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 천막농성 10년째…해결책은 요원

장지현 2024. 6. 17. 11: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4년 임금인상 요구하며 파업, 대학은 1년 뒤 도급업체 계약 해지
노조 "고용승계 합의 지켜라"…대학 "승계절차 보장,현재는 관계 종료" 평행선
울산과학대 동부캠퍼스 앞 농성천막 [촬영 장지현]

(울산=연합뉴스) 장지현 기자 = "딸아이 신혼여행 보내고 천막에 들어왔는데, 손주가 벌써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작된 울산과학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천막농성이 지난 16일로 10년을 맞았다.

이제는 해고 노동자 신분인 이들은 원직 복직을 요구하지만, 대학 측은 이들과의 관계가 이미 종료됐다는 입장이라 캠퍼스 앞 농성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울산과학대 동부캠퍼스 앞 농성 천막 [촬영 장지현]

최근 찾은 울산과학대 동부캠퍼스 정문 옆 인도에는 스티로폼과 비닐,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 만든 천막이 고요히 서 있었다.

천막으로 들이 쬐는 햇볕을 가리려는 듯 설치한 차광막 아래에는 '청소노동자 10년 방치한, 울산과학대 글로컬 대학 선정 반대'라고 쓰인 현수막이 나부꼈다.

농성자들은 천막과 정문 사이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연신 부채질하며 땀을 식혔고, 학생들과 차량 몇 대가 정문을 빠져나와 이미 당연한 풍경이 돼 버린 농성장 앞을 무심히 지나갔다.

대화하는 김순자 울산과학대지회장(왼쪽)과 김덕상 울산지역연대노조 위원장 [촬영 장지현]

10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는 민주노총 울산지역연대노조 울산과학대지부장 김순자(69)씨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천막 속은 긴 세월 동안 쌓인 생활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천막 곳곳에 머리빗과 담배, 생수병, 칫솔 치약 등 생활용품이 자리했고, 천막에서 밤을 날 때 쓰는 소형 텐트도 한 구석에 펼쳐져 있었다.

김 지부장을 비롯한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은 10년째 이곳 천막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 함께했던 8명 중 1명은 뇌졸중이 생겨 천막을 떠났고, 이외에도 몇 명이 건강 문제로 농성을 그만둬 지금은 4∼5명만이 돌아가며 천막을 지킨다.

남은 이들도 고령으로 몸이 성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김 지부장은 "관절도 그렇고 몸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다"며 깊은 주름살이 흐르는 얼굴로 쓴웃음을 지었다.

10년째 천막농성 중인 김순자 민주노총 울산과학대지부장 [촬영 장지현]

울산과학대 청소용역 A 업체 소속이던 청소부들은 2014년 6월 16일 대학 본관 로비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당시 이들은 시급 5천210원으로 생활이 불가능하다며 임금 인상을 요구했는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파업과 농성으로 항의했다.

농성 장기화에 대학은 면학 분위기 저하 등을 문제 삼으며 퇴거 단행 등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며 농성장은 본관 밖, 이어 정문 밖으로 점차 밀려 나왔다.

대학과 A 업체의 청소 도급 계약도 해지됐고, 새로 고용된 청소노동자들이 자리를 잡게 됐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다 되려 일자리를 잃게 된 농성자들은 대학 측의 이러한 조치가 이른바 '2007년 합의'에 배치된다고 항의한다.

이들은 앞서 2007년에도 대학과 A 업체의 계약 해지로 잃자리를 잃자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했는데, 당시 복직과 관련한 대학과의 합의서에 고용승계를 담보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김씨가 꺼내 보인 합의서에는 'A 업체의 도급계약 해지로 타 업체와 계약 시 동부캠퍼스에서 근무하는 울산연대노조 조합원이 고용승계를 원하면 동부캠퍼스로 고용승계를 담보한다'는 조항이 쓰여 있었다.

김 지부장이 공개한 대학과의 2007년 합의서 [촬영 장지현]
김 지부장이 공개한 대학과의 2007년 합의서 [촬영 장지현]

대학은 이 조항이 A 업체와의 계약 해지 시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이미 효력이 만료된 조항이라고 보고 있다.

과거 A 업체와 계약 해지 당시 농성자들을 대상으로 고용승계 의사를 묻는 설명회를 열었는데, 이들이 승계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학 관계자는 "A 업체가 농성자들에게 퇴직금까지 지급을 끝냈다"며 "이미 법적 관계가 종료된 건"이라고 설명했다.

캠퍼스 앞 얼기설기 지어진 천막 속에서 이들은 여전히 '원직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이 합의서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지난 10년간 받지 못한 임금을 보장하라는 요구도 함께다.

학교와 농성자들의 입장 차이로 합의는 요원한 상황이지만, 농성자들은 앞으로도 학교 앞 천막에서 농성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김 지부장은 "길어져 봤자 석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농성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고용 합의서가 지켜지지 않는 이상 농성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jjang23@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