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권력, 무엇이 그토록 부당하고 부끄러워 집단휴진까지 하나

시민건강연구소 2024. 6. 1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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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건강논평] 하루 앞둔 집단휴진…전공의·교수·시민사회에 던지는 질문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집단 휴진을 예고한 날이 내일(18일)로 다가왔다. 오늘부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간 서울대 병원을 비롯해 주요 대학병원 교수들도 휴진에 동참하기로 하면서 환자의 생명과 안전이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는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여전히 의대 증원의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의협의 강경한 입장을 생각하면 집단행동 방침이 쉽게 철회될 것 같지 않다. 분만병의원협회나 아동병원협회, 뇌전증지원병원 협의체와 같이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환자들의 처지에 공감하는 더 많은 의사들이 휴진에 불참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을 듯 하다.

우리는 이번 논평에서 서로 다른 세 주체에게 차례로 각기 다른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먼저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묻는다. 무엇이 그토록 부당하고 억울한가? 집단 이탈 당시 열악한 전공의 근무조건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 이유였다는 사실을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지금이라도 의대 정원 동결과 근무환경 개선 중 하나를 택하라면 답은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그동안 고된 수련 과정과 경험은 오히려 이후 높은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스스로 정당화하는, 그리고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일종의 '완장'처럼 여겨져 왔던 게 아닌가.

전공의 근무여건이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이번 전공의 집단 이탈의 본질은 향후 의사 시장의 인력 공급 확대에 따른 경쟁 심화와 미래 기대소득 감소에 대한 불만과 반발, 사회 특권계층으로서의 위상 하락에 대한 개인적·집단적 저항이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직서를 제출하고 복귀할 의도가 없기 때문에 협의의 파업에는 해당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나, 사회 필수재인 의사 인력의 교육, 양성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해 온 국가와 사회를 향한 '파업'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의사들이 많은 듯 하다. 폐쇄적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재생산되는 의사 중심 세계관에서 벗어나, 사회적 직무로서의 의업에 대해 성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의사 면허를 가지고 제도권 내에서 독점권으로 인정받는 의료 행위를 하는 이상 사회적 직무를 다해야 한다.

다음으로, 집단 휴진에 동참하기로 한 의대 교수들을 향한 질문이다. 스승이자 선배 의사로서 전공의 뒤에 숨어 미안하고 부끄럽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위한 부끄러움인가? 전공의들이 나서기 전에 전공의들의 근무여건과 소위 '필수·지역의료 위기'와 관련된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개선하지 못해서 부끄럽다는 말인가, 아니면 의사 집단의 이권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는 말인가. 우리도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방식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이 적절한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의사 인력의 자유방임형 시장 공급구조에 대한 개입이 빠졌기 때문이다. 큰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헛방망이질을 하는 것으로 혹평할 수 있겠지만, 그 문제의 해결책이 의대 교수로서의 고유한 역할을 거부함으로써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내팽개치고 의료체계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것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물론 이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전 논평들에서 정부 정책이 왜 잘못되었는지 상세히 논의했기 때문에 오늘은 굳이 덧붙이지 않으려 한다. (☞관련기사 : 이런 의사 증원으로는 절박한 시대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국 보건의료체계는 이미 빠르게 시장화·영리화·상업화되는 추세였고, 그 결과 보건의료 공공성이 무너져 내리고 위기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말 국민 건강권만 생각해서 최선의 보건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해 집단 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한다면, 왜 이전에는 가만히 있었는가. 왜 정부가 역대급 의사 증원 정책을 꺼내든 뒤에야 대학병원 교수들로서 유례 없는 집단 행동에 나서게 되었느냐 말이다. 물론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되면서 그동안 힘들게 의료 현장을 지켜왔고, 많이 지쳐 있는 상태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렇다면 미복귀 전공의들을 설득해서 진료 현장으로 복귀시키고 환자를 포함한 시민사회와 함께 최선의 보건의료체계를 보다 힘있게 주장하자고 제안해야지 왜 애꿎은 환자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방식을 택하는가.

