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올린 내 개인정보 못 없애?" 지우개 서비스의 구멍 [추적+]

조서영 기자 2024. 6. 1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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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개인정보위 지우개 서비스
청소년기 ‘흑역사’ 삭제해줘
잊힐 권리 보호 위한 사업
하지만 아직까지 한계 뚜렷
신청연령 30세 미만 제한
제3자 게시물 삭제 불가
잊힐 권리 법적 근거 없어
해외 이미 법으로 보호 중
국내에서도 방안 나올까
많은 이들이 '지우개 서비스'에 호응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과거 인터넷에 무심코 올렸던 '흑역사'를 지울 수 있는 서비스가 등장했습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운영하는 '지우개 서비스'입니다. 론칭 1년 만에 1만6500여건의 데이터를 삭제했을 만큼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우개 서비스'로 모든 흑역사를 100% 없앨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유가 뭘까요?

아이디나 비밀번호를 분실해 게시물을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커뮤니티를 탈퇴했는데 게시물이 남아있어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경우에는 또 뭘 해야 할까요? 직접 게시물이나 댓글을 삭제할 수 없어 '내 정보'가 계속 인터넷 공간에서 확산할 땐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할까요?

요즘 이런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지우개 서비스'가 인기입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운영하는 이 서비스는 청소년 시절에 인터넷에 무심코 올린 개인정보를 깔끔하게 삭제해 줍니다. 지난해 4월부터 1만7000건이 접수됐고, 이중 1만6500건이 삭제 처리됐습니다. 지우개 서비스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올해 1~4월에만 삭제 신청이 6000여건에 달했을 정도죠.

기자도 지난 6월 3일, 지우개 서비스를 신청했습니다. 절차는 생각보다 까다로웠는데, 한번 따라가 볼까요? 가장 먼저 서비스를 제공 중인 '개인정보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지우개(잊힐 권리) 신청' 버튼을 누릅니다. 별도의 로그인 없이 본인인증만 하면 데이터 삭제를 신청하는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그다음 서비스를 신청하는 게 본인인지 아닌지, 게시물의 완전한 삭제를 원하는지 단순히 '가림 처리'를 원하는지 등을 고르면 본격적인 삭제 신청 절차에 들어갑니다. 삭제하고 싶은 게시물의 URL을 붙여 넣고, 이 데이터가 본인인지 입증하고 나서 게시물을 지우고 싶은 이유를 작성하면 끝입니다.

이 서비스는 아동·청소년의 '잊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출범했습니다. 잊힐 권리란 온라인에 있는 개인정보의 삭제 또는 확산 방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합니다. 정보를 만드는 건 쉽지만, 지우는 건 그렇지 않다는 점 때문에 세계적인 이슈로 떠올랐죠.

국내에선 정부가 나섰습니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새 디지털 질서 정립 계획'에 잊힐 권리 보호 계획을 담았습니다. 잊힐 권리를 정부 계획에 넣었다는 건 잊힐 권리 역시 우리가 숙의해야 할 주요 쟁점이란 의미입니다.

다만, 잊힐 권리로 출범한 지우개 서비스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건 아쉽습니다. 무엇보다 신청연령에 제한을 뒀습니다. 지난해 만 24세 이하에서 올해 30세 미만으로 상향조정하긴 했지만 아쉽다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인터넷에 '흑역사'를 남긴 연령대는 30대 미만보다 훨씬 더 많을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신청을 한다고 100% 삭제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 개인정보라도 제3자가 작성한 게시물이라면 삭제할 수 없습니다. 원본 게시물이 다른 사이트로 퍼졌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유가 뭐냐고요?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타인이 작성한 게시물을 임의로 삭제하는 건 작성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잊힐 권리와 표현의 자유가 충돌한 결과라는 겁니다. 이는 '디지털 잊힐 권리'가 법적으로 명문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행 국내법은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개별법에 근거해 잊힐 권리의 일정 부분만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했거나 제3자가 게시물을 퍼트렸다면 본인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어도 현행법상 삭제할 수 없는 겁니다. 개인정보보호위 측은 "지우개 서비스를 온전히 운영하기 위해선 제도적 근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도 같은 의견을 내놨습니다. "국내엔 아직 잊힐 권리를 명시적으로 인정한 법제나 판결이 없다. 잊힐 권리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아 피해자를 구제하는 데 한계가 있단 점에서 입법적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새 디지털 질서 정립 계획'에는 잊힐 권리 보호 계획이 담겨있다. 사진은 이종호 과기부 장관.[사진=연합뉴스]

해외는 다릅니다. 잊힐 권리의 범위를 법으로 정해놓은 국가들은 적지 않습니다. 유럽연합(EU)은 개인정보보호법(GDPR)을 통해 표현의 자유나 공익성을 제한하지 않는 선에서 제3자가 작성한 게시물을 삭제해야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 법에 따라 구글은 유럽에 한해 2014년 5월 29일부터 지금까지 270만건이 넘는 콘텐츠를 삭제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디지털 세계에서의 캘리포니아 미성년자 프라이버시권법'을 만들어 2015년부터 미성년자들의 잊힐 권리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지우개 서비스로 숙의의 대상으로 떠오른 잊힐 권리. 과연 국내에서도 법적으로 보호하는 방안이 나올 수 있을까요?

조서영 더스쿠프 기자
syvho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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