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집이라도 사둘걸” ‘MZ 픽’된 마포, 버릴 곳이 없네 [마포구의 비밀①]
사방으로 넓어진 홍대 상권, 동서 잇는 ‘경의선 숲길’ 날개 달아
“거기 개집이라도 사뒀어야 하는데.”
신촌에서 대학을 나왔거나 젊은 시절 인근 밥집, 술집을 애용하던 30~40대 직장인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동기들의 자취방이 밀집됐던 학교 근처 낡은 주택가가 고가의 브랜드 아파트촌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행인들로 북적이던 만남의 장소는 다소 한산해졌다.
이 같은 변화는 마포의 성장과 함께한다. 불과 10~20년 사이 오래된 서울 부도심으로만 취급받던 마포의 위상은 달라졌다.
마포는 오래된 도시다. 그래서 마포 하면 상가와 노후화한 주택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노후화한 주택가는 아현뉴타운(재정비촉진구역) 등에서 재개발, 재건축이 대거 추진되며 변신에 성공했다. 심지어 ‘대기업 맞벌이’로 상징되는 젊은 중산층 가구가 선망하는 주거지로 자리매김했다. ‘마래푸(마포 래미안푸르지오)’, ‘신프자(신촌 프레스티지자이)’ 등 일부 아파트 단지는 부동산 투자자 및 수요층 사이에서 명성을 얻게 됐다. 마포구의 서쪽 끝인 상암동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업무지구가 들어서며 서울 서부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그 덕에 마포는 올해 서울 집값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KB부동산 월간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서 지난해 말 대비 올해 5월 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은 자치구가 마포였다. 지금 같은 부동산 하락기는 시세에 거품이 빠지며 지역별, 단지별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시기다. 투자수요가 밀물처럼 사라진 자리를 실거주 수요가 받쳐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마포 아파트에 살고자 하는 실거주 대기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마포구는 아파트뿐 아니라 상권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마포 홍대 상권은 서대문 쪽에 중심을 둔 신촌 상권의 변방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주변 지역으로 급격히 확장하며 서울 최대 규모의 상권으로 성장하고 있다. ‘홍대’라는 이름 그대로 홍대입구역에서 홍익대 정문 앞 일대에 그쳤던 범위는 어느새 마포의 중앙 지역을 다 차지할 만큼 커졌다. 홍대, 연남동, 합정, 상수, 광흥창을 아우르는 지역이 그 자체로 대규모 상권으로 바뀐 것이다. 몇 년 새 외국인 방문객 역시 급증하면서 서울은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비 1번지’로 발전했다.
최근 마포의 성장은 국내 주거 및 상권 흐름과 연관돼 있다. 정부가 서울 강북 구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한 도시계획을 적극 추진한 한편, 달라진 소비자 니즈(needs) 역시 마포가 기존에 보유하던 잠재력과 특성에 맞아떨어진 것이다.
한강·철도 갖춘 옛 나루터
예나 지금이나 마포는 교통의 요충지다. 옛 마포나루와 서강나루, 양화나루를 품고 있는 마포는 서울 강북 한강변 서쪽에 위치해 조선시대 수상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 중 마포나루는 조선 최대의 항구였다. 삼남지방(충청도·전라도·경상도) 물자를 도성까지 운반하는 배들이 포구에 정박하며 쌀, 소금 등 물자를 창고에 저장했다. 염리동은 소금장수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 광흥창은 곡식창고였다. 마포구에서 새우젓 축제, 마포나루 굿 행사를 여전히 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양으로 가는 핵심 물류 통로였던 만큼 외부 문물이 빠르게 들어오던 곳이기도 했다. 합정동 한강변에 있던 양화나루는 1866년 흥선대원군이 프랑스인 선교사 9명을 처형한 ‘병인박해’를 빌미로 ‘병인양요’를 일으킨 프랑스군이 강화도 침략 전 순찰을 한 적이 있다. 해당 위치에는 1967년 천주교 절두산순교성지가 준공됐는데, 이는 처형된 천주교도 8000여 명과 프랑스 선교사 9명을 기리는 시설이다.
일제강점기 들어서는 대륙 침략을 목적으로 한 철도가 개발되며 마포를 지나게 됐다. 마포에는 용산부터 개성까지 이어지는 경의선 용산선과 서울복합화력발전소(당인리발전소)에 석탄을 운반하는 당인리선 지선 선로가 있었다. 철도 기점이 용산으로 가면서 물류중심으로서 마포의 입지는 전보다 낮아졌지만 철로 개발 이후 현재의 마포구 중심인 도화동, 용강동, 공덕동 일대에 시가지가 조성됐다.