의사도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생활인일 뿐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직업적 소명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하지만 의사 집단 내에서도 조금씩 다른 이해관계와 신념을 가지기 마련이며, 특히 대학병원 교수라면 다른 의사들보다 더 높은 '공적 마인드'를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성과급이라는 인센티브가 있지만, 그래도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다른 길을 택하지 않고, 고난이도 중증환자 치료와 연구, 학생과 전공의 교육·지도에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 이들이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른 의사들이 경제적 동기에 충실하게 움직이더라도 이와 다른 결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또 내야 하는 이들이 바로 교수들일텐데, 이번 집단 휴진 결정은 실망을 넘어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이처럼 의대 교수들까지 똘똘 뭉쳐 의사 증원을 저지하려는 까닭이 무엇인가. 경제적 측면이 클테지만, 다른 한편 의사직군이 가진 희소성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반감과 저항의 측면도 적지 않은 듯 하다. 의사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넘쳐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니던 대학과 직장마저 그만두고 의대 입시에 도전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현실이다. 이공계 인재 유출이 심각하게 우려될 만큼 오늘날 의사는 개인의 적성과 자질에 따라 선택하는 직업 중 하나가 아니라, 경제·교육·문화자본 등을 모두 거머쥔 사회 특권층 그 자체가 되었다.

우리 사회가 철저히 자본의 논리와 동기로 움직이는 듯 보여도, 사람들은 여전히 의사에 대한 일말의 '낭만'을 품고 있다. 눈앞에 있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리라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한국 보건의료체계는 그러한 의료가 불가능한 구조로 짜여져 왔고, 환자는 상품으로서의 의료 소비자, 의사는 그 판매자로서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정부가 의료 공공성을 방치한 사이 의사 집단은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들의 권력 원천으로 삼아 협상력을 높이며 배타적·특권적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 의대 교수들이 진짜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은, 의사 증원에 대한 높은 찬성 여론에 담겨있는, 의사의 '귀족화'를 거부하는 사회적 판결로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이런 의사로서의 표상을 지키려 하는 전공의들을 바르게 지도하지 못한 무책임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끝으로, 우리를 포함한 시민사회를 향한 질문이자 제안이다. 어떻게 해야 의사들에게 이처럼 속수무책으로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이번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듯이 의사 집단의 정치적 대응과 전략은 투박하기 그지없다. 그 까닭은 굳이 정교해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만큼 의사 권력은 강하고, 그 원천은 집단 행동이 가지는 파괴적 영향력을 상쇄할 만한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데 있다. 물론 보수 언론의 비호 속에서 자신들의 뜻을 쉽게 관철시켰던 2020년과 달리 (☞관련자료 :2020년 의사파업에 대한 언론보도와 미디어 프레임 분석) 사실상 거의 모든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이번 사태를 경험하면서 앞으로는 여론전에 좀더 공을 들이려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여론 지형에서도 이렇게 사회 전체를 상대로 힘겨루기를 할 수 있는 세력은 의사 집단이 유일무이할 것이다. 그리고 의사 증원을 하더라도 압도적 민간의료시장이 그대로라면 의사 권력은 지금의 우위를 앞으로도 유지할 공산이 크다. 즉,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도덕적 호소와 간청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물론 규범적 접근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의사 권력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중 하나는 경제 권력을 통한 통제 방식이다. 미국 모델처럼 거대 영리자본이 의료 시장을 잠식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다수 의사들을 독립적인 개원의 상태에서 보험회사 등에 고용된 노동자 신분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개별 의사들이 촘촘한 기업 통제를 받게 되면 지금처럼 쉽게 전면 파업을 도모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하워드 웨이츠킨의 설명을 따르면, 이미 미국에서는 의사들의 '프롤레타리아화'가 상당히 진행되었다고 한다(하워드 웨이츠킨 지음, 이미라 옮김, <칼날 아래 놓인 의료>, 한울아카데미). 하지만 이처럼 자본의 영향력 강화를 통한 의사 통제 방식은 보건의료를 더욱 영리화·상업화하고 나아가 보편적 의료보장체계의 근간을 위태롭게 만들 것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경로다.

결국 시민의 가치와 이해관계에 가장 부합하고 효과적인 통제 방식은,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장기적 계획 속에서 시장형 의사에 맞설 수 있는 공공형 의사를 꾸준히 양성하고 배출하는 방법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기존과 확연히 구분되는 별도의 의대, 별도의 면허제 등을 도입하고 이들이 근무하게 될 공공의료기관을 대폭 늘리고 그 기능을 강화할수록 더 큰 기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추진해도 당분간 의사 파업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할 수 없을 테지만 그 협상력은 점차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병원 내 수평적 권력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의사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할 필요도 있겠다. 의사들의 이기적 집단 행동 때문에 간호사를 비롯한 동료 노동자들, 환자들과 지역주민들이 큰 부담과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은 부당하고 반민주적이며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언제까지 의사라고 해서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는 구조를 용인해줘야 하는가. 보건의료 생산체제의 한 구성원으로서 의사들이 다른 직종과의 상호 견제 속에서, 환자와 시민사회에 대한 책무성 속에서, 그 자율성과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금의 의사 중심 시스템을 개편하는 과제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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