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죽인 '거제 교제폭력' 가해자, 징역 갔다와도 20대···제2, 제3의 효정이 없어야"

김수호 기자 2024. 6. 1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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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룸 캡처
[서울경제]

‘거제 교제폭력 사건' 피해자 고(故) 이효정씨의 유가족이 "제2, 제3의 효정이가 있어선 안 된다"며 교제폭력에 대한 처벌 강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14일 자신을 '효정이 엄마'라고 밝힌 A씨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교제폭력 관련 제도 개선 요청에 관한 청원'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A씨는 "행복한 일상이 4월 1일 아침 9시 스토킹 폭행을 당했다는 딸아이의 전화 한 통으로 무너졌다"며 "20대의 건장한 가해자는 술을 먹고 딸아이의 방으로 뛰어와 동의도 없이 문을 열고 무방비 상태로 자고 있던 딸 아이 위에 올라타 잔혹하게 폭행을 가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응급실을 간 사이 가해자는 피해자 집에서 태평하게 잠을 자는가 하면, 10일 딸 사망 후 11일 긴급체포에서 풀려나 13일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다니며 ‘여자친구랑 헤어졌다. 공부해서 더 좋은 대학 가서 더 좋은 여자친구를 만나겠다’는 등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가해자는 피해자의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조문도, 용서를 구하는 통화도 없었다고 했다.

A씨는 "이제 21살밖에 안된 앳된 딸이 폭행에 의한 다발성 장기 부전 및 패혈증으로 4월 10일에 거제 백병원에서 사망 선고를 받았다. 청천벽력과 같은 현실에 부모와 가족들은 극심한 슬픔과 충격에 빠져 있다"며 "딸을 잃고 나서야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앞으로 어떻게 남은 자녀들을 키워나갈 것인지 몹시도 불안하고 겁이 난다. 사춘기 막내는 누나의 방을 보면 누나 생각이 나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가해자가 저희 집 주소도 알고 있고 가족들의 심신도 피폐해져 결국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제2, 제3의 효정이가 더는 있어선 안 된다. 우리 가족과 같은 고통을 받으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A씨는 "효정이는 경찰에 11회나 신고했지만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효정이는 가해자에게 폭행당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가해자는 상해치사, 주거침입, 스토킹으로만 기소됐다"며 "사람을 죽여놓고도 형량이 3년 이상의 징역밖에 안 돼 형을 살고 나와도 가해자는 20대다. 치사는 실수로 죽인 것이지만 가해자는 명백히 효정이를 죽이기 위해 목을 조르고 반항할 수 없도록 결박한 채로 폭행했다”고 강조했다.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A씨의 청원 내용은 3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로 그는 "가해자를 11번이나 멀쩡히 풀어준 거제 경찰의 책임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교제폭력에 대한 수사매뉴얼을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효정이는 가해자를 11번이나 신고했지만 경찰에서 번번이 쌍방폭행으로 처리해 풀어줬고, (가해자) 김씨는 더 의기양양해져서 제 딸에게 '이제는 주먹으로 맞는다' '너 죽어도 내 잘못 아니래'라고 했다"며 "심지어 경찰은 가해자가 구속될 때 '가해자 인생도 생각해달라'고 훈계하는데 억장이 무너졌다. 정작 효정이가 살려달라고 11번이나 신고했을 때에 경찰은 가해자에게 '효정 씨 인생도 생각해달라'라는 말 한마디, 권고 조치 한번 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이에 A씨는 "경찰은 김씨의 범죄를 스토킹 범죄로 처리해서 피해자 보호조치를 취할 수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서 "수사기관에서 교제폭력을 단순 쌍방폭행으로 종결시키지 못하도록, 신고 단계에서 신변보호조치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수사 매뉴얼을 전면적으로 개선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둘째로는 " 폭행·상해치사 가족·연인간 양형가중/스토킹 면식범 양형가중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A씨에 따르면 가해자 김씨는 폭행·상해치사죄로 기소됐고, 폭행·상해치사죄는 살인의 고의가 없는 범죄인만큼 살인죄보다 죄질과 형량이 훨씬 더 가볍다. A씨는 “교제폭력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살인 사건은 가해자가 오랜 기간 악질적으로, 상습적으로 피해자를 때리다가 죽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살인 사건은 폭행·상해치사죄로 취급되어 감형받는 면죄부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국회에서 지금 당장 교제폭력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고, 피해자들은 보호받을 수 있는 교제폭력처벌법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전했다. A씨는 국회의원들이 '교제 관계를 정의하기 어렵다'며 탁상공론을 하며 법제 개선을 외면하는 동안에도 수많은 교제폭력 피해자들이 살해당하고 있다"며 "국회에서 지금 당장 반의사불벌 폐지, 피해자보호조치를 포함해 제대로 된 법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청원은 올라온 지 3일 만인 17일 오후 1시 기준 3만 1000명의 동의를 구했다. 청원 공개 이후 30일 이내 청원 성립 요건인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국회 소관위원회에 넘겨져 관련 법 개정 논의가 이뤄지게 된다.

온라인커뮤니티에 퍼진 가해자 김씨 신상

앞서 김씨는 지난 4월 1일 오전 8시께 이씨가 살고 있던 경남 거제시 원룸에서 이씨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이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해 자고 있던 이씨를 무차별 폭행했다. 자신을 피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씨는 외상성 경막하출혈 등으로 전치 6주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를 받던 중 지난 10일 고열과 갑작스러운 상태 악화로 끝내 숨졌다.

당시 경찰은 김씨를 긴급 체포했으나 검찰이 ‘긴급 체포 요건인 긴급성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체포를 불승인하면서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했다. 당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씨 사망 원인이 폭행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구두 소견을 냈다. 이후 경찰은 국과수에 조직 검사 등 정밀 검사를 의뢰했고, 국과수는 최근 “이씨가 머리 손상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은 이 같은 결과 등을 토대로 지난달 20일 김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같은 날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 측은 "A씨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김수호 기자 su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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