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문자 알림에 기절할 뻔”…산사태 겪은 예천 이재민들 화들짝
“아침부터 뺑~뺑~ 하고 울려대는데 기절할 뻔했지. 제대로 잠을 잔게 언젠지도 몰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회관에서 지난 12일 만난 윤재순씨(70)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휴대전화에는 이날 오전 8시26분쯤 전북 부안 남쪽 4㎞ 부근 지역에서 규모 4.8 지진 발생 사실을 알리는 기상청의 안전안내문자가 보였다.
윤씨는 “‘그 일’이 있고 난 뒤로는 마을 사람 모두 불안병에 걸렸다”며 “휴대전화 벨 소리만 울려도 깜짝깜짝 놀란다”고 토로했다. ‘그 일’은 지난해 7월 극한 호우로 인한 산사태다. 당시 경북지역에서는 예천 15명, 영주 4명, 봉화 4명, 문경 2명 등 모두 25명이 사망했다. 벌방리에도 주민 2명이 실종됐고, 아직 실종자를 찾지 못했다.
윤씨도 당시 급류에 휩쓸릴 뻔했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산에서 떠밀려온 바위 등 토사로 집을 잃은 그는 현재는 28㎡(약 8평) 남짓한 컨테이너 임시 조립주택에서 산다.
주민들은 장마철을 앞두고 올해도 피해를 보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고 있다. 윤혜식 할머니(84)는 “우리 집은 도랑 옆에 있다 보니 불안한 마음이 더 크다. 비만 오면 잠을 못 잔다”고 말했다.
벌방리 마을은 1년 전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산사태로 무너졌던 집들은 폐허 처럼 방치돼 있었고, 마을 곳곳에는 산에서 떠밀려온 바위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예천군 수해 피해 복구 대상 사업은 총 252건으로 총사업비 1922억원이 투입된다. 이 가운데 지방하천 등 타 기관이 시행하는 84건을 제외하고 168건을 예천군이 복구를 진행하고 있다. 복구율은 지난달 기준 54.2%에 불과하다. 산사태를 막을 사방댐도 건설계획 9곳 중 2곳만 완성됐다.
예천군 관계자는 “복구율을 이달 말까지 60%, 연말까지 80%로 끌어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인력과 장비를 신속히 투입해 장마를 대비한 대책도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임시주택 생활도 녹록지 않다. 작은 마당과 툇마루가 있던 시골집에서 살던 어르신들은 원룸 같은 비좁은 공간이 낯설기만 하다. 올해 설을 맞아 찾아오겠다는 자식들을 못 오게 말리신 어르신도 있었다. 정모 할머니는 “편하게 잘 곳도 없는데 불러서 뭐 하냐”며 “하루빨리 제대로 된 집에서 명절을 보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근 폭등한 건축비도 이재민을 힘들게 한다. 이재민이 받을 수 있는 정부 지원금과 위로금·의연금은 최대 1억300만원이다. 다만 최대치를 받을 수 있는 경우는 116㎡(약 35평) 이상 전부 파손된 주택 뿐이다.
피해 정도와 주택 규모에 따라 지원금은 5100만~1억300만원으로 차등 지급된다. 등기가 없는 무허가 건물이나 창고 등은 아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농촌의 경우 창고를 개조해 주거공간으로 사용하거나 무허가 건물에서 사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지원금을 못받다 보니 집 짓는 비용 대부분을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윤씨는 “아들이 (건축비가 많이 올라) 집을 다시 지으려면 4억도 더 넘게 든다고 하더라”며 “이 나이에 돈 빌려서 집을 지을 수도 없다. 그냥 조그맣게 지어서 여생을 보내겠다고 했다”고 씁쓸해했다.
김모씨(60대)도 “25평 주택을 짓는데 기본 공사비만 1억7000만원이 넘는다고 하더라”며 “보상금으로 집을 짓기는 커녕 자식에게 손을 빌려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최근 연일 뉴스가 되는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 역시 주민들에겐 마음의 짐이다. 마을 한 주민은 “실종된 이웃을 구하기 위해 젊은 청년이 죽었다는 소식에 당시 주민 모두가 안타까워했다”며 “빨리 수사가 끝나서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지게 해야 (채 상병) 부모도 자식을 보내줄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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