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한·중 협력 [문정인 칼럼]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지난 5월26일 4년 반 만에 재개된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 대한 중국 쪽 기대는 매우 커 보였다. 정상들의 회동이 세 나라 사이의 협력을 심화하고 관계 개선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더해, 중국을 견제하는 한·미·일 3국 공조의 강도를 누그러뜨릴 기회도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실제로 회담을 전후해 중국 언론에서는 한-중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 섞인 논평이 적지 않았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방중 기간에 보여주었던 유연한 태도가 주목을 받았는가 하면,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중 자유무역협정 2단계 진입 협의, 13년 만에 한-중 투자협력위원회 재개 합의, 공급망 문제에 대한 양국 간 조정·협의체 구축, 2+2 외무 차관 및 국방부 국장급 회의 설치 합의 같은 구체적인 성과에 대해서도 이구동성으로 긍정적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 언론으로서는 보기 드문 후한 평가다.
그러나 지난주 베이징 현지에서 필자가 만난 중국 쪽 당국자와 한반도 전문가들의 속내는 사뭇 달랐다. 한마디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이들은 크게 다음과 같은 네가지 포인트를 거론했다.
무엇보다 중국의 핵심 이익을 자극하면서 베이징과의 실질적 협력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중·일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안보대화에 참석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미국, 일본 국방 장관과 더불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를 강력히 반대”하는 동시에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불법적 영유권 주장’을 비판하고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여기에 더해 한·미·일 3국은 올여름부터 공동 군사훈련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중국 정부의 반응은 매우 민감했다.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배하고 중국의 내정에 난폭하게 간섭하고 악의적으로 공격”한 것이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남중국해 당사자도 아닌 한·미·일 정부가 역내 국가 간 해상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기도 했다. 이는 주권과 영토 문제라는 중국의 핵심 이익을 저해할 경우, 다른 분야의 협력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양자 관계 전반이 파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었다. 한국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중국 쪽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한-미 동맹은 한국의 주권적 권한이므로 중국 쪽이 왈가왈부할 권한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북한 위협을 구실로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나 봉쇄를 정당화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는 말 또한 빼놓지 않았다. 예컨대 사드 추가 배치나 미국 중거리탄도미사일의 한반도 전진배치,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일대에서 중국을 대상으로 벌이는 군사행동에 한국군이 참가하는 경우, 베이징은 이를 적대시 행동으로 간주하고 상응하는 조치를 하게 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경고도 있었다. ‘상응하는 조치’의 구체적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드 갈등 당시의 경제적 보복을 넘어서는 물리적 보복 조치가 따를 수 있다는 개연성마저 암시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 쪽 인사들은 ‘한-미 동맹을 돈독히 해 미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확보하면 중국과의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부 보수층의 셈법에 대해서도 다분히 부정적이다.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연대가 한국에 자산이 아니라 부채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의 중국을 1990년대의 중국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주문도 이어졌다. 미국조차 중국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할 때, 미국의 힘을 빌려 우회적으로 중국에 압박을 가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한반도 평화 안정과 비핵화, 대화와 외교를 통한 현안 타결을 외쳐왔지만, 최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고조에 대해서는 방관자적 태도를 보여왔다. 필자가 이러한 소극적 자세를 비판하자, 베이징 인사들의 반응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이미 쌍중단, 쌍궤병행, 동시행동 원칙 등 남·북·미가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등 할 만큼 했는데, 한·미가 이를 거부하고 일방적인 대북 강경정책으로 나가고 있으므로 중국으로서도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한·중·일 정상회의와 한-중 대화의 재개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중국 쪽 인사들의 속내는 여전히 국내외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중 관계의 장래가 여전히 어두워 보이는 이유다. 원칙에 대한 강조, 한-미 동맹 강화, 그리고 한·미·일 3국 협력체제의 심화가 필요하지만, 한·중 현안을 푸는 해법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익과 실용의 관점에서 한-중 관계에 대해 본질적인 재검토가 시급히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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