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심장' 에릭센, 심정지 1100일 만에 덴마크 유니폼 입고 '유로 데뷔골' 폭발..."행복하다" 웃음 만개
[OSEN=정승우 기자]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유로 대회에 복귀했다.
덴마크 대표팀은 17일(한국시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아레나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24 C조 1차전에서 슬로베니아와 1-1로 비겼다.
에릭센은 이 경기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다. 에릭센 입장에서는 뜻깊은 경기였다. 유로는 그에게 큰 아픔을 남겨줬던 대회이기 때문이다.
에릭센은 지난 2021년에도 덴마크 유니폼을 입고 유로 2020에 참가했다. 덴마크의 10번이면서 대표팀 최고의 선수였다. 팬들과 국민들의 기대로 어깨가 무거웠다. 에릭센은 조국의 기대를 짊어지고 그라운드로 나섰다.
문제가 생겼다. 핀란드전을 치르던 도중 급성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쓰러졌다. 전 세계 축구팬들을 충격에 빠뜨리는 일이었다.
다행히 에릭센은 의식을 찾았고, 심장 제세동기(IDC)를 달고 피치로 돌아오며 큰 감동을 안겼다. 이탈리아 무대의 규정 때문에 더 이상 인터 밀란에서 활약하지 못하게 된 그는 브렌트포드와 6개월 단기 계약을 맺으며 프리미어리그로 복귀, 여전한 실력을 과시했고 지난 시즌부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활약하고 있다. 여전히 IDC를 심장 쪽에 꽂고 있긴 하나 경기장에서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꾸준히 활약한 에릭센은 덴마크 대표팀에도 복귀했고, 다시 유로 무대를 밟게 됐다. 슬로베니아전은 그가 쓰러진 지 정확히 1,100일 만에 치른 경기였다. 이날 에릭센은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 모르텐 히울만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덴마크 중원을 책임졌다.
에릭센은 감격의 득점까지 맛봤다. 전반 17분 요나스 빈이 스로인을 받아 뒷발로 공을 내줬고, 이를 에릭센이 속도를 살려 달려들어서 슈팅으로 마무리했다. 생애 처음으로 유로에서 골망을 가른 에릭센은 덴마크 팬들을 향해 팔을 뻗고 달려가며 기쁨을 만끽했다. 덴마크가 후반 32분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결승골이 되진 못했지만, 충분히 기적 같은 이야기였다.
영국 'BBC'는 "에릭센은 꿈 같은 유로 복귀를 즐기면서 남다른 이야기를 썼다. 유로 2024에 출전하는 것조차 그에게는 성과다. 하지만 그는 심정지를 겪은 지 1,100일 만에 덴마크의 대회 첫 골까지 넣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집중 조명했다.
'CNN' 역시 "사건 발생 1,100일 만에 에릭센은 덴마크에 리드를 안겼다"라며 덴마크 대표팀의 팀닥터 모르텐 보에센의 3년 전 인터뷰를 전했다. 1,100일 전 보에센은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일단 에릭센은 팀에서 떠났다. 우린 심폐소생술을 진행했다. 심정지였다. 긴박했던 순간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골을 제외해도 엄청난 활약이었다. 이날 에릭센은 전반전 덴마크가 시도한 슈팅 8개 중 7개(슈팅 4회, 기회 창출 3회)에 직접 관여했다. 90분 동안 키패스를 7번이나 기록했다. 최고의 활약이다. 종료 휘슬이 불리고 에릭센의 이름이 POTM(Player Of The Match)으로 호명되자 덴마크 응원석에선 커다란 함성이 터져나왔다.
유로 복귀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에릭센. 그는 경기를 마친 뒤 "이번 유로 대회에서 내 이야기는 지난번과 많이 다르다. 유로에서 뛰는 건 항상 특별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에릭센은 "내가 유로에서 골을 넣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축구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 골로 팀을 도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라며 밝게 웃었다.
에릭센의 골을 본 덴마크 기자 애스커 보예도 "지금 그가 득점하는 걸 보는 일은 매우 특별하다. 에릭센이 그런 말을 하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는 그냥 '좋은 골, 훌륭한 어시스트였다'라며 흥분을 숨기지 못했다. 모든 덴마크 팬들에게는 정말 정말 특별한 일이다. 그는 아주 인기가 많다. 그 사실은 그에 대해 많은 걸 말해준다"라며 기뻐했다.
한편 덴마크는 이번 대회에서 유로 1992 이후 32년 만의 유럽 정상에 도전한다. 지난 유로 2020에서는 에릭센의 이탈을 딛고 4강까지 오르는 성과를 냈다. 다만 준결승에서 잉글랜드에 1-2로 패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1차전 1-1 무승부를 거둔 덴마크는 오는 21일 잉글랜드를 상대로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른다. /reccos23@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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