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외교 지평 넓힌 ‘K 실크로드 협력 구상’

선경철 2024. 6. 1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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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영민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HK+국가전략사업단 연구교수

일반적으로 우리가 ‘중앙아시아’라 일컫는 지역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1992년 외교 관계를 수립한 이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을 지속해 오고 있다.

우리와 피를 나눈 32만 명의 고려인 동포가 거주하는 지역이자 오랜 교류의 역사, 언어·문화적 유사성 등을 기반으로 우리와의 공통분모를 형성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양 지역 간 활발한 인적 교류도 감지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주어진 물리적 거리는 멀지만, 지난 30년간 많은 접점을 형성하면서 심리적 거리를 좁혀나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첫 해외순방으로 ‘중앙아시아’를 선택했다. 그리고 중앙아시아 지역에 특화된 ‘한-중앙아시아 K 실크로드 협력 구상’을 발표했다.

해당 전략은 ‘동행, 융합, 창조’라는 3개의 협력 원칙을 바탕으로 에너지·자원(Resources), 개발 협력(ODA), 동반자 협력(Accompany), 그리고 앞선 세 가지 협력을 정부, 기업, 국민 간 유기적 네트워크 구축으로 뒷받침해 나가겠다는 중점과제와 추진체계를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구상은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 적절한 대응이며, 아래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의 외교 지평을 넓히고 한-중앙아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중추 국가 연대를 위한 행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그리고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 등으로 인한 세계 구조의 재편 속에서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매우 유사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주도의 진영과 중·러 중심의 진영 간 대립이 지속되면서 주변국들은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는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중앙아시아 국가들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두 진영의 대결 추세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유럽, 중동을 중심으로 많은 국가가 이들 지역에 러브콜을 보내오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그간 미국, 일본, 한국 등과 실무 혹은 장·차관급에서 진행됐던 ‘C5+1(중앙아시아 5개국+상대국)’ 형태의 대화 플랫폼이 최근에는 EU, 중국, 미국, 러시아, 걸프협력회의(GCC) 등과 같은 국가들과의 정상급 회의로 개최되는 양상으로 확대 실현됐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입장을 표명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중앙아시아 K 실크로드 협력 구상’은 전략적 요충지로 재평가받고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변화를 반영해 그간 러시아를 중심으로 진행됐던 이들 권역에 대한 접근법을 재정비하고 우리 외교의 집중력을 높인 매우 시의적절한 전략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중앙아 국가들은 두 진영 사이에서 마주하고 있는 고민을 함께 풀어나가며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행보는 한국이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유라시아 대륙에서 외교적 지평을 넓혀나가고 ‘자유, 평화, 번영’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중심으로 글로벌 중추 국가 연대를 구성할 수 있는 초석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인적·문화적 접점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 협력의 가능성

중앙아시아 지역은 국제사회에서 자원 부국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이번 순방에 포함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원유, 천연가스, 그리고 많은 희귀광물을 보유한 국가들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 국가에는 신성장 산업에 필요한 리튬, 니켈, 코발트 등과 같은 핵심 광물이 매장되어 있어 글로벌 공급망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만큼 이들 지역에 대한 주요국의 관심 역시 증대하고 있다. 2023년 9월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주요 광물 대화(C5+1 Critical Minerals Dialoues)’ 출범을 제안한 바 있으며, 같은 해 11월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도 에너지 협력 등을 이유로 중앙아시아를 공식 방문한 바 있다.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포함된 경제사절단과 동행한 우리 대통령의 중앙아 순방, 그리고 동계기 각국에서 개최되는 비즈니스 포럼은 코로나 이후 회복세를 보이는 양 지역의 경제 관계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중앙아시아는 고려인의 존재, 한국 문화의 확산, 이주민 증가 등 기존에 다양한 인적·문화적 접점이 형성돼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한국이 이러한 접점들을 경제적 측면으로 확장시켜 더 많은 실질 협력의 성과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볼 수 있다.

단, 현재의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 이러한 우호적인 분위기를 이어 나가면서 양 지역이 협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협력의 방식으로서 분명한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한-중앙아시아 K 실크로드 협력 구상’에서 제시하고 있는 ‘한-중앙아 5개국 정상회의’ 및 ‘한-중앙아 공급망 대화’ 창설, ‘한-중앙아 비즈니스 포럼’ 확대, ‘차세대 고려인 동포 직업연수 프로그램’ 개설, ‘정부초청장학사업(GKS)’ 확대 등이 향후 성과의 핵심적인 지표가 될 수 있다.

이번 순방을 계기로 한-중앙아 관계가 위기의 순간 속에서도 상호 이해의 접점을 찾아내고 많은 실질 협력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진정한 협력의 동반자 관계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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