마포구는 1944년 총독부령에 의해 서대문구와 용산구 일부를 분할하는 방식으로 신설된 뒤 해방 후인 1975년 서대문구 성산동과 상암동, 연남동 등 경기도 고양시와 맞닿은 현재의 마포 서부 지역까지 편입하며 넓어졌다. 결과적으로 마포구는 언덕이 많은 동부와 비교적 평지인 서부로 길게 뻗어 있으며 한강에 접한 길이가 약 10km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긴 곳이 됐다. 이로 인해 마포구와 연결되는 한강다리는 마포대교, 서강대교, 양화대교, 성산대교, 가양대교에 2022년 준공된 월드컵대교까지 총 6개(양화철교 제외)에 달한다. 마포는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한강과 접한 면적이 가장 넓다. 한강 조망과 접근성은 아파트와 상권의 가치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슬럼화에 신음하던 마포, 2000년대 대변신
오늘날 마포는 크게 공덕오거리를 중심으로 한 마포대로 일대 동부권과 대학가, 유명 상권이 밀집된 중부, 현재 디지털미디어시티와 월드컵공원이 위치한 서부권 세 곳으로 나뉘게 된다. 이들 지역은 2000년대부터 획기적인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각 권역의 성장은 서울 전반의 개발계획, 대중교통 발달과 궤를 같이한다.
일명 ‘동마포’라 불리는 공덕동, 아현동, 도화동, 용강동, 대흥동, 염리동, 신수동은 전형적인 서울 구도심으로 흔히 ‘마포’ 하면 떠올리는 핵심지역이다. 이 일대는 해방 후에도 매년 상경하는 인구가 늘면서 난개발이 일어났고 여기저기 판자촌이 생겨나는 곳이었다. 경의선 철길은 이 같은 슬럼화를 부채질했다. 기찻길 주변으로 허름한 무허가 건축물이 따라 생기며 도시 빈민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포의 이미지를 좋지 않게 했던 철길조차 지금은 마포의 가치를 높이는 인프라 역할을 하고 있다.
마포는 또 한국 아파트 역사에서 몇 가지 최초의 기록을 갖고 있다. 우선 한국에 제대로 된 첫 번째 단지형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다. 1962년 정부는 주거환경을 정비하고 부족한 주택공급을 확충하는 차원에서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교도소로 쓰이던 도화동 옛 마포형무소 자리에 마포아파트(1차 준공)를 지었다. 첫 단지형 아파트였다. 이 아파트는 1990년대 재건축을 통해 현대 도화동 마포삼성아파트로 변신한다. 국내에서 시행된 첫 번째 대규모 재건축 사업이었다.
대규모 아파트 사고도 마포에서 처음 일어났다. 1969년 무허가 건축물을 철거한 창천동 와우산 자락에 와우시민아파트를 조성했다. 그러나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고가 일어났다. 첫 대형 아파트 붕괴사고였다. 이 사건으로 일대 판자촌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려던 정부 계획은 중지된다.
또 다른 악재도 있었다. 한강변 섬이었던 상암동 소재 난지도가 당초 관광지로 개발하려던 계획이 변경돼 1978년 쓰레기 매립지로 지정된다. 이후 공원으로 조성될 때까지 15년간 서울의 쓰레기를 받아내는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마포는 발전을 거듭했다. 고속성장기를 거치며 강북(CBD), 여의도(YBD), 강남(GBD)이 서울 3대 업무지구로 자리를 잡으면서 마포는 여의도와 강북 사이를 잇는 통로이자 부도심 역할을 하게 됐다. 공덕역 인근에는 1993년 효성과 동서식품 본사사옥 입주를 필두로 에쓰오일, 경찰공제회 등 오피스가 자리 잡았고 서울서부지방법원, 서부검찰청, 마포경찰서 등 관공서도 밀집하게 됐다. 마포대로 이면에는 양념 돼지갈비로 유명한 조박집과 마포 전골목 등 직장인을 상대로 한 먹자골목, 유흥가가 형성됐다.
지하철 환승 노선도 점차 늘었다. 1996년에는 서울지하철 5호선 여의도~왕십리 구간이 개통되며 여의도부터 마포, 광화문을 잇게 됐다. 2000년에는 6호선, 2011년 인천국제공항철도, 2012년 공덕~디지털미디어시티역 구간이 개통되며 공덕역 인근은 쿼드러플 역세권이자 서북부 교통 허브로 진화했다. 현재 마포구에 정차하는 철도 노선은 경의중앙선(용산선), 2호선, 5호선, 6호선, 공항철도 등 총 5개이며 공덕역 외에 디지털미디어시티역(6호선·경의중앙선·공항철도), 합정역(2호선·6호선), 홍대입구역(2호선·공항철도) 등이 ‘멀티역세권’이다.
이 과정에서 2008년부터 지하화 작업에 들어간 경의선 용산선 지상 철로는 ‘경의선 숲길’로 재탄생했다. 2010년 서울시는 국가철도공단으로부터 용산구 효창동에서 마포구 연남동까지 이어지는 6.3㎞ 철로부지를 50년간 무상 임대해 선형공원인 경의선 숲길을 조성했다. 경의선 숲길은 지상철로 갈라졌던 지역 간 단절을 해소하고 마포구에 부족한 녹지와 공원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경의선 숲길은 무엇보다 확산 일로에 있던 홍대 상권을 더 키우게 됐다. 2000년대 들어 인디밴드 문화가 싹텄던 홍대 상권은 특색 있고 세련된 경험을 원하는 젊은 소비자들 구미에 맞았다. 상수동에는 카페거리가 생겨났고 홍대 앞에 쇼핑시설과 클럽을 찾는 관광객 등 인파가 몰리자 ‘힙스터’들의 발걸음은 6호선을 타고 합정을 거쳐 망원동까지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했다.
