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수백억 해먹어도 몇 년만 옥살이하면 된다고요? [일상톡톡 플러스]

김현주 2024. 6. 1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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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왕’ 전세사기 피해자 또 늘어나
현재 집계된 피해액만 무려 536억원
“형량 최대 징역15년 넘어설 수 없어
서민 피눈물 범죄 처벌수위 높아져야”

“사기죄의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했지만, 입법상 한계로 이정도 형량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법원이 이른바 ‘세 모녀 전세사기’ 사건 주범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사기죄의 법정 최고형을 적용한 것인데, 재판부는 입법상 한계로 그 정도 형량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남겼다.
450억원대 전세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일명 ‘건축왕’이 80억원대 전세사기 혐의로 또 기소됐다.

인천지검 형사5부(조은수 부장검사)는 사기 등 혐의로 남모(62)씨 등 일당 29명을 추가로 기소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번에 추가 기소된 내용은 남씨 등이 인천에서 빌라나 소형 아파트 세입자 102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83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다.

앞서 먼저 기소된 전세사기 피해액 453억원(563채)을 더하면 남씨 일당의 전체 혐의 액수는 536억원(665채)으로 늘었다.

남씨 등은 또 금융기관에서 부동산 담보대출금 1억50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도 추가됐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남씨가 공인중개사인 딸에게 인천시 미추홀구에 있는 175세대 건물을 명의신탁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남씨에게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를, 그의 딸에게는 남씨에게 이미 적용한 범죄단체가입·활동 혐의를 각각 추가로 적용했다.

그가 딸 명의로 소유한 미추홀구 건물을 추징 보전해 동결 조치했다. 검찰 관계자는 "남씨의 딸도 아버지의 전세사기 범행에 조직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남씨는 148억원대 전세사기 혐의로 공범 9명과 함께 먼저 재판에 넘겨져 지난 2월 1심에서 사기죄의 법정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과 별도로 305억원대 전세사기 1심 재판은 따로 인천지법에서 진행 중이다. 그는 인천과 경기도 일대에서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2700채를 보유해 ‘건축왕’으로 불렸다. 지난해 2∼5월 남씨 일당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 4명이 잇따라 숨졌다.
연합뉴스
현재 전세 사기에 적용되는 형법 제347조 1항(사기)은 '사람을 기망해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피해자가 여러 명이어서 경합범이 될 때는 최고형의 2분의 1인 5년을 더해 징역 15년까지 가능하다.

이를 달리 말하면 상급심에서 사건이 합쳐지더라도 형량은 최대 징역 15년을 넘어설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회 차원에서 사기죄 최고형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대규모 전세 범죄를 가중 처벌하는 내용으로 발의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많은 서민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사기범들에 대한 처벌이 강해지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는 사기 치고 걸려도 몇 년만 빵에 살다 나오면 된다는 인식이 더욱 팽배해질 것"이라며 "서민 수백명을 울린 사기 범죄에 대한 처벌이 입법 한계에 가로막히는 일이 해소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도 전세사기를 악질적 중대범죄로 규정하고 법정최고형을 구형하는 추세다. 사기죄 양형기준은 2011년 설정된 이후 한 번도 수정되지 않았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4월 사기죄 양형기준 수정안 등을 심의했고, 오는 8월 사기 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뉴스1
정부가 공시가격과 함께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인정하는 감정평가액을 빌라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의 집값 산정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전세사기를 막기 위해 전세 보증 가입 요건을 강화했더니, 빌라 기피와 아파트 쏠림 현상이 심해진 데 따른 보완책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3일 발표한 '민생토론회 후속 규제개선 조치'에 전세·임대 보증 가입 기준 개편 방안을 담았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은 세입자가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HUG가 대신 돌려준 뒤 추후 집주인에게 받아내는 제도다.

전세 보증이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문제를 키운 도화선이 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지난해 보증 가입 요건을 잇달아 강화했다.

빌라 집값을 공시가격의 150%까지 쳐주던 것을 140%로 낮춘 데 이어 보증 가입을 허용하는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가 비율)을 100%에서 90%로 조정했다.

이에 따라 빌라 전세보증금이 공시가격의 126% 이하일 때만 보증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공시가격이 1억원이라면 전세금이 1억2600만원 이하여야 보증 가입이 된다는 뜻이다.

보증한도를 악용해 전세금을 높게 받은 뒤 떼어먹는 일을 막자는 취지였지만, 가입 요건 강화에 공시가격 하락까지 겹쳐 보증 가입이 어려워지다 보니 아파트로 임대 수요가 몰렸다. 빌라 기피 현상은 아파트 전세가가 55주 연속 상승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전세사기 사태의 깊은 후유증 속에서, '126% 룰'은 전세 시세를 정하는 사실상의 기준 아닌 기준이 돼왔다. 보증 가입 기준 완화로 숨통이 트일지 이목이 집중하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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