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희섭 한·일·중 3국 협력사무국(TCS) 사무총장 | 미래지향의 새로운 도약 발판에 선 한·일·중 협력

2024. 6. 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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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중 협력 25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를 맞아, 제9차 한·일·중 3국 정상회의가 4년 5개월 만에 5월 26~27일 서울에서 개최됐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정상회의와 외교장관회의 정례화를 비롯해, 다양한 실질 협력 사업의 활성화를 명시한 정상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또한 한·일·중 3국 간 양자 정상회담 개최는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모멘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성과와 의미는 적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그간 장기간 정체됐던 3국 협력의 활기를 되찾고 협력의 모멘텀을 복원하고 정상화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민생 경제 분야에서 실질 협력의 모멘텀을 확보한 것은 의미가 크다.

회의의 핵심 성과로 들 수 있는 상호 신뢰 증진과 3국 협력 제도화의 진전, 3국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협력 사업 추진 등이 갖는 의미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첫째, 3국 협력의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발전의 토대는 인적 교류와 소통을 통한 신뢰와 우호 증진이다. 이를 위해 미래 세대인 청년 교류 사업인 캠퍼스아시아의 교환학생을 2030년까지 3만 명으로 확대하는 것을 비롯해, 2025~2026년을 3국 ‘문화 교류의 해’로 지정하고 2030년까지 3국 간 인적 교류 4000만 명을 달성하기로 했다. 둘째로, 3국 정부 간 협의체의 최정점에 있는 3국 정상회의 정례화를 재확인하고, 3국 협력 제도화의 상징이자 실행 기구인 한·일·중 3국 협력사무국(TCS)의 역량 강화를 적극 지지하고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3국 협력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제도화에 기여할 것이다. 셋째, 3국 국민이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민생 경제 분야, 즉 경제 통상, 보건·고령화, 과학기술·디지털 전환, 재난 안전, 기후변화, 인적 교류 등 6대 분야를 중심으로 실질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는 3국 협력의 요체인 국민 행복을 위한 내실 있는 협력이다.

이희섭 한·일·중 3국 협력 사무국(TCS) 사무총장 연세대 정치외교학, 전 주일본 후쿠오카 총영사관 총영사, 전 인사혁신처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글로벌교육부장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그간 정체됐던 각종 협의체와 협력 사업이 다시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당장 정상회의 후속 조치 협의를 위해 6월 중순 예정된 3국 교육장관회의를 비롯한 각종 협의체가 활발히 개최되고, 다양한 협력 사업도 재활성화할 것이다. 또한, 장기간 정체됐던 한중 교류·협력의 동력을 되찾고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일·중 관계 개선뿐 아니라 한일 관계를 업그레이드하는 데도 기여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동북아 패러독스와 무신불립

이번 정상회의에서 향후 정상회의 등 고위급 회의를 정례화하기로 재확인한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그러나 향후 정상회의가 중단없이 매년 개최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과거 정상회의가 누차 중단됐고, 정상 간 약속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동북아의 한·일·중 3국 간 경제·무역, 문화·인적 교류 등이 왕성해졌음에도(1999년 3국 간 교역은 1300억달러에서 2022년 7800억달러로, 인적 교류는 1999년 650만 명에서 2018년 3000만 명으로 증가), 상호 이해·존중과 신뢰가 증진되기는커녕 거꾸로 불신· 혐오 감정이 확산돼 갈등이 오히려 심화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했다. 이를 ‘동북아 패러독스’라고 한다.

한·일·중 3국은 정치체제와 이념의 차이로 인한 냉전 시대 오랜 기간의 대립, 역사 문제, 영토 분쟁, 안보 문제, 민족 정서, 전략적 이해관계 등에 기인한 갈등으로 관계가 경색되고 대립이 장기화하는 일을 되풀이해 왔다. 이는 언제든 재발할 소지가 있다. ‘논어’에는 신뢰가 없으면 바로 설 수가 없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이 있다. 3국 협력이 그간 괄목할 양적 성장을 거듭해 왔음에도 오히려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는 근저에는 상호 신뢰의 결여가 있다. 3국 국민 간의 호감도와 신뢰도는 지속적으로 낮아져 왔고 최근에는 20%대를 밑돌 정도로 심각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국민 간의 상호 이해와 신뢰가 없으면 정치적 타협에 의한 평화도 손쉽게 무너질 수 있다.

이희섭 한·일·중 3국 협력 사무국(TCS) 사무총장 연세대 정치외교학, 전 주일본 후쿠오카 총영사관 총영사, 전 인사혁신처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글로벌교육부장

미래지향적 협력과 상생으로

이러한 동북아 패러독스를 극복하기 위한 획기적인 왕도는 없다. 우선 역내 국가 간 소통과 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아가고, 협력이 용이한 분야부터 실질 협력을 넓혀나가며, 관계 악화 시 대화를 통한 갈등 관리와 문제 해결의 관행을 축적하고 제도화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국가 간 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국민 간 상호 이해와 신뢰가 필수 불가결하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상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상호 신뢰를 쌓아가는 다양한 노력을 끊임없이 경주해 가야 한다.

둘째, 국민 삶의 질과 직결된 협력은 정치적인 영향을 별로 받지 않고 상호 협력의 필요성에 의해 꾸준히 실적을 축적해 나갈 수 있는 분야다. 환경, 보건, 재난 관리, 교육, 특허 분야의 3국 장관급 회의와 같이, 정상회의가 개최되지 않는 와중에도 중단 없이 이어져 온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심화해 나가야 한다.

셋째, 갈등이 발생하면 서로 만나 대화를 통해 상황을 관리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관행을 축적하고 이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는 관계 경색이 장기화하는 것을 막고 관계를 회복해야 할 때 빠른 복원력을 발휘하게 된다. 한·일·중 3국은 종래 역사, 영토 문제 등으로 갈등이 격화하면 보복 수단으로 무역을 무기화함으로써 관계 경색이 장기화하는 뼈아픈 경험을 해왔다. 당장은 상대국에 타격을 줄 수 있을지 모르나 종국에는 부메랑이 돼 모두 패자(敗者)가 되고 만다. 이로 인한 상호 불신은 관계가 개선되더라도 좀처럼 회복하기 어렵게 되고 3국 협력의 미래에도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우(愚)를 더 이상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3국 협력의 안정적, 지속적 발전을 위한 미래지향적 실질 협력에 대한 다양한 방안과 비전이 제시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의 실천적 이행은 향후3국 협력의 새로운 도약과 미래 발전의 굳건한 발판이 될 것이다. 사무국은 3국 정부를 적극 지원하면서 합의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는 한편, 앞으로도 3국 협력의 발전을 견인하고 촉진하는 기관으로서 그리고 3국 협력이 제도화해 가는 중심 기구로서 그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이다.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함께 보며, 화이부동의 자세로

한·일·중 협력은 3국 국민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행복한 삶을 영위토록 하는, 현실에 기반한 미래지향적 협력이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협력 분야는 현미경으로 가깝고 치밀하게 들여다보되, 협력의 미래상은 망원경으로 넓고 멀리 봐야 한다. 망원경으로만 보면 자칫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주의자가 될 수 있고, 현미경으로 3국이 직면한 현실에 매몰돼 보면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3국 협력은 3국의 정부, 국민, 언론, 싱크탱크 등과 같은 주체들이 협력의 필요성과 미래 비전을 공유하며, 실용적 접근을 통해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는 협력이다. 3국은 상호 존중을 토대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협력과 상생의 조화를 추구해 나가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로 인내심을 갖고 협력의 공통 분모를 꾸준히 넓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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