슬럼가였던 철길 근처 건축물은 신축, 리모델링 등을 통해 특색 있는 가게로 거듭났다. 홍대입구역부터 연남사거리로 이어지는 연남동 구간은 ‘연트럴파크’로 불리며 연남동에 젊은 유동인구를 연결했다. 최근에는 관광객들도 종로, 명동보다 연남동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사회관계망으로 내국인 선호 방문지가 외국인에게도 알려졌고 단체여행보다 개별, 가족여행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항철도 개통으로 인해 여행객, 수도권 서부 주민의 홍대 인근 접근성이 높아졌다.
과거에 서교동, 합정에서 그랬듯 새롭게 ‘핫플’로 뜬 연남동, 망원동 건물과 단독·다가구주택 가격은 급등했다. 경의선 숲길 인근 연남동 소재 한 다가구주택은 연면적 223㎡ 지상 3층 규모로 1998년 지어져 2012년 8억원에 손바뀜된 뒤 올해 5월 25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아현뉴타운·상암택지개발로 천지개벽
서쪽에선 개발시대 이후 뜸했던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됐다. 서울에서 최대 기피지역으로 꼽히던 난지도는 1993년 쓰레기 매립장이 완전 폐쇄된 후 2002년 한·일 월드컵 직전 생태공원으로 개장했다. 근처 시유지에는 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섰으며 1997년 택지지구로 지정된 상암 택지개발지구에는 ‘월드컵파크’ 아파트 단지와 ‘디지털미디어시티(DMC)’가 조성됐다. DMC에는 MBC, SBS, JTBC 같은 유명 방송사와 삼성SDS, 우리은행 등 대기업 데이터센터도 자리하게 됐다. 덕분에 마포에는 고급 일자리가 늘게 됐다.
그리고 마포 위상의 정점을 찍은 곳은 아현뉴타운이다. 아현재정비촉진지구는 전체 76만여 ㎡ 규모로 마포 핵심입지인 공덕과 아현, 염리동 일대에 2003년 지정됐다. 당시 정부와 서울시는 노후 주거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심화하던 강남권과 비(非)강남권 지역 간 격차를 줄이는 방편으로 시내 곳곳에 뉴타운을 지정했다. 마포 아현뉴타운은 입지에 힘입어 용산구 한남뉴타운, 서대문구 북아현뉴타운, 성동구 왕십리뉴타운과 함께 강북 뉴타운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
재개발, 재건축 특성상 아현뉴타운 사업은 상암택지지구보다 더뎠다. 그런데 최대어인 ‘마포 래미안푸르지오’(아현3구역)가 입주하던 2014년 마침 서울 부동산이 상승기를 타기 시작했다. 새로운 상승기의 주거 트렌드는 신축 대단지, 한강변, 역세권, 직주근접이었다. 서초구 반포동 새 아파트 시세를 3.3㎡당 1억원으로 끌어올린 주거 트렌드는 강북 한강변인 ‘마용성(마포·용산·성동)’과 동작구 흑석동의 위상도 끌어올렸다.
특히 아현뉴타운은 한강변 라이벌인 용산, 성동은 물론 마포대교 넘어 여의도에서도 충족하지 못한 신규주택 물량을 시장에 내놓으며 주택 소비자들 마음을 사로잡았다. 2023년 기준 마포구 소재 공동주택은 총 226단지, 7만5114가구로 용산구(3만3919가구)의 두 배가 넘고 성동구(6만5306가구)보다 2만여 가구 많다. 이 중 연식이 5년 미만 된 신축은 17개 단지, 9032가구다. 이 역시 용산(4181가구), 성동(2079가구)은 물론 북아현뉴타운이 위치한 서대문구(8428가구) 보다 많다. 새 아파트의 공급은 마포 아파트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주 수요층은 소득과 대출한도가 높은 여의도, 강북 등지의 젊은 고소득 맞벌이 부부들이었다. 대중교통이나 도보를 이용해 빠르게 직장으로 출퇴근할 수 있어야 아이를 돌보기 편하기 때문이다. 이들 실수요가 지난 상승기 마포 신축 아파트 시세를 3.3㎡당 5000만원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대흥동에는 사교육 수요를 채우기 위한 학원가도 생겼다.
도화동에 거주하는 한 직장인은 “동네에 여의도, 강북, 상암 등으로 출퇴근 하는 맞벌이 부부가 많은 것은 사실”이라며 “배우자와 맞벌이를 해서 서울에 거주해야 하는 삼성전자 직원들도 인근에 출퇴근 셔틀버스가 정차해 동마포 인근에 많이 거주한다”고 말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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