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 또 하나의 전운이 감돈다[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2024. 6. 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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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충돌 잇따라
헤즈볼라, 하마스보다 군사역량 월등
2006년 이스라엘과 전쟁 때보다 전력 강해져
전면전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모두 부담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인사이트>, <중동 라이벌리즘>,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

중동에 또하나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간 충돌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꾸준히 충돌해 왔다. 지난해 10월 7일(현지 시간)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으로 촉발된 ‘가자 전쟁’ 중에도 두 진영은 충돌해 왔다. 이미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의 민간인들을 지난해 10월부터 대피시켰다. 그만큼 헤즈볼라와의 충돌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다만, 최근 충돌은 규모가 크다. 또 의미도 남다르다. 11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헤즈볼라 최고위급 지휘관 중 한 명인 탈레브 압둘라 등이 사망했다. 헤즈볼라는 곧바로 보복에 나섰다. 뉴욕타임스와 헤즈볼라가 운영하는 알마나르TV 등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12일과 13일 각각 200여 발과 100여 발의 로켓과 무인기(드론) 등을 이스라엘로 발사했다.

12일(현지 시간) 레바논과의 국경 지대인 이스라엘 북부 사페드가 헤즈볼라의 로켓 공격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부터 레바논과의 국경 지대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을 대피시켰다. 사페드=AP 뉴시스

양측 간 공격이 계속되고,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가자 전쟁 같은 또하나의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또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충돌은 최근 논의되고 있는 가자 전쟁 휴전 논의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반이스라엘’ 무장정파로서 헤즈볼라가 지니고 있는 특성과 과거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우려를 더욱 키운다.

● 헤즈볼라, 2006년 이스라엘과 34일 간 전쟁

헤즈볼라는 아랍어로 ‘신의 정당’을 의미한다. 시아파 무장정파인 만큼 1982년 설립될 때부터 이스라엘의 ‘주적’인 이란의 다양한 지원을 받았다. 사실상 이란이 헤즈볼라 설립에 깊숙이 개입했다. 헤즈볼라는 현재 레바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정치 세력으로 꼽힌다. 정부와 의회에서 많은 헤즈볼라 관계자들이 활동 중이다.

군사 역량도 상당하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헤즈볼라의 정규군은 2만 명(예비군 포함시 4만5000명)이다. 또 연간 예산은 7억 달러(약 9723억 원)에 이른다. 이란이 헤즈볼라에 대한 재정과 무기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헤즈볼라 로고
헤즈볼라는 설립 직후부터 이스라엘 공격을 주요 목표로 삼아왔고, 무력 충돌을 피하지 않았다. 특히 2006년 7월 이스라엘과 34일 간 전쟁을 벌이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헤즈볼라는 국경 지대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을 납치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궤멸’을 선언하고,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헤즈볼라는 체계적인 게릴라전을 펼치고, 로켓을 대대적으로 이스라엘로 발사하며 강하게 저항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오히려 적잖은 인명 피해를 경험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160여 명이 사망했는데,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공격을 제외하면 2000년대 들어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반이스라엘 무장정파의 공격으로 사망한 게 헤즈볼라와의 전쟁이었다.

2022년 8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 지역에서 진행된 헤즈볼라 설립 40주년 기념 행사. AP 뉴시스

이스라엘은 2006년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 명분과 이미지 측면에서도 큰 타격을 봤다. 먼저, 당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레바논에서 1000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상당수가 민간인이었다(이스라엘 사망자는 다수가 군인). 아랍권은 물론이고, 국제사회 전반에서도 “이스라엘이 과도한 공격을 진행했다”는 여론이 강했다. 헤즈볼라에 적대적인 레바논의 마론파(기독교 종파이며 레바논이 건국될 때 레바논 인구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음)들 사이에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반면, 아랍권에선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군에 당당히 맞섰고, 성과도 좋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세계적인 전투력과 첨단무기를 자랑하는 이스라엘군이 일개 무장정파와의 전쟁에서 34일간 고전했다는 것도 큰 화제였다.

● 이란과 IS 퇴치전 참여하며 실전 경험 늘려

헤즈볼라의 군사력은 2006년과 비교했을 때 훨씬 강해졌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12만~13만여 기의 미사일과 로켓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드론 전력도 크게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란 최고 군사조직이며 동시에 ‘정부 위의 정부’로 통하는 혁명수비대의 ‘쿠드스군’과 함께 2014~2017년 중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 직접 참여하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테러단체 IS는 2014~2017년 중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국가를 선포하고 맹위를 떨쳤다. 당시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으로서 극단주의 수니파 테러단체인 IS의 영향력 확정을 저지하기 위해 최정예 부대로 해외작전을 담당하는 쿠드스군을 시리아와 이라크에 파병했다. 또 IS와의 지상전을 펼쳤다. 헤즈볼라와 다른 시아파 민병대들은 쿠드스군과 함께 IS와의 다양한 전투에 참여했다.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교수는 “헤즈볼라는 실전 경험과 무기의 질 등에서 하마스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며 “만약 전면전이 벌어지면 이스라엘이 받게 될 피해도 가자 전쟁 때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헤즈볼라는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과 함께 IS 퇴치 작전에 참여하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 무기의 질과 실전 경험 등 종합적인 군사 역량에서 헤즈볼라는 하마스보다 월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군 홈페이지 캡처

헤즈볼라가 이란의 ‘대리인’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이란의 개입과 이에 따른 확전 가능성도 있다. 이미 이스라엘과 이란은 4월 서로를 직접 공격한 바 있다. 4월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혁명수비대 고위관계자가 숨졌다. 이란은 4월 13~14일 이스라엘을 향해 300여 기의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했다. 그리고 4월 19일 이스라엘은 이란 이스파한의 군사시설을 공격했다. 더 이상의 확전은 없었지만, 중동, 나아가 전세계가 두 나라의 충돌에 긴장했었다.

●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모두 확전은 큰 부담

그러나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모두 전면전을 감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 발발한지 8개월을 넘은 가자 전쟁만으로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무리 헤즈볼라가 밉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중심으로 한 강경 보수파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안보 위기’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은 부담이 크다.

헤즈볼라 입장에서도 전면전 수준의 충돌을 감행할 경우 경제난과 종교 갈등으로 이미 국가 위기 상태인 레바논이 더욱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레바논 내부에서도 헤즈볼라에 대한 비판 여론이 상당하다. 또 미국의 개입 가능성 등도 고려해야 한다.

4월 13일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 또는 드론들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의 중심지 중 하나인 동예루살렘 상공을 나르고 있다. 이스라엘, 헤즈볼라, 이란, 미국 모두 이번 사태가 확대되고 장기화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낀다. X캡처

이란도 헤즈볼라의 대대적인 이스라엘 공격에는 부담을 느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란도 서방의 제재로 경제 사정이 말이 아니다. 정치도 혼란스럽다.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해 28일 대선을 치러야 한다.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충돌로 불똥이 튀는 걸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미국 역시 11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중동이 또다시 시끄러워지는 건 바라지 않는다. 재선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중동이 불안해지는 건 악재다.

다만, 중동에서는 작은 변화 혹은 충돌이 큰 파장을 불러온 경우가 많다. 그리고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충돌은 언제, 어떻게 확대돼도 이상할 게 없는 사안이다. 당분간 국제사회가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의 국경 지역을 불안한 눈으로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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