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되는 휴진하게 된 이유는…" 소아흉부외과 교수 '통곡의 편지'
"저 아시죠? 시끌벅적하고 나서기 싫어해서 회진 때도 조용히 승현이랑 엄마 아빠만 보러 가는 거. 그런 제가 팔자에도 없는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서울대의대 산하 4개 병원(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강남센터)이 무기한 전면 휴진에 돌입한 17일 오전. 서울대의대에서 마련한 행사에서 곽재건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가 단상 위로 올랐다. 곽 교수는 선천성 심장병 환자를 주로 돌본다. 지금까지 4000명의 환자가 그에게서 진료받았다고 한다.
곽 교수는 이날 편지글을 통해 휴진을 시작한 이유와 지금의 심경을 밝혔다. 7년 전 선천성 심장병으로 수술받은 승현이와 엄마, 아빠에게 쓴 글이다. 그는 "지금까지 제 손을 거쳐 간 선천성 심장병 환자 중 가장 함께 고생하고, 병원 생활을 오래 한 것 같다"고 승현이를 기억했다. 곽 교수는 "막 태어난 아이가 심박수가 40 ~50밖에 안 돼 심박동기를 넣었고, 몸집만 한 그걸 어떻게서든 넣으려고 했던 그 수술이 인연이 됐다"며 "심장 기형에 따른 온갖 합병증이 왜 승현이한테만 왔는지. 심장 관련된 수술만 거의 6~7번 했다"고 떠올렸다.
주치의로서 심적으로 괴롭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는 곽 교수는 그럴 때마다 자신을 위로하고 힘을 불어넣어 준 건 승현이네 가족이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10시간이 넘은 전쟁 같은 수술이 끝나고도 가장 걱정했을 엄마, 아빠가 '승현이 괜찮나요' 묻기도 전에 제게 '정말 고생 많았다'고 이야기해줬다"며 "그럴 때마다 목 디스크가 터져도 허리가 끊어져도 어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나서 수술이 잘 됐다고 외치곤 했다"고 기억했다. 이어 어느덧 초등학교에 입학한 승현이에게, 힘든 치료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싫은 소리를 안 한 엄마와 아빠에게 그는 "정말 고맙다"고 거듭 말했다.
승현이네 가족처럼 어려운 과정을 함께 극복한 환자뿐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세상을 떠난 환자의 보호자들도 그에게는 버팀목이 돼줬다. 곽 교수는 "주변에서 이제 보내주자고 해도 뭐라도 더 해보자고, 몇 날 며칠을 주말이나 새벽할 것 없이 병원에서 살면서도 세상을 떠난 아이들도 있다"며 "넋 나간 표정으로 서 있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가와 '덕분에 며칠이라도 얘를 더 볼 수 있었다. 다음에 같은 병을 앓는 아이가 오면 그때도 꼭 살게 해주라고'고 하면 그땐 의사고 누구고 울 수밖에 없다"고 실제로 울먹였다.
곽 교수는 "(의사는) 승현이처럼 아픈 사람 수술하고, 어떻게 치료하면 제일 좋을지 미친 듯이 공부만 하고 그렇게 해서 좋아지면 바보처럼 허허 웃는 사람들"이라며 "전공의들도 집에 가라고 해도 안 가고 갖은 애를 쓰면서 환자를 돌본다. 그런데 이들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다 병원을 나갔다"고 비통해했다.
이어 "5000만 국민 중에 4900만명이 의사 욕하고 매도해도 어깨 쓰다듬어 주며 기운 북돋아 주던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하면서 이 일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저를 보고 이 일에 뛰어들려는 후배들에게는 적어도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게 해주고 싶다"며 "아무리 얘기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정부를 상대로 이야기 한 번 들어달라고 마지막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휴진을 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곽 교수는 "남들은 욕해도 어려운 과정을 함께 넘어온 심장병 환자와 가족들은 '샌님 같은 곽 선생'이 이럴 정도면 뭐라도 (이유가) 있겠지 할 것이라 생각한다. 오래 휴진하지는 못하니 조금만 참아달라"라며 "이상하거나 걱정되는 일 있으면 응급실, 중환자실 다 돌아가고 다른 병원 중환자도 힘이 필요하다면 다 받겠다고 했다. 평범한 의사지만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사람의 생명과 연관된 의료 정책이 탁상공론 정책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 이렇게 떠드는 것"이라고 발표를 마쳤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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