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1번지' 주인은 누구… "우주 부동산 시대, 자원 확보해야 이긴다"
NASA 화성 프로젝트 등 국제공동연구 잔뼈 굵은 우주자원 전문가
한국 유일 '아르테미스 Ⅳ' 도전장 내밀어… "본격 우주 생활권 준비한다"
"전 세계 우주청 및 우주산업 관계자는 '우주 부동산' 준비에 한창입니다. 우주 자원의 소유권을 논하기 위한 우주법 제정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한국도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 영향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지난 5월, 우주항공청(우주청·KASA) 개청과 함께 국가우주위원으로 위촉된 김경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우주자원개발센터장은 "한국 우주 정책이 발사체 개발뿐만 아니라 우주물리·행성지질 등 우주과학에도 균형 있게 투자해야 하는 이유"라며 이처럼 말했다. NASA(미국 항공우주국)의 화성 탐사 프로젝트인 '마스 오딧세이(Mars Odyssey)'의 일원으로 근무하는 등 국제공동연구에도 잔뼈가 굵은 그는 또 "세계 유수의 연구실에서 대를 이어 전해지는 '전술'은 쉽게 얻을 수 없다"며 "명망 높은 연구자를 길러내되 한국이 국제 프로젝트에 지속해서 이름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3일 대전 유성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본관에서 만난 김 센터장은 최근 국가우주위원으로 위촉된 데 대해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일"이라며 "우주 정책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우주항공청 개청식 및 제1차 국가우주위원회에서 국가우주위원으로 위촉됐다. 국가우주위원회는 2005년 처음 설치됐지만 우주항공청 개청과 함께 규모가 확대돼 올해 1월 대통령 소속 자문위원회로 격상됐다. 향후 정부의 우주개발 정책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게 된다.
화성 기후와 지질학을 연구하는 NASA '화성 오디세이' 프로젝트에 몸담고 있던 김 센터장은 2007년 이명박 정부 초청으로 귀국했다. 정부가 달의 환경 및 자원 탐사를 위한 '국제 달 네트워크(ILN) 사업'에 참여키로 했지만, 국내에서 마땅한 적임자를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김 센터장의 연구 분야인 '행성 지질학'은 당시 이름조차 생소했다. 그의 귀국으로 지질자원연에 소규모의 행성지질연구실이 만들어졌다.
김 센터장 연구팀이 '우주자원개발센터'로 격상된 건 1년 6개월 전이다. 연구팀은 2022년 한국 최초의 달궤도 탐사선 '다누리호'에 감마선분광기(KGRS)를 실어 보냈다. 우주를 떠도는 에너지가 높은 입자의 흐름을 우주방사선(cosmic ray)이라고 하는데, 우주방사선을 이루는 양성자가 달 표면과 충돌하면 중성자(2차 방사선)가 생성된다. 그중에서도 에너지가 낮은 중성자는 달 표면에 있던 원소에 의해 포획된다. 포획 과정에서의 핵반응으로 방출된 감마선을 측정하면 중성자가 어떤 원소와 충돌했는지 추정할 수 있다. 감마선분광기는 이 감마선을 포착해 달 표면에 존재하는 원소의 종류를 파악하는 연구기기다.
김 센터장은 "감마선분광기가 달 궤도를 360도 돌며 보내온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 우주자원 탐사의 기반이 될 '달 원소 지도'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의 탐사선 '창어6호'가 세계 최초로 달 뒷편 토양·암석 샘플을 채취해 화제가 됐지만, 한국은 감마선분광기를 통해 이미 전체 달 표면에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는 원소 종류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감마선분광기 개발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건 김 센터장이 국제 학계와 쌓은 긴밀한 네트워크다. 그는 "아무리 연구에 깊이 관여한 과학자라 해도 현장 기술자의 노하우 없이 우주 탑재체를 만들 순 없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미국에서 함께 연구한 학자·현장 기술자와 끊임없이 이야기한 끝에 노하우를 전수받았고, 이를 국내 분광기 제작 업체에 전했다. 우주 관련 기기를 만들어 본 적 없는 업체였지만 처음으로 고성능의 우주 탐사 기기를 만드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김 센터장은 "세계 유수 연구실에서 함께 공부하며 쌓은 네트워크와, 이를 통해 전해진 '전술'은 외부에서 쉽게 배울 수 없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R&D(연구·개발)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국제 교류가 이뤄지기 위해선 △국제적 명성을 확보한 연구자 △ 협의 실무자의 연구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지속적인 국제 공동프로젝트 참여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김 센터장 연구팀은 인류 최초의 달 정거장 '루나 게이트웨이'에 거주하며 화성 탐사를 준비하는 NASA '아르테미스 4(아르테미스 Ⅳ)' 프로그램에 참여의향서를 냈다. 한국에서 아르테미스 4 탑재체 공모에 이름을 올린 건 김 센터장 연구팀이 유일하다. 연구팀은 물·희토류 등 달 자원 및 방사선 환경을 조사할 레이저 분광기, 감마선·중성자 분광기, 산소 추출기를 루나 게이트웨이로 올려보낸다는 계획이다.
또 김 센터장은 우주 수송 가격이 내려간 만큼, 자원 조사를 넘어 본격적으로 우주 공간을 오가며 자원을 개발하는 단계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봤다. 우주의 자원 유망지를 사고파는 '우주 부동산' 시대가 머지않아 본격화한다는 전망이다. 그는 "'우주법' 제정 등 우주 자원의 소유권을 논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고, 한국도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 영향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한국은 누리호 발사를 통해 발사체 자체 개발 능력을 입증했기 때문에 국제 협력이 전보다 쉬워질 것"이라면서도 "발사체에만 주력하다 보니 우주 물리 등 우주 관련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적었고, 그에 따라 젊은 우주과학자가 부족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우주 시대를 위해 우주청이 해야 할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젊은 우주과학 연구 인력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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