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탄쿠르는 우루과이 유니폼 자랑·토트넘은 댓글 삭제...'손흥민 인종차별 사건' 정말 이대로 끝?
[OSEN=고성환 기자] 손흥민(32, 토트넘 홋스퍼) 인종차별 사건은 이대로 끝나는 걸까. '당사자' 로드리고 벤탄쿠르(27)는 활짝 웃는 대표팀 훈련 사진만 올리고 있고, 토트넘은 여전히 침묵 중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항의 댓글을 정성스레 삭제 중이다.
벤탄쿠르는 17일(이하 한국시간) 개인 소셜 미디어를 통해 우루과이 대표팀 사진을 공유했다. 그는 자신이 대표팀 훈련장에 출근하는 사진과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등번호를 자랑하는 사진을 올렸다.
벤탄쿠르는 우루과이 대표팀에 합류해 2024 코파 아메리카 출전을 앞두고 있다.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이 이끄는 우루과이는 오는 24일 파나마와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른다. 벤탄쿠르는 준주전급 미드필더로 활약할 전망이다.
손흥민을 비롯한 동양인 인종차별 논란에 대해선 이미 넘어간 모양새다. 벤탄쿠르는 지난 15일 우루과이 TV 프로그램 '포르 라 카미세타'에 출연해 농담을 던지던 중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그는 손흥민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은 다 똑같이 생겼다며 명백한 인종차별 발언을 터트렸다.
당시 벤탄쿠르는 진행자로부터 한국 선수 유니폼을 부탁받았다. 사실상 토트넘 주장인 손흥민 유니폼을 달란 뜻이었다. 벤탄쿠르도 "쏘니?(손흥민의 별명)"라고 되물었다.
문제는 벤탄쿠르의 다음 발언. 그는 "손흥민 사촌의 유니폼일 수도 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진행자 역시 이에 맞장구를 치면서 함께 웃었다.
물론 벤탄쿠르가 손흥민을 싫어해서 한 말이라기보다는 별 생각없이 나온 저질 농담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는 아시아인들 외모에는 차이가 없다는 인종차별적 시각이 드러난 발언이다. 남미에 동양인 차별 의식이 얼마나 만연한지 알 수 있는 방증인 셈. 아무리 익숙지 않은 다른 인종을 보면 구분하기 쉽지 않다지만, 명백한 실언이었다.
당연히 논란이 커졌고, 벤탄쿠르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쏘니 나의 형제여! 일어났던 일에 대해 사과할게. 그건 정말 나쁜 농담이었어.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하고, 절대 당신이나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상처 주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아줬으면 해! 사랑해 형제여"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잡음을 피하지 못했다. 벤탄쿠르는 게시된 지 24시간이면 사라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사과문을 올리면서 일부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현재 사과문은 내려간 상황이다.
게다가 벤탄쿠르는 'Sonny'가 'Sony'라고 적는 실수까지 범했다. Sony는 손흥민의 애칭이 아니라 일본의 전자제품 기업 이름이다. 무엇보다 벤탄쿠르가 정말 반성했다면 자신이 인종차별적 발언에 무감각했다고 정확히 인정하고 사과해야 했다. 단순히 '나쁜 농담'으로 취급하며 넘어가선 안 됐다.
손흥민이 인종차별 피해를 입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2008년 처음 독일로 건너갔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과거 "난 어렸을 때 독일로 갔다. 상상하지도 못하는 힘든 생활을 많이 했다. 인종차별도 많이 당했고, 정말 힘든 상황을 겪었다. 언젠간 꼭 갚아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다"라며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골이 특별한 이류를 설명하기도 했다.
잉글랜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에서 9년간 활약하면서 수 차례 인종차별에 시달렸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법 복제 DVD 파는 사람'이라고 조롱했던 웨스트햄 팬, 인종차별적 제스처를 취한 첼시 팬, 차별적 욕설을 뱉은 크리스탈 팰리스 팬과 노팅엄 포레스트 팬 등 가해자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바로 옆에서 봤을 벤탄쿠르까지 손흥민을 향해 인종차별적 발언을 내놓은 것. 아무리 남미 지역에서 유달리 동양인 인종차별에 대해 무감각하다지만, 선을 넘은 행동이었다. 벤탄쿠르가 손흥민과 얼마나 친하고 사이가 좋은지를 떠나 모든 동양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었다.
다른 선수도 아닌 벤탄쿠르이기에 더욱 충격이 크다. 손흥민은 지난해 11월 그가 약 8개월 만에 부상 복귀했을 때도 "벤탄쿠르는 믿을 수 없는 선수이자 날 웃게 하는 사람"이라며 좋은 친구라고 애정을 표현했다. '풋볼 런던'에 따르면 벤탄쿠르가 십자인대 장기 부상으로 힘들어할 때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 사람도 바로 손흥민이었다.
그럼에도 벤탄쿠르는 24시간짜리 사과로 이번 논란을 넘어가려는 모양새다. 소셜 미디어에는 여전히 한국 팬들의 비판 댓글이 달리고 있지만, 그는 대표팀 사진만 올리고 있을 뿐이다. 앞서 올린 인스타그램 스토리 사과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가장 아쉬운 건 토트넘의 대응이다. 토트넘은 빗발치는 항의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타팀 팬들이 손흥민을 인종차별했을 때 빠르게 성명문을 게시하며 강경하게 나섰던 것과는 대조된다.
심지어 토트넘은 인종차별을 지적하는 댓글을 계속해서 삭제 중이다. 16일부터 토트넘 소셜 미디어에는 왜 댓글이 지워지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벤탄쿠르와 상관없는 게시글에도 "왜 벤탄쿠르의 인종차별과 관련된 댓글을 계속 삭제하고 있느냐?"는 댓글이 최상위에 자리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토트넘은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24에 출전한 선수들 소식만 올리고 있다. 이에 여론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중이다. 이럴 거면 오는 7월 예정돼 있는 프리시즌 한국 투어도 취소하라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정말 손흥민 인종차별 사건은 이대로 끝나버리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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