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혼란 없다지만…서울대병원 휴진에 환자 헛걸음, 수술 반토막
간절한 환자들 "제때 진료 못 받으면 어떡하나" 공포…"생명줄 갖고 줄다리기 안돼"
비판 목소리 높이는 환자·의료단체들 "의사, 국민 앞 무소불위 권력 아냐"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김잔디 권지현 오진송 김솔 홍준석 안정훈 기자 = 서울대병원의 일부 교수들이 17일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강남센터 등 4개 병원에서 집단휴진에 돌입했다.
우려했던 만큼 큰 혼란은 보이지 않았지만, 교수들의 휴진에 발걸음을 돌리는 환자들도 눈에 띄었다. 일부 병동은 대기하는 환자 없이 텅 빈 모습이었다. 수술장 가동률이 '반토막' 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집단휴진 장기화로 인한 의료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갑작스러운 진료 취소 등으로 환자들이 불안과 초조에 떠는 가운데, 환자단체와 보건의료 노동자 단체 등은 "환자를 정부를 압박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며 휴진에 나선 교수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비대위 "절반 이상 휴진…수술장 가동률 반토막"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서울의대 비대위)는 이날 전공의 사태 해결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갔다.
비대위에 따르면 휴진에는 필수·응급 등을 제외한 진료과목에서 529명의 교수들이 참여한다. 이는 전체 교수(1천475명)의 35.9%에 해당한다.
비대위는 전체 교수 중 응급·중환자 진료, 진료지원, 기초의학교실을 제외한 진료 담당 967명 가운데 참여 교수의 비율은 54.7%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또 수술장 가동률이 기존 62.7%에서 33.5%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휴진 기간에도 진료가 꼭 필요한 중증·희귀질환자 진료를 하기 때문에 실제 진료 감소는 40% 정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단휴진 참여 교수들은 이날 종로구 서울대병원 연건캠퍼스에서 휴진의 시작을 알리는 집회를 열었고, 오후에는 '전문가 집단의 죽음'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비대위는 이날 집회에서 "이미 의료 붕괴가 시작됐는데 정부가 귀를 막고 도대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마지막 카드는 전면 휴진밖에 없다"고 밝혔다.
방재승 비대위 투쟁위원장은 "의료 붕괴는 이미 시작됐고 우리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것"이라며 "정부가 끝까지 안 들어주면 휴진을 철회하고 항복 선언을 해야 하겠지만, 이후 의료 붕괴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날 서울대병원 무기한 집단휴진과 18일로 예정된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집단휴진에 앞서 전날 교수 집단 휴직으로 병원에 손실이 발생하면 구상권 청구를 검토하라고 대학병원장들에게 요청했다.
큰 혼란 안보이지만, 환자 발걸음 돌리기도…곳곳 "진료없습니다" 안내
이날 연합뉴스가 둘러본 서울대병원의 의료 현장에는 큰 혼란이 보이지는 않았다.
비대위가 밝힌 휴진 참여 예상 교수의 수는 '이번 주 중' 휴진을 참여하겠다고 밝힌 경우로, 집단 휴진이 장기화하면 진료실을 떠나는 교수들이 늘어나고 그만큼 의료 공백 상황도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오전 보라매병원 재활의학과에는 '진료가 없습니다'란 안내 팻말이 붙어있었고, 소화기내과 앞 전광판에는 진료의 3명 중 1명이 이날 휴진이라고 안내돼있었다.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환자 권모(69)씨는 진료 일정을 잡으러 병원에 왔지만, 내년 8월에나 진료받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평소 심장질환을 앓아왔는데 최근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어지럼증이 심해졌다는 그는 "그때까지(8월) 환자에게 어떤 상황이 닥칠지 어떻게 아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동작구 보라매병원 당뇨내분비센터에서 만난 이모(74) 씨도 20년째 이씨를 진료해온 의사가 하필 이날 휴진이어서 진료를 받지 못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서울대병원 갑상선센터 병동은 대기하는 환자 없이 텅텅 비어있었고, 보라매병원 재활의학과에는 '진료가 없습니다'란 안내 팻말이 붙어있었다.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의 경우 휴진 방침에도 불구하고 이날 이 병원의 진료과 가운데서 진료를 완전히 중단한 곳은 없었다.
