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사용 위협은 불법…미 확장억제 폐기돼야”
2026년 뉴욕에서 본 행사 예정
“미국이 한반도에서 진행하고 있는 ‘확장억제정책’은 국제법과 유엔 헌장을 위반한 위법 행위다.”
지난 8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1945년 미국의 핵무기 투하의 책임을 묻는 원폭국제민중법정 제2차 국제토론회’에서 내린 주요한 결론이다. 원폭국제민중법정은 평화시민단체인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하 평통사)이 한국원폭피해자들의 의뢰를 받아 진행하는 행사로, 오는 2026년 미국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다. 평통사는 원폭국제민중법정 준비를 위해 지난해 6월 경북 합천 인근에서 제1회 국제토론회를 열고 “히로시마 원폭 투하가 전시국제법의 ‘기본 원칙’인 구별의 원칙(민간인 공격 금지) 등을 위반한 불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이 1945년 투하한 원폭의 실제 피해 도시인 히로시마에서 열린 이번 국제토론회에서는 ‘미국 핵 전략의 현재적 위법성’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토론회는 제1세션에서 한국 피폭자 입장에서 미국의 히로시마 핵무기 투하의 역사적 의미를 짚어보고, 제2세션에서 1945년 이후 창설된 국제법으로 살펴본 핵무기 사용의 불법성을 고찰했다.
이를 바탕으로 제3세션에서는 ‘확장억제의 불법성’을 고찰한 뒤,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에서의 평화 회복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확장억제는 ‘미국의 동맹국이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이 핵과 재래식 수단 및 미사일 방어망을 동원해 방어해 주는 것’을 가리킨다.
제3세션 첫 발표자로 나선 찰스 막슬리 미국 포드햄 로스쿨 법학 교수는 우선 핵무기 사용의 위법성을 강조했다. 미국이 전시국제법(국제인도법)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과 미 육군·해군 등이 사용하는 교범에 나와 있는 관련 내용들을 논증의 증거로 삼았다.
우선 국제인도법에 따르면 ‘국가가 그 영향을 통제할 수 없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왜냐하면 통제할 수 없는 무기의 사용이 국제인도법의 핵심 내용인 △구별의 원칙 △비례성의 원칙(군사적 필요성과 민간인 생명과 자산 보호 등 인도적 고려 사이에 비례해야 한다는 원칙) △필요성의 원칙(군사적 필요성을 달성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전투원, 민간인의 생명과 자산에 대한 손실, 상해, 손상을 금지하는 원칙)을 지킬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통제할 수 없는 무기의 불법성’은 미국도 거듭 인정해온 부분이다. 공군 지휘관 편람 등 미국의 군사 교범들도 “군사 목표를 겨냥하도록 충분하게 통제될 수 없는 무기 사용은 불법”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막슬리 교수는 핵무기야말로 ‘통제할 수 없는 무기’라고 설명한다. 그는 그 근거 또한 미 공군 국제법 교범에서 찾는다. 교범에서는 ‘통제 불가능한’이라는 것을 “소기의 군사적 이익에 비하여 민간인이나 민간 자산에 과도한 위험을 필연적으로 초래할 정도로 사용자의 통제에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벗어나는 영향을 가리킨다”고 정의한다. 그는 이에 따라 “미국이 무기 기술의 발달로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저위력 핵무기조차도 통제될 수 없는 방사성 낙진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통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막슬리 교수는 “더욱이 미국 핵무기가 주로 고위력 핵무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핵 사용의 위법성은 더욱 커진다”고 강조했다.
막슬리 교수는 이어서 “이런 핵무기 사용의 위법성에 근거할 때 미국이 주장하는 확장억제 또한 위법”이라고 밝혔다. ‘확장억제의 위법성’에 대한 논거로 막슬리 교수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1996년 ‘핵무기의 사용에 대한 권고적 의견’을 들었다. 당시 국제사법재판소는 “예정된 무력행사가 그 자체로 불법이라면, 그러한 무력을 행사하기 위한 공언된 준비태세도 유엔 헌장 제2조 4항에 따라 금지된 위협이며 불법”이라고 판시했다. 이 권고에 비추어볼 때 ‘확장억제’는 동맹국 등에 공격이 가해질 때 핵무기 등을 사용하겠다는 위협이므로 역시 불법이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안나 후드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 법학부 조교수는 위협을 ‘일반 위협’과 ‘특정 위협’으로 나눈 뒤, ‘일반 위협’은 유엔 헌장 2조 4항의 위반이 아니며 ‘특정 위협’만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이다.
“미국이 ‘일본과 한국이 자국의 핵우산 아래 있으며, 이들 국가가 공격받을 경우 방어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일반적 선언을 하는 것은 유엔 헌장 제2조 4항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전략자산 등을 동원해 특정국인 북한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한 경우, 이러한 위협은 유엔헌장 제2조 4항의 금지에 위배된다.”
그러나 토론자로 나선 고영대 평통사 대표는 “한반도의 경우 전술핵 배치를 통한 확장억제 제공(1957~1991)이든 전략자산을 동원한 확장억제 제공(1978년 이후)이든 전부 작전계획·연합연습 등을 통해 북한을 겨냥한 특정 위협이 된다”며 “이는 모두 유엔헌장 2조 4항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고 대표는 또 “2022년 9월에 제정된 북한의 핵무력 정책법이 미국과 남한을 특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남한과 미국도 이를 자국을 겨냥한 특정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북한의 이런 고강도 억제정책이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해 북한이 느끼는 위협의 강도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핵 대결과 핵 군비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는 만큼 마땅히 폐기돼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위협’이 위협만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 무력충돌로 발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막슬리 교수는 2001~2009년 집권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독트린을 사례로 든다. 이는 미국이 임박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잠재적 위협에 대해서도 선제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교리로 유엔헌장 2조 4항과 51조를 위반한 불법이다. 막슬리 교수는 “부시 톡트린은 국제법의 전통적인 이해를 훨씬 뛰어넘는 예방전쟁에 해당하는 조치”라고 했다. 그는 “오바마 이후 행정부들에서도 이 불법적 선제공격 교리를 전면 철회하지 않고 있다”며 “이 교리에 따라 핵무기 선제 사용이 이루어질 때, 남북은 되돌릴 수 없는 참화를 입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 대표는 “동맹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모든 확장억제는 특정국을 대상으로 한 위협”이라며 “따라서 한미와 북한이 억제정책을 폐기하는 것만이 한반도의 핵 대결을 걷어내고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여전히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히로시마=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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