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현실로…서울대병원 일부 진료센터 교수·환자 '0명'
비대위 "수술실 가동률 62.7%에서 33.5%까지 떨어질 것"
병원 "진료 축소 사실이지만 큰 혼란 없어"…비대위 "교수들 근무 중"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권지현 기자 = 서울대병원 소속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에 돌입한 17일 서울대병원은 일부 진료가 축소되면서 '의료공백'이 현실화한 모습이었다.
교수들은 응급·중증·희귀질환 환자 등은 애초에 휴진 대상이 아니라면서 병원이 완전히 문을 닫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현실화한 의료공백에 환자들의 불안과 공포는 커져만 가고 있다.
이날 서울대병원 대부분은 가동됐으나, 암병원 내 일부 진료센터는 교수도, 환자도 없어 현실화한 의료공백을 실감케 했다.
이번 주 휴진에 서울대병원 교수 529명 참여…일부 센터 텅 비어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번 주중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 서울대병원 운영 서울시보라매병원, 서울대병원강남센터에서 환자를 직접 보는 교수 967명 중 529명(54.7%)이 휴진에 직접 참여한다.
전체 서울의대와 서울대병원 교수는 1천400여명 중에서 기초의학교실 등 진료를 보지 않는 교수 규모를 제외한 뒤 휴진 여부를 확인한 수치다.
비대위가 공개한 수치는 '이번 주 중' 휴진에 관한 것으로, 무기한 휴진 첫날인 17일 하루 휴진 규모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
비대위는 교수들의 외래 진료와 수술 일정 특성상 휴진율을 일주일 단위로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통상 교수들의 외래진료는 주 2∼3회다.
수술실 가동률은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후 62.7%에서 이날 휴진으로 33.5%까지 떨어질 것으로 비대위는 전망했다.
교수들이 집단 휴진에 참여하면서 그나마 많지 않던 외래진료마저 대폭 줄어든 현상도 목격됐다.
이날 오후 찾은 서울대병원 암병원 내 갑상선센터와 혈액암센터는 진료 중인 의사도, 환자도 한명도 없었다.
서울대병원 암병원 갑상선센터는 애초 월요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교수 2명이 외래진료를 하지만, 이날 오후에는 텅 빈 상태였다.
진료가 전부 조정됐는지 센터 앞 벤치에 기다리는 환자도 없어 인근에 있는 위암·폐암 센터와 대조를 이뤘다.
예정대로라면 혈액암센터도 월요일 오후에는 교수 1명의 외래진료가 있어야 하지만, 이날은 전혀 진료가 없어 썰렁한 모습이었다.
환자들 "하루하루 더 나빠질까 봐 초조", "기도하는 심정"
서울대병원의 무기한 휴진 소식이 확산하자 환자들은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근심에 휩싸였다.
진료가 미뤄졌다는 연락을 들은 환자는 일방적인 변경이 아니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아직 아무 연락을 받지 못한 환자는 진료 날짜가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냐며 불안을 호소했다.
신장병 환우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날 서울대병원에 예정돼 있던 진료가 내달 4일로 약 보름가량 미뤄졌다는 메시지를 공개하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켜봤는데 너무 실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시글 작성자는 "하루하루 더 나빠질까 봐 초조해하면서 한 달 만의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며 "콜센터 간신히 연결했더니 근처 병원에서 약 처방 그대로 받으라더라"고 했다.
무기한 휴진으로 언제쯤 진료가 정상화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직 예약 변경 연락을 받지 못한 환자들도 근심하는 건 마찬가지다.
또다른 환자 커뮤니티에는 "17일에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진료 보는 분 있느냐"며 "간호사실 대답이 명확하지 않더라. '저희도 몰라요'라고 하는데 다녀오시면 좀 알려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게시글 작성자는 내달 초 진료를 앞두고 병원으로부터 별다른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작성자는 "기다리다 낭패 보는 건 아니냐"고 하기도 했다.
병원과 간호사들이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없는 것은 병원장이 집단휴진을 불허하면서 교수들이 직접 환자들에게 연락해 진료 일정을 조정하고 있는 영향이 크다.
교수들과 비대위가 개별적으로 진료를 변경하다 보니 병원에서도 실질적인 휴진 규모를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병원 "진료 축소 사실이지만 큰 혼란 없어"…비대위 "교수들 근무 중"
환자들이 극심한 불안을 호소하는 가운데 병원은 이날 완전히 문을 닫은 진료과목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비대위가 예고했던 대로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은 평소와 다름없이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일부 진료가 축소된 건 사실이지만 전반적으로 큰 혼란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비대위 역시 휴진 기간에도 중증·응급·희귀질환 등 필요한 진료를 유지하겠다고 거듭 약속하면서 환자들을 진정시키고 있다.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주 동안의 외래와 수술 일정이 조정되긴 했지만, 서울대병원은 열려 있고 교수들은 근무 중"이라며 "응급환자는 병원에 오시면 진료를 받으실 수 있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휴진에 참여하는 교수들에게도 필요한 진료는 유지해달라고 당부한 상태다.
비대위는 지난 15일 교수들에게 안내한 '휴진 기간 교수 행동 지침'에서 "휴진 또는 외래 예약 조정을 완료했더라도 반드시 출근해서 원내에 상주하면서 긴급한 상황에 대비해주시길 바란다"며 "예약을 옮기기 힘들거나, 예약 변경을 인지하지 못하고 내원하는 환자 등 필요한 환자분들께는 적절한 진료 제공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교수들이 생각하는 '전체 휴진'은 통상 외부에서 생각하는 휴진과는 다르다고도 밝혔다.
강 위원장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김영태 서울대병원장과의 통화 내용을 전하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강 위원장은 "교수 90%가 휴진에 찬성한다면 과연 국민들께서 서울대병원 교수라는 자들이 국가중앙병원, 대표적인 공공병원의 교수로서 자격이 있는 자들인가 의심할 것이라는 원장님의 우려 섞인 전화에 저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면서 "교수님들의 참여율이 이렇게 높은 건 우리가 생각하는 '전체 휴진'이 밖에서 생각하는 휴진과는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진료를 전면 중단하는 게 아니라, 미뤄도 당분간 큰 영향을 받지 않는 환자들의 정규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는 것"이라며 "국민들께 피해를 주거나 협박하고 불안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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