모든 진료과가 운영되고 있는 만큼 병원 내부에 휴진을 안내하는 설명문도 보이지 않았다. 일부 과에서 교수들이 개별적으로 휴진에 나섰으나, 상당수는 정상 진료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일부 진료가 축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반적으로 큰 혼란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커지는 환자 불안…"아픈 환자 곁 떠나지 않았으면"
현장에서 만난 환자들은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병원 콜센터에는 교수들의 집단 휴진에 따른 변동 사항을 문의하는 전화 연락이 여러 차례 오기도 했다.
동생의 당뇨 치료를 위해 분당서울대병원 심장혈관센터를 방문한 70대 A씨는 "원래 교수님 두 분을 뵙기로 했는데 내과 교수님은 휴진하셔서 한 분의 진료만 받기로 했다"며 "(교수님) 한 분이라도 뵐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상황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된다"고 말했다.
영등포구에서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 서울대병원을 찾은 한 고령 남성은 "나는 운이 좋아서 진료받았지만, 병원에 못 오는 사람들 속은 오죽하겠느냐"며 혀를 찼다.
80대 모친을 모시고 보라매병원에 온 홍선표(63)씨는 "방금 채혈 검사를 하고 나왔는데 대기 인원이 평소보다 많다"며 "생명줄을 갖고 줄다리기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특히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근심에 휩싸였다.
진료가 미뤄졌다는 연락을 들은 환자는 일방적인 변경이 아니냐고 울분을 터뜨렸고, 아직도 아무 연락을 받지 못한 환자는 진료 날짜가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냐며 불안을 호소했다.
신장병 환우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날 서울대병원에 예정돼 있던 진료가 내달 4일로 약 보름가량 미뤄졌다는 메시지를 공개하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켜봤는데 너무 실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시글 작성자는 "하루하루 더 나빠질까 봐 초조해하면서 한 달 만의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며 "콜센터 간신히 연결했더니 근처 병원에서 약 처방 그대로 받으라더라"고 했다.
또 다른 환자 커뮤니티에는 내달 초 진료를 앞두고 병원으로부터 별다른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며 "기다리다 낭패 보는 건 아니냐"는 글이 올라왔다.
환자·보건의료 단체 "의사, 국민 앞 무소불위 권력 아냐"
휴진을 만류하던 환자단체와 보건의료 노동자 단체는 우려했던 대로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집단 휴진을 강행하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단연)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목적 달성을 위해 무기한 전체 휴진이라는 선택을 꼭 했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를 압박하는 도구가 환자의 불안과 피해라면 그 어떤 이유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환단연은 "왜 환자들이 의료계와 정부의 극단적인 대립 속에서 피해를 봐야 한다는 말인가"라고 물으며 "환자는 의대정원 숫자,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취소,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추진과 관련해 아무 잘못도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의료노련)은 기자회견을 열고 중증·응급환자가 아닌 만성질환자라도 진료 공백으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며 "진료거부, 집단휴진이라는 불법행위로 환자와 일반직 의료노동자들에게 손해가 발생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의협의 집단휴진 결정과 대학병원 교수들의 동참은 명분도 정당성도 없는 불법적 집단행동"이라며 "병원에서 교수들의 '오더'는 법이지만, 국민 앞에서까지 의사의 권력이 무소불위의 권력일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의사단체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도 성명을 내고 "일부 의대 교수들이 정부와 전공의 간 중재자 역할을 포기하고 의사 증원 반대 투쟁에 앞장서는 현 상황에 반대한다"며 "의대 교수들의 진료 중단은 벼랑 끝에 놓인 환자들의 등을 떠미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인의협은 정부를 향해서도 "4개월째를 맞고 있는 의료공백으로 응급 의료 사각지대는 점점 더 커지는데,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며 "암 환자와 중증 환자의 진단·진료 지연, 응급실 뺑뺑이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지만, 윤석열 정부는 '의료대란은 없다'는 말만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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