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시네마 에세이 <97> 람보 1] 람보는 왜 다시 전쟁을 시작해야 했을까

김규나 소설가 2024. 6. 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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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람보 1’ 스틸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김규나조선일보·부산일보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전쟁의 기억이란 어떤 것일까.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가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공포에 떨며 사람의 몸에 칼을 찌르고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지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 조금 전까지 함께 웃고 이야기하던 전우의 몸이 산산조각 나고 그의 피와 살이 사방으로 흩어질 때 식어가는 몸을 끌어안고 울부짖던 기억, 적에게 사로잡혀 끔찍한 고문을 견뎌야 했던 시간을 가슴에 새기고 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부대 소속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존 람보는 전우가 적어준 주소를 들고 작은 시골 마을을 찾아간다. 전쟁이라는 지옥을 함께 겪은 전우들은 대부분 전쟁터에서 죽었다. 람보는 전우가 그리워 먼 길을 달려왔지만, 전쟁에서 얻은 병으로 고생하다가 얼마 전 그도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이웃에게 전해 듣는다.

사람은 이야기하고 싶은 존재다.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물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그래서 나는 이렇게 했지’ 하고 조금은 으스대며 말할 때, 시들어 가던 인생의 한 자락이 얼마나 싱싱하게 피어나는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밤마다 뒤척이게 하는 전쟁의 악몽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람보에겐 이제 한 명도 없다. 날은 춥고 배는 고프고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도 없는 낯선 곳에서 람보는 쓸쓸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때 순찰하던 보안관은 분란을 일으킬 부랑자일 거라 판단하고 람보를 서둘러 마을에서 내쫓는다. 그를 대하는 보안관의 말과 눈빛엔 차가운 경멸이 가득하다.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만약 보안관이 누굴 찾아왔느냐고 물었을 때 사정을 말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람보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전우의 죽음을 알리고, 무엇 때문에 함께 슬퍼해 주지도 않을 타인에게 텅 빈 가슴을 내보여야 한단 말인가. 고분고분하지 않은 람보의 태도에 화가 난 보안관은 이런저런 죄목을 씌워 람보를 체포한다. 보안관이 권위적이긴 해도 뿌리부터 나쁜 사람이라고 보긴 어렵다. 치안을 책임져야 할 그가 외지인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 람보는 당시 많은 문제를 일으키던 참전귀환자들처럼 전쟁터의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았을 것 같은 야전 상의를 걸치고 긴 머리를 하고는 떠돌이처럼 침낭까지 매고 있었다.

낯선 것에 대한 배척은 모든 생명이 지닌 본능, 인간에게도 내재한 원초적인 속성이다. 침입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가족과 친구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영역과 종족을 지켜온 뛰어난 생존 능력이다. 그러나 미지에 대한 정체 모를 공포는 곧잘 왜곡되고 과장된다. 겉모습이 증명하는 건 전체 중 극히 일부라는 걸 간과할 때, 과격한 폐쇄성과 편협한 선입견은 종종 폭력으로 변질되고 예기치 않은 반발과 원한을 불러온다.

영화 ‘람보 1’ 스틸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경찰서로 연행된 람보를 심문하던 경찰관들도 반항적인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혹독하게 다룬다. 몸에서 냄새난다고 모욕하고 지문을 찍으라고 강요한다. 폭언도 모자라 곤봉으로 매질까지 한다. 그 순간, 람보는 전쟁을 떠올린다. 경찰서의 철창, 주변에 놓인 수갑과 총과 칼이 전쟁 기간 포로로 잡혀 고문받았던 시간을 상기시킨다.

스스로 떳떳하면 된다고들 쉽게 말하지만, 타인의 멸시 어린 시선과 무례를 무심히 견디기란 쉽지 않다. 람보는 지난 몇 년간 머나먼 타국에서 사지를 누비며 큰 공을 세운 용사였다. 그러나 훈장이라는 메달을 몇 개 목에 걸어주고 약간의 연금을 주었을 뿐, 세상은 그에게 주유소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주지 않았다. 현실은 전쟁터만큼이나 가혹하고 외로웠다. 살인자라며 사람들은 람보에게 침을 뱉고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했다. 하찮아지는 것만큼 서러운 일도 없다. 쓸모없는 사람, 사회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절망은 수천 개의 바늘이 되어 마음을 찔렀다.

잠재의식에서 솟구쳐 오른 불안과 분노는 제어되지 않는다. 전우를 잃은 슬픔, 추위와 배고픔,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더해져 람보를 다시 전쟁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다. 람보는 발작적으로 경찰관들을 때려눕히고 경찰서에서 탈출한다.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보안관이 람보를 뒤쫓으면서 사건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람보가 게릴라전에 최적화된 전쟁 영웅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지만, 실수를 인정하기 싫은 보안관은 경찰 살해범이라는 누명을 씌우고 수백 명의 수색대원을 풀어 산으로 숨어든 람보를 추적한다.

인간의 감정 주머니는 한계가 있다. 참고 참으며 풍선처럼 부풀다 끝내 터져버린 감정의 폭발은 남을 다치게 하지만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낸다. 잘못한 건 없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람보는 어디든 갈 자유, 무엇이든 할 자유가 있었다. “날 내버려둬!” 람보는 실전에서 갈고 닦은 전투 실력을 발휘, 보안관의 추격에 맞서며 혼자만의 전쟁을 시작한다.

처음엔 공공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보안관은 점차 사적 복수심으로 눈이 먼다. 평화롭던 시골 마을이 전쟁터가 된것은 람보 탓이 아니다.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타지인을 범죄자로 속단한 보안관 탓이다. ‘여기선 내가 법’이라며 우쭐거리느라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잊은 탓이다.

대표적인 무적의 영웅 액션영화 시리즈로 알려진 속편들과 달리 1982년의 ‘람보’는 휘황찬란한 전쟁의 명분 뒤에 가려진 참전 군인의 고독한 내면과 그들에 대한 냉담한 사회 시선에 초점을 맞춘 조용한 수작이다.

‘내가 최고다. 복종하지 않는 자는 적’이라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사회 어디에나 있다. 그들은 못난 자신을 합리화하고 엉뚱한 희생자를 사냥하면서 영웅 놀이를 한다. 어긋난 정의감, 추악한 교만과 무능이 책임지지도 못할 혼란을 자초하지만 결국은 그들도 자멸한다. 다만 대개는 너무 늦게, 안타깝게도 우리가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진짜 영웅들이 밀쳐지고 멸시받고 잊히고 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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