%에 달하는 4만1561명을 수용했다.

지난해 그리스 남부 해안에서 600명의 희생자를 낳은 난민선 침몰 사건 역시 그리스 해안경비대의 무리한 견인 시도 끝에 침몰했다는 증언이 나온 바 있다. 국제인권단체와 생존자들은 해안경비대가 표류 중인 난민선의 구조 요청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견인을 시도해 배가 전복됐다고 주장했으나, 그리스 당국은 이를 부인해 왔다.


☞ 침몰 전 7시간 운항 멈춘 배···‘그리스 난민선 참사’ 남는 의문점
     https://www.khan.co.kr/world/europe-russia/article/202306191716001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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