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버리고 '소양 쌓는' 서울대 교수들…'무기한 휴진' 속내는
서울의대 교수들이 오늘(17일)부터 '무기한 휴진'을 예고한 가운데, 휴진은 국민에게 피해를 주거나 협박하려는 게 아닌, 진료 정상화 과정일 뿐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들은 이날부터 응급실·중환자실 등 필수 부서를 제외한 모든 진료과에 대해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며, 서울대병원 교수의 54.6%인 529명이 휴진에 참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이 무기한 휴진 첫날 선택한 행보는 '소양 쌓기'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강희경 비대위원장이 전날(16일) 공개한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에게 쓴 편지에 따르면 강 비대위원장은 "교수들의 참여율이 이렇게 높은 건, 우리가 생각하는 '전체 휴진'이 밖에서 생각하시는 휴진과는 다르기 때문"이라며 "(이번 휴진이) 국민들께 피해를 주거나 협박하고 불안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난 14일에 발표한) 비대위의 글로 확인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앞서 14일 비대위는 "우리는 의사이고, 이번 전면 휴진은 정책결정자들을 향한 외침이지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게 목적은 아니"라고 했다. 이들이 17일부터 진행하는 '전체 휴진'의 기준은 모든 진료 예약을 취소하는 것만이 아닌, '조정할 수 있는' 진료 일정에 대해 조정한 경우도 포함한다는 설명이다. 다른 병·의원에서도 진료가 가능한 환자, 진료를 미뤄도 당분간 큰 영향을 받지 않는 환자들의 정규 외래 진료와 정규 수술 중단한다는 것이다.
강 비대위원장은 "55% 정도의 교수들께서 이런 조건으로 진료를 조정했으니, 실제 진료량의 감소는 40% 정도로 예상한다"며 "서울대병원이 '중증·희귀 질환 환자 진료에 집중하는 진정한 최상급종합병원'이라면, 진료량 감소 폭은 더 작아질 것이고 그러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계획하는 것(전면 휴진)이 과연 '전면 휴진'인지 최상급종합병원으로써의 '진료 정상화'인지 아니면 '준법투쟁'인지 좀 혼란스럽다"며 "20년 전부터 서서히 이뤄졌어야 하는 의료전달체계의 정상화를 며칠 만에 급작스럽게 시도하는 셈이라 피해 보는 분이 계실까 두렵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교수들에게 "이번 '전면 휴진' 결의로 여러 교수께서 내가 지금 꼭 봐야 하는 환자가 어떤 분들인가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 보셨을 것으로 짐작한다"며 "어떤 환자를 서울대병원에서 진료하고 어떤 분들은 거주지의 1, 2차 병원 또는 네트워크병원으로 돌려보내 드릴지 고민하시겠다"고 언급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이번의 진료 축소 기회를 시작으로, 경증 일반환자들은 가까운 의료기관으로 보내드리고, 중증·희소질환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며 "1·2차 의료기관과 경쟁하는 대신, 진정한 대표적인 공공의료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병원은 '중증 희귀 난치질환 치료와 연구 중심의 4차 병원'으로의 특화가 좀 더 가속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들은 휴진 첫날인 17일 교수로서의 소양을 쌓기 위한 심포지엄을 연다.
비대위는 "현대 사회에서 전문가의 몰락은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이는 전문가의 전문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전문가 집단의 소양 부족, 도덕적 해이 등이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의학 전문가이자 교수로서 필요한 소양, 경계해야 할 도덕적 해이에 대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며 "휴진 첫날인 17일 오후 1시부터 서울대 의대 융합관 양윤선홀에서 'Professionalism(전문가주의)과 교수로서의 소양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비대위에 따르면 이날 심포지엄엔 △Professionalism은 무엇인가, 한국 사회 속에서 Professionalism 확립하기(고려대 안덕선 명예교수) △곡학아세(曲學阿世; 바른 길에서 벗어난 학문으로 세상 사람에게 아첨한다는 뜻)하지 않는 지식인 되기(전남대 경영학과 양채열 교수)를 주제로 발표가 진행된다. 좌장은 비대위의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속이자 소아 콩팥이식 전문인 강희경 비상대책위원장이다.
하지만 포스터 제목에 'Professionalism'의 오타(Professionism)가 새겨지자 의사들 커뮤니티에선 "제목 철자를 고쳐라" "프로 냄새가 안 난다"는 비판도 일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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