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유럽 정치의 우경화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24. 6. 1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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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유럽연합(EU)의 유럽의회는 각 회원국 의회와 같은 권한은 없지만 EU의 예산 책정에 최종 권한을 갖고 대외적인 협약 비준권도 가진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럽의회 선거가 유럽 전체의 정치적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이다.

2024년 6월에 선거가 있었다. 유럽의회는 5년 임기, 720명 의원의 정치적 성향에 따른 7개 정당 플러스 무소속으로 의석을 배치한다. 의원 수는 n분의 1이 아니고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순으로 많다. 인구가 기준이고 회원국당 최소 6석을 보장한다.

유럽의회에서는 중도우파인 유럽국민당이 다수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유럽보수개혁연대(ECR)와 정체성과민주주의(ID)를 합한 극우의 비중이 16.7%에서 18.2%로 높아졌다. ECR는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끌고 ID는 프랑스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이 이끈다. 이번 선거 결과에 충격받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의회를 해산했다. 조기 총선이 실시된다. 프랑스 여당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RN에 더블스코어로 졌다.

유럽대륙은 역사 내내 전쟁이 그치지 않은 곳이다. 그러다가 1·2차 세계대전이라는 초대형 전쟁을 치렀고 더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유럽통합 운동이 생겼다. 정치적으로 한 단위가 되면 싸울 동기가 작아지고 싸울 일이 있더라도 대화로 해결하기 쉽다. 그래서 유럽경제공동체(EEC, 1958)와 유럽공동체(EC, 1967)를 거쳐 유럽연합(EU, 1993)이 탄생했다. 단일 통화인 유로는 1999년에 도입된 것이다. 28개 멤버로 구성되었다가 2020년에 영국이 탈퇴해서 27개다.

그런데 회원국 수가 늘어나고 회원국 사이의 경제력 격차가 커지면서 EU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EU는 국가연합이어서 27개 멤버가 국력이 다 다르다. 가장 많은 권한을 가진 유럽집행위원회의 구성 원칙인 n분의 1은 비현실적이다. 실제로 분담금 액수가 다르고 돈을 많이 내고 영향력이 큰 나라가 자연스럽게 주도한다. EU 내에서 이른바 남북문제도 생겼다. 채권국이 채무국을 압박했고 키프로스는 국가부도까지 겪었다.

회원국들 사이뿐 아니라 정치 진영들 사이에서도 대립이 빈번하다. 예컨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시대가 되면서 환경과 농업이 EU 내에서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친환경차와 살충제, 비료 등을 둘러싸고도 생각이 다 다르다. 기후변화 관련 정책도 마찬가지다. 통상분야에서는 보호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는데 사실 이는 세계적 조류이기 때문에 좌우불문이다. 정도 차이다.

결국 EU의 존재와 기능에 회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졌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05~2017년 EU에 대해 회의적인 인구가 항상 50%를 넘었다. 가장 회의적이었던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최근에 실업률이 다소 낮아지고 이른바 이민자 위기가 진정되면서 수치가 다소 낮아졌다. EU의 극우는 EU 회의론을 대변한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바탕으로 반이민정책을 주창한다.

유럽의 역사는 자기들끼리 다툰 역사이기도 하지만 기독교가 이슬람과 싸운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주도하는 EU가 이슬람권 난민을 대거 받아들이도록 해서 반발을 불러왔다. 종교와 별개로 유럽인들은 난민이 노동시장에서 자신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준다는 사실은 가볍게 보고 그리로 사회보장 재원이 유출된다고만 생각한다. 그런 이유가 더해져서 유럽의 우경화가 더 빨리 진행되고 있다.

독일은 연정체제여서 정치가 거의 마비상태다. 매사 느리다. 올라프 숄츠 총리의 정치적 리더십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난민을 100만명이나 받아들였을 정도인 인구감소, 중국 위기에서 발생한 수출 감소로 중병환자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유럽의 정치 리더십은 이제 프랑스가 행사한다. 이탈리아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극우정당이 정권을 잡은 이탈리아에서는 과거 파시스트 집회를 연상시키는 모임이 공공연하게 열린다. 독일의 부재중에 EU의 주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우경화하고 있다.

반이슬람과 반이민 외에도 극우세력은 국수주의, 세계화와 EU에 반대, 그리고 친러시아 등의 색채를 띤다. 물론 '극우'라는 개념은 시대 상황의 변화로 과거 나치나 파시스트와는 달리 민족주의적 강경보수 정도로 변화한 것이어서 국내·국제사회를 극단적으로 불안하게 하는 정치세력은 아니다. 요즘의 진보정당이 옛날 기준으로는 극좌로 분류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미국이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으로 회귀하고 러시아와 중국도 어려운데 유럽마저 과거로 돌아가면 각자도생과 전쟁의 시대가 다시 올 수 있을 것이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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