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EU 환경·인권 규제는 위기이자 기회

여론독자부 2024. 6. 17.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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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KOTRA 유럽지역본부장
공급망 전반에 실사 의무화 눈앞
ESG·순환경제 규정도 속속 강화
선제 대비땐 유럽기업과 거래 유리
EU정책 파악·대책 마련 서둘러야
[서울경제]

유럽연합(EU)은 산업 전반에 걸쳐 지속 가능 경제 체계를 실현하기 위해 환경·인권 정책을 선도해 가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EU의 정책 동향 파악과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할 이유다.

EU는 기업 생산 활동의 공급망 전반에 걸쳐 환경과 인권 관련 실사를 의무화하는 공급망실사지침(CSDDD)의 입법 절차를 마쳐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각 회원국은 2년 이내에 국내법을 제정해야 하며 2027년부터 매출액과 직원 수 등 기업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실사 대상 기업의 공급망 체계 안에 있는 기업도 준수 의무가 생길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또 산림전용방지규정(EUDR)이 올 12월 30일부터 기업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적용돼 산림 벌채로 생산된 제품의 판매와 수출입이 금지된다. 2021년 이후 생산된 소·대두·코코아·커피·고무·팜유·목재 등 7개 품목과 파생상품에 적용된다. 외국의 원재료를 사용해 생산되는 제품도 해당돼 대유럽 수출기업들은 유념해야 한다.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강화를 위한 지속 가능성 보고지침(CSRD)도 시행된다. 비재무 정보 보고 지침의 공시 정보에 인권과 환경 요건을 강화한 것으로 직원 수, 매출액, 총자산 규모와 조건에 따라 2025년부터 전년도 활동에 대해 공시해야 한다. 역외기업용 보고 표준의 채택은 당초보다 2년 늦은 2026년 6월까지로 지연됐으나 2028년부터 적용되는 공시 일정은 늦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역외기업들이 준비하는 데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

아울러 제품의 순환경제를 위해 지속 가능성을 강화하는 규정들이 제정되고 있다. 에코디자인 규정은 기업이 제품의 설계 단계부터 전 주기에 걸쳐 내구성, 수리 가능성, 재활용 용이성 등 지속 가능성에 관련된 사항을 포장·라벨·웹사이트 등에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포장 및 포장재 폐기물 규정은 불필요한 포장재 사용 감축과 재활용 원료 사용 의무화 등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이 기업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규제들이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지속 가능 경제 질서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기업 생존과 직결될 것이다. EU 기업들은 규제에 맞춰 선제적으로 때로는 더 강한 수준으로 지속 가능 경영을 확대하는 추세다. 제조 공정에서 사용하는 자원과 플라스틱 포장의 100%를 재활용하거나 재생에너지를 통한 그린팩토리를 추진하기도 한다. 협력사들에 ESG를 요구하는 사례도 확대되고 있다. 자동차 등 주요 제조 업체들은 협력사 선정 시 ESG 기준을 평가하며 공급 업체들의 인권·안전 등 비즈니스 위험도를 평가하고 계약 시 윤리강령 준수 의무를 포함시키는 기업들도 있다.

유럽의 소비자들은 기후변화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정부와 기업에 더 높은 수준의 ESG를 요구하고 있다. 소비자 자신들도 지속 가능성과 환경적 영향을 제품 구매의 주요 결정 요인으로 보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구매 시 재생 가능 소재 제품과 사회적·환경적 책임을 수행하는 브랜드를 우선 고려하고 있으며 비용을 더 내고서라도 지속 가능한 소비를 하겠다는 비율이 76%가 넘었다.

EU가 요구하는 환경·인권 기준을 따라가기 위해 기업들은 인력 보충 등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 기업은 직접적으로 실사나 공시 대상 기업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유럽 기업 또는 유럽과 거래하는 다른 기업의 공급망 가치사슬에 들어가면 고객사로부터 EU 기준이 요구하는 정보를 요청받을 수 있기 때문에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규제 강화가 오히려 우리 기업이 유럽 시장 진출 시 환경·인권 침해 리스크가 높은 다른 국가 대비 우위를 점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변화하는 시장 규칙에 대응하는 기업들이 기회를 잡을 것이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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