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급한데, 또 휴진이라니"···헛걸음한 환자들 분통
접수 창구앞 의자 절반이상 텅텅
진료 예약 받는 키오스크도 한산
병원 의료 관계자 업무 과중 호소
일부 노조, 진료 연기 업무 거부도
환자단체들, 휴진 규탄·복귀 촉구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치료를 위해 올라왔는데 진료를 못 받을 수 있어 불안합니다. 의사들과 정부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17일 방문한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은 한산하다 못해 적막한 모습이었다. 환자들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접수 창구 앞 의자는 절반 이상이 비어 있었고 진료 예약이 가능한 키오스크 앞에는 아무도 줄을 서 있지 않았다.
이날 병원을 찾은 이 모(69) 씨는 올해 5월 이곳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은 뒤 제주도에서 처치를 받다 재검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당초 이 씨는 의사 2명과 상담을 하기로 했지만 이틀 전 병원에 문의하니 ‘집도의 한 명은 자리를 지키지만 다른 한 명은 휴진’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이 씨는 “병원 측에서 다시 방문하라면 어쩔 수 없이 와야 하는데 제주도에서 서울까지는 환자가 이동하기에 먼 거리”라며 “암 환자 중에서 수술을 받지 못하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걱정이 크다”고 털어놓았다.
서울대병원 소속 교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하며 이날부터 무기한 휴진에 돌입한 가운데 병원을 방문한 환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환자 단체들은 휴진에 참여한 의사들에게 복귀를 요구하고 있고 병원에 남은 의료 관계자들 또한 업무 과중을 호소했다.
지난달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은 아내와 함께 다음 주 수술을 위한 사전 검사를 받기 위해 서울 종로구 소재의 서울대병원을 방문한 이 모(45) 씨는 “진료 파업 전에 수술 일정이 이달 25일로 확정됐었다. 그 이후에 담당 의사로부터 ‘파업 때문에 일정이 조정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어 “수술이 지연된다는 말을 듣게 되니 불안하다. 설령 수술이 진행되더라도 추후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등 절차가 많이 남았는데 결국 피해는 환자에게만 돌아갈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간암 진단을 받은 70대 모친과 함께 병원을 찾은 50대 배 모 씨 또한 “당초 아산병원으로 갔다가 몇 개월간 진료가 연기돼 종양 크기가 첫 발견 당시 2㎝에서 지금은 5㎝까지 자랐다”며 “이후 서울대병원으로 옮긴 뒤 치료가 잘 진행돼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까지 무기한 휴진한다는 소식을 들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배 씨는 언제 변화할지 모르는 상황 탓에 예비로 또 다른 병원에 추가로 진료 예약을 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병원 자원봉사자는 “지난주에 비해 의사 집단 휴진이 시작된 이날 절반도 되지 않는 환자들이 방문한 것 같다”며 “환자 본인들이 사전에 대형 병원 대신 작은 병원들로 이동하는 등 전반적으로 파업의 여파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병원에 남아 있는 의료 관계자들도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부 병원 노조는 “현장을 지키는 병원 노동자들의 동의도 받지 않은 집단행동으로 파생된 업무에 강제 동원되지 않을 것”이라며 진료·수술 연기 또는 예약 취소 업무를 거부하기도 했다.
환자 단체들도 서울의대 교수들의 집단 휴진 소식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입장문을 통해 “서울의대 비대위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기한 전체 휴진’이라는 선택을 꼭 했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왜 환자들이 의료계와 정부의 극단적인 대립 속에서 피해를 봐야 하나. 질병으로 이미 아프고 두렵고 힘든 환자들에게 집단 휴진 및 무기한 전체 휴진으로 또다시 고통과 불안과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응급환자·중증환자가 피해 보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서울의대 비대위의 입장에도 반박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서울의대 소속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서울시보라매병원 등에서 치료받고 있는 비응급이나 중등도 환자는 불안과 피해를 겪어도 된다는 의미냐”며 “전공의 9000여 명이 4개월 이상 의료 현장을 이탈한 상황에서 의대 교수마저 무기한 전체 휴진에 돌입하면 의료 공백으로 인한 환자 불안과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고 환자 안전도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형임 기자 jang@sedaily.com이승령 기자 yigija94@sedaily.com채민석 기자 vegemi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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