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막막해"…서울의대 교수 집단 휴진에 환자들 발 동동[르포]

이영민 2024. 6. 1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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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대병원 교수진 집단 휴진
검사·치료 연기된 환자들…"안내 없었다"
"정부가 환자 피해 확인해 원칙 대응해야"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박동현 김한영 수습기자] “점점 증상이 심각해지는데, 집단 휴진이라니요. 저는 어떡하라는 건가요.”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집단 휴진을 시작한 17일, 급하게 병원을 찾거나 예약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한 환자와 보호자들의 얼굴엔 불안감이 역력했다. 특히 이번 집단 휴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중증 환자들이 느끼는 공포는 극에 달하고 있었다. 여기에 구급대원들 역시 의료계 파업의 여파가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비상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와 환자단체는 이제라도 정부가 의사들의 단체행동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 의대 산하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서울대병원강남센터 등 4개 병원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에 돌입한 17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환자들이 이동하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
응급환자도 당일 취소…“진료 연기 영향으로 증상 심화되기도”

이날 이데일리가 방문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과 동작구 보라매병원에는 이른 아침부터 응급입원을 접수하거나 예약진료를 받으려는 환자와 보호자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관악구에 사는 김모(35)씨는 이날 출근 시간임에도 보라매병원 응급실 앞에서 주말 사이 증상이 심각해진 여자친구를 기다렸다. 김씨는 “동네의원에서는 입원해야 한다고 하는데 병상이 없어서 입원이 어렵다고 들었다”며 “입원해도 먼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하고, (집단 휴직으로) 앞으로는 의료진이 없다고 하는데, 어떡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또한 100일 넘게 이어진 전공의 이탈로 치료가 미뤄졌는데, 집단휴진이라는 난관을 만난 환자들은 치료시기를 또 놓칠까 전전긍긍했다. 관악구에 사는 윤모(66)씨는 3~4달 전부터 말이 안 잘 나와서 보라매병원을 찾아왔다. 하지만 윤씨는 신경과 의사가 없어 번번이 검사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3번이나 응급실 입원이 거부된 그는 지난달 다른 대학병원에서 루게릭병 의심 진단을 받았다.

윤씨는 “‘왜 거부했느냐’고 병원에 항의하고 나서야 지난 13일 신경과 의사가 사과했다”며 “진료가 늦어지면서 말이 점점 어눌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배우자 도움 없이는 대화하지 못하고 호흡 곤란도 심해졌다”며 “오늘은 증세가 너무 나빠서 간호사가 병동을 급히 잡아줬는데, 내일 왔으면 못 들어왔을 것이다”고 하소연했다.

같은 날 서울대병원 본관에도 예상치 못한 취소와 지연 탓에 가슴을 졸이는 환자들이 있었다. 은평구에 사는 윤모(67)씨는 오전 7시부터 서울대병원을 급히 방문했다. 병원 측으로부터 ‘상황에 따라 예약을 다시 조정해 연락드릴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항암치료 때문에 혈소판 수치가 응급수준인 1만8000uL(정상수치 15만~45만uL)로 떨어졌다. 윤씨는 “1년 만에 검진 있어서 왔는데 오늘 초음파 검사가 취소됐다”며 “혈액내과에서도 조심하라는데 걱정이다”고 말했다. 하루 전 경북 포항에서 온 간암환자 김모(74)씨는 “금요일에 진료를 받으러 와야 하는데 휴진 영향을 받을까 너무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전공의 사태 해결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간 17일 서울대학교병원이 한산하다.(사진=연합뉴스)
전공의·교수 이탈로 환자 이송도 빨간불…“정부 엄정 대응 필요”

교수진의 집단휴진 소식에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구급대원들도 답답함을 드러냈다. 특히 대형병원이 밀집된 서울지역의 소방인력들의 경우 아침마다 휴진 의료기관의 현황을 파악하는 등 비상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시급한 환자의 경우 소방헬기까지 적극 활용하라는 지시도 내려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급대원 A씨(33)는 “사실 집단 휴진 전부터 파업 때문에 병원 선정이 계속 어려웠다”며 “5번 이상 이송지연이 발생하면 보고하라고 안내받았는데 내부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급대원 B씨도 “정신과나 소아과 같은 특수과나 단순 비응급환자는 응급실을 5곳씩 못 가는 일이 정말 흔하다”며 “의사들의 단체 행동 이후 한번 출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했다.

집단휴진의 여파가 가시화되자 환자단체는 정부에게 원칙에 입각한 단호한 행동을 주문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장은 “지금 상황은 전공의 이탈과 의대 증원 숫자에 집착한 정부 정책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환자 개인이 대응하기 어렵다”며 “모든 피해를 환자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휴진을 철회시키고, 재발방지 대책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에 대해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환자의 생명에 구체적인 피해가 확인되면 정부도 법적 조치를 하지 않을 수 없어 상황이 다르게 전개될 것”이라며 “의사들은 이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송기민 한양대 보건학과 교수는 “그동안 정부는 일이 커질 것을 염려해 의사들을 처벌하지 않았는데 어정쩡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환자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송 교수는 “의료법 15조 거부금지의 원칙은 의사가 환자에 대해 정당한 이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며 “정부가 각 병원에 신고센터를 만들어서 진료 거부로 장애가 남거나 증상이 심해진 사례를 파악하고 원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영민 (yml122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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