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개빈 우드 이더리움 공동창업자 “코인 투기가 웹3.0 본질 흐려… 혼란 회복할 탄력적 기술”
“코인은 부산물…실용적 앱 나와야”
“공룡기업, 진정한 웹3.0 구현 못해”
“가상자산은 웹3.0의 처음도, 끝도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 되죠. 가상자산은 웹3.0 산업의 부수적인 요소에 머물러야 합니다. 오히려 가상자산이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미래 가치를 보장한다는 달콤한 속삭임에 투자자들이 몰리죠. 이러한 양상은 사실상 투기입니다.”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이 미래 금융을 바꿀 동력이라고 보는지 묻자 개빈 우드(Gavin Wood·44) 박사는 신중한 목소리로 이처럼 답했다. 그는 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은 웹3.0 산업의 부산물이며 이를 고수익 투자상품으로만 바라보는 마케팅이 웹3.0 산업의 발전을 해친다고 강조했다.
우드 박사는 비탈릭 부테린과 함께 ‘이더리움의 아버지’로 불린다. 컴퓨터공학 박사인 그는 부테린과 함께 지난 2014년 이더리움 재단을 설립했으며 재단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역임했다. 우드 박사는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프로그래밍 언어인 솔리디티를 개발하고 이더리움 이론 해설집인 황서(Yellow Paper)를 작성하는 등 이더리움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도맡았다. 블록체인업계에선 부테린을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에, 우드 박사를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창업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우드 박사의 손끝에서 탄생한 이더리움은 블록체인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더리움이 스마트 콘트랙트라는 신기술을 도입하자 블록체인을 통한 대체불가토큰(NFT) 발행, 실물자산 토큰화, KYC(신원 확인) 등 새로운 산업의 장이 펼쳐졌다.
재단이 발행하는 동명의 코인은 글로벌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더리움 시가총액은 4227억달러(약 583조원)로 전체 코인 중 두 번째로 크다. 최근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이더리움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 첫 단계를 통과시키면서 제도권 금융 자산 지위를 넘보는 중이다.
웹3.0이라는 단어를 처음 제시한 이도 우드 박사다. 웹3.0은 초창기 인터넷인 웹1.0, 플랫폼 개념의 웹2.0을 넘어선 개념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된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2016년 이더리움 재단을 떠난 우드 박사는 패리티를 창업하고 새로운 블록체인 폴카닷을 만들었다. 아울러 웹3 재단을 설립하고 각종 웹3.0 기업을 지원하며 지금도 산업의 주요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다.
우드 박사는 지난 10일, 한국을 방문해 서울대 블록체인 학회 디사이퍼 구성원들 앞에서 강연을 펼쳤다. 조선비즈는 이날 강연 전 우드 박사와 만났다. 그의 한국 언론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비트코인이 처음 출시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상자산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더리움 개발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존 사회 질서에 의존하지 않는 디지털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가상자산에는 눈길이 가지 않아요. 저는 ‘도박’을 좋아하지 않죠. 단지 더 투명하고 개방적이며 유연한 방식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이더리움 사업에 합류하고 지금까지도 웹3.0 산업에 남아있는 이유입니다.”
―큰 성과를 냈지만 2016년, 이더리움 재단을 떠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안정적인 환경을 추구합니다. 반면, 역동적으로 창조에 몰두하는 환경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죠. 제 목표는 언제나 창조와 닿아 있습니다. 더는 이더리움 재단에 머무르는 게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제게 더 나은 환경이라고 판단했어요. 저는 이더리움 재단을 떠났지만, 이더리움 자체와 결별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패리티를 창업할 때 부테린이 도움을 줬습니다. 부테린은 패리티의 자문 역할도 했죠. 패리티는 이더리움 클라이언트 생태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10년 전 처음으로 웹3.0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제시했던 웹3.0 개념과 지금 생각하는 웹3.0의 개념은 여전히 같나요.
“제 머릿속 웹3.0의 개념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죠. 지금 세상이 변하는 방식은 웹3.0 기술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더욱 굳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이유 때문에 세상은 상당히 혼란스러워졌죠. 혼란이 가중되는 사회를 회복시킬 수 있는 탄력적인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웹3.0이라고 생각합니다.”
―웹3.0 개념이 나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웹3.0 개념은 낯섭니다. 왜 아직 웹3.0 대중화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십니까.
“충분한 실용성을 갖춘 제품이나 서비스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어떤 제품이 출시되더라도 그 제품이 유용해야 찾습니다. 현재 웹3.0 기술은 확장성과 접근성 측면에서 충분히 유용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죠. 선진국 내에서는 웹3.0의 특징인 탈중앙화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사회·경제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으니까요. 아직 웹3.0 기술이 선진국 사람들의 구미를 당길 만큼 발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재 웹3.0의 효용성은 정부 기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제3세계에서 더 의미가 있어요.”
