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친구 먹는 아이들 [한주를 여는 시]

이승하 시인 2024. 6. 1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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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한주를 여는 시
이승하의 ‘내가 읽은 이 시를’
윤동재 시인의 ‘별 동무’
말이 통하지 않아도 괜찮은
밤하늘에 언제나 있는 존재

별 동무

경북 영양 외할머니댁
농사철 주말이면
우리 어머니 어김없이
경기도 안산에서 차를 몰고
식구들 다 데리고 찾아가지요
혼자 사시는 외할머니 일손이 없다며
주말에는 우리 식구들이 모두 외할머니댁에 가서
일을 도와드리지요
하루 일을 마치고 외할머니댁 마당에 나와
밤하늘을 보면 별들이 내게 말을 걸지요
별 하나 별 둘 별 셋 별 넷
내게 자꾸 말을 걸면
나도 어느새 별들과 동무가 되어
별 동무에게 내 얘기를 해주지요
별 동무의 얘기를 들어 주지요
외할머니댁에 가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별들과 놀고 별들과 얘기 나누다 보니
별 동무가 최고지요
화내는 일 토라지는 일 사이가 틀어지는 일이 없는
별 동무가 으뜸이지요

「씨앗 두 알」, 창비, 2023.

점성술이 발달했던 시대, 별자리가 우리 인간을 인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별을 보며 소망을 빌고 이상의 날개를 폈던 사람들이 있었다. 별을 보며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고 국가의 흥망성쇠를 예견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게오르그 루카치는 "별을 보던 시대는 행복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윤동재 시인은 아이가 경북 영양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가 마당에 나와 밤하늘의 별을 보는 광경을 그린다. 밤하늘에 촤악 깔려 반짝이는 별을 보고 아이가 별들과 친구가 된다고 한다.

[사진=창비 제공]

내가 별 친구에게 내 이야기를 해주고 별 친구도 내게 말을 걸어준다. 나와 별 친구는 화내거나 토라지거나 사이가 틀어지는 일이 없다. 이러한 관계망 설정은 다분히 환상적이고 시적이지만,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것이 동시의 기능 중 하나임을 상기할 때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나는 대낮에도 형광등을 켜놓아야 하는 지하방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방학이 되면 대구 근교 무태나 상주 근교 화산에 가서 여러 날 보내곤 했는데, 그때 본 별천지를 생각해보면 동시 속 아이가 별을 친구로 삼아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충분히 이해된다. 아이를 데리고 천문대에 가는 아빠들이 있으면 좋겠다. 나는 그때 수백 수천개의 별을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상하게도 큰 희열을 느꼈는데…….

이승하 시인
shpoe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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