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관계 격상 '평양선언' 가능성…북핵 용인 발언은 없을 듯"
"북중러 뭉친 상태 아냐…한중관계 다지고 한러관계 관리해야"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김지연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1박 2일 일정으로 전격 북한을 방문한다.
24년 만에 이뤄지는 푸틴 대통령 방북은 북러관계는 물론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이벤트다.
전문가들은 북러가 평양에서 열릴 정상회담에서 관계 격상, 군사·안보 및 경제 협력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가칭 '평양선언'을 채택할 수 있지만, 자동군사개입을 골자로 하는 동맹수준의 조약이 체결될 가능성은 작게 봤다.
또 북러 결속이 북중러 연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한중관계를 다지고 한러관계를 관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관계 격상 '평양선언' 가능성…자동군사개입 조약은 체결 않을 듯"
푸틴 대통령 방북을 앞두고 전문가들은 북러 양국의 군사·안보협력 강화 수위를 주시하고 있다.
특히 양국간 군사협력을 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자동군사개입 조항이 담긴 조약을 체결할지에 포커스를 맞췄다.
북한은 지난 1월 최선희 외무상의 방러 후 "두 나라 관계를 전략적인 방향에서 새로운 법률적 기초에 올려세우"는 데 양국이 합의했다고 발표했는데, 기존 조약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의미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북한이 1961년 옛 소련과 맺은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은 무력침공·전쟁 시 자동군사개입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으나, 1990년 소련이 한국과 수교를 맺은 후 해당 조약은 폐기됐다.
이후 2000년 체결된 양국 '우호·선린·협조 조약'에는 자동군사개입 조항 대신 '쌍방 중 한 곳에 침략당할 위기가 발생할 경우 (중략) 쌍방은 즉각 접촉한다'는 내용만이 담겼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북러가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서 동맹수준의 조약을 맺을 가능성은 작다고 봤다.
현승수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금까지 러시아는 스스로를 구속하는 자동군사개입 내용이 들어간 조약을 거의 체결하지 않았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 등 군사동맹에도 반대하는 입장"이라며 상호방위조약 체결 가능성을 낮게 봤다.
러시아가 자동군사개입 조항이 반영된 상호방위조약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사실상 아르메니아가 유일하다.
다만, 침략 위기 시 '즉각 접촉한다'보다는 높은 수위의 문안으로 현 조약이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현 위원은 덧붙였다.
이와 함께 북러 간 전통적 우호 관계를 격상하는 등 내용을 담은 '평양선언'이 채택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종원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러북 관계를 현대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내용을 공표해 국제사회에 과시하려 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러북 관계가 한러, 중러 관계와 형식상 비슷한 격이 된다"고 설명했다.
북러 조약 수정 또는 갱신이 의제로 다뤄진다면 '한반도 분단 상황의 조속한 종식'과 '통일'을 언급한 현 조약 제4조는 작년 말부터 '통일' 지우기에 나선 북한의 요구로 개정 가능성이 큰 항목으로 꼽힌다.
"푸틴, 첨단 군사기술 이전 않고 북핵 용인 발언도 없을 것"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언론 인터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체 핵우산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부른 바 있다.
이번에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관련해 더 진전된 언급을 내놓을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국제정치적으로 '핵보유국 인정'은 제재 해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러시아가 더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핵보유 용인 발언을 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은 "러시아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준수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며 "북핵 용인을 대외적으로 표출하는 건 부담이 될 뿐이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도 "푸틴은 이번에 비핵화 자체를 언급하지 않을 것인데, 그것만으로도 북핵을 용인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굳이 직접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특히 북핵 용인은 한국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는 점에서 푸틴 대통령도 발언에 조심할 수밖에 없다.
한편 북러 간 구체적인 군사·경제 협력 사항은 대부분 유엔 안보리 제재에 저촉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러시아가 북한의 포탄·단거리 탄도미사일 등 공급 대가로 첨단 군사기술을 넘겨주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러시아가 북한에 줄 수 있는 최대치는 위성 등 우주분야일 것"이라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핵추진 잠수함 같은 민감한 첨단군사기술을 이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유엔 대북제재에 저촉되는 북한 노동자 송출 문제가 다뤄질지도 주목된다.
현승수 위원은 "양국 간 수요가 일치하는 부분이 북한 노동자 파견"이라며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 복구에 북한 노동자들이 대거 투입될지 지켜봐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북중러 한데 뭉친 상태 아냐…한중관계 다지고 한러관계 관리해야"
북한은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신냉전 흐름 속에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를 부각하며 국제사회 제재를 무력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이러한 북한의 전략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중국과 관계를 다지고 러시아와 관계가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했다.
다행히 중국은 북러 밀착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는 기류가 읽힌다.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예정된 시기에 중국이 서울에서 한국과 외교안보대화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중국은 북러와 다르다는 메시지를 대외에 주는 셈이다.
북한도 지난달 한일중 3국 정상회의 당시 공동선언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거론되자 담화를 통해 반발하며 중국에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양 총장은 북중러가 하나로 뭉친 상태는 아니라고 평가하면서, "북러 간 협력은 심화·확대되고 있지만 북중 간에는 서운함이 보이고 한중 간 대화는 복원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도 "중국은 북중러 대 한미일 구도, 진영주의, 신냉전에 반대한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고 북러와는 거리를 두려 한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한러 관계가 더 추락하지 않는 수준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실장은 "북러 정상이 만나면 양국 협력이 제3국에 위협을 끼칠 의도가 없다고 말할 텐데, 우리도 한미 훈련이 방어적이라는 메시지를 러시아와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부도 러시아와 소통을 늘리며 관계 관리에 애쓰고 있다. 최근 푸틴 대통령의 한국을 향한 유화적 제스처나 대통령실의 푸틴 방북 시기 확인 등을 보면 이러한 '관리'가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비슷하게 자평했다.
전날 연합뉴스TV에 출연한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푸틴 대통령의 방북과 관련, "러시아 측에 일정한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성 소통도 한 바 있다"며 "푸틴 대통령의 방북 결과를 세밀히 분석해 수사에 그치는지, 실체가 있는지, 수사라 해도 강도나 내용은 어떤 것인지 등을 종합적이고 세밀하게 분석해 분명히 대응하고, 국제 사회와도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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