―그렇다면 금융 분야에서 웹3.0 대중화가 실현되려면 무엇이 먼저 해결돼야 합니까.
“금융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금융 관련 응용 프로그램은 자본 거래를 위한 인프라를 필요로 합니다. 신원증명, 공급망 관리 등이 예시입니다. 이는 단순히 숫자로만 이뤄지지 않으며 정성적인 데이터를 포함합니다. 탈중앙화된 금융 시스템을 거쳐 정성 데이터를 통합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죠. 특히 탈중앙화를 강조하는 웹3.0 시스템 내에서 정성 데이터 통합을 수행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아직 보편적인 웹3.0 금융 서비스가 없는 이유입니다. 금융 관련 웹3.0 킬러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은 마라톤과 같아요. 우리는 한참 달리는 중이죠.”
―반대로 가상자산 투기 행위는 웹3.0 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말했습니다.
“가상자산이 웹3.0 기술의 킬러 콘텐츠라고 주장할 수도 있어요. 규제 사각지대 속 투기를 가능하게 하잖아요. 테라·루나 폭락과 FTX 파산 사태를 보면 코인을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 무책임한 면을 볼 수 있습니다. ‘남들도 이 코인을 사겠지’ 이런 생각만 하고 시장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투자에 뛰어들어요. 웹3.0 산업의 슬픈 단면이죠. FTX처럼 중앙화된 거래소(CEX)나 테라·루나와 같이 잘못 설계된 가상자산은 진정한 웹3.0이 아니에요. 무책임한 사업자들이 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웹3.0 자체를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 사기)로 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업계 내에서 가상자산 매매로 이익을 거두는 데에만 혈안인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웹3.0 기술에 대한 진지한 연구도 진행하지 않죠. 더 큰 문제는 거짓 정보를 만들 때 생깁니다. 이런 지점은 관리돼야 합니다. 적절한 관리가 이뤄질 때 웹3.0을 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바뀔 것입니다.”
―최근엔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의 결합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실험이 진행될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AI는 극도로 중앙화된 구조를 갖췄어요. AI 열풍으로 다가올 중앙집중화 트렌드를 완화하는 데 블록체인이 도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MS) 등 AI 기업과 웹3.0 기업이 협업하는 게 블록체인 발전에 긍정적일지 의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MS처럼 중앙집중화된 거대 조직은 블록체인과 파트너십을 맺지 않아요. 블록체인을 운영하는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죠. 이러한 협업은 웹3.0 기술의 본질적인 지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합니다. 웹3.0 기업과 AI 기업의 협업 결과물은 웹3.0이 아닙니다. 일반 회사 제품이에요.”
―그렇다면 MS와 같은 거대 기업은 진정한 웹3.0 기술을 구현할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맞아요. MS는 DAO(탈중앙화 조직)가 아니며, MS가 DAO와 협력을 고려하기까지 세상이 많이 변해야 할 것입니다. 당장 내일 그렇게 변할 것 같지는 않아요. 어떤 블록체인 회사가 MS나 IBM 등과 파트너십을 맺었다는 소식을 종종 듣지만, 그들이 협업해 만드는 제품이 실제 웹3.0 결과물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폴카닷 등 지금 세상엔 수많은 블록체인이 존재합니다. 이런 양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수천개의 블록체인과 수천 종류의 코인이 있어도 제 사업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제가 만드는 것은 디지털 서비스 플랫폼이고 플랫폼을 보호할 수단만 갖추면 되니까요. 뉴욕거래소에서 사고팔 수 있는 주식이 얼마나 많든지 MS에 문제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기업의 흥망성쇠는 사업 실적에 달려 있습니다. 거래소 상장사 수는 어떻든 상관없죠. 수천개 블록체인이 경쟁하는 지금의 환경은 웹3.0 산업 발전 측면에도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목표가 궁금합니다.
“증명이 덜 필요하고, 신뢰는 더 풍족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웹3.0의 기본 이념입니다. 웹3.0의 핵심은 코인, NFT, 투자가 아닙니다. 투명성을 높이고 사람을 의심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게 웹3.0이에요. 이상적으로는 자신의 금융 통제권을 직접 관리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직접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빈 우드 박사는
▲요크대 컴퓨터 시스템·소프트웨어 공학 석사 ▲요크대 컴퓨터공학 박사 ▲MS 연구자 ▲이더리움 공동창업자 및 CTO ▲패리티 공동창업자 및 CEO ▲웹3 재단 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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