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폭행 검사이자 현 인권위원…김용원은 누구인가
1990년 룸카페 폭력사건 등 그밖에 가려져 온 과거
반인권 대명사 된 인권위원 ‘김용원스러움’의 기원은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신청인을 음해하기 위해 거의 실성하다시피 한 위 사람들이 지어낸 위와 같은 허위사실들이 반복적으로 보도됨으로써 신청인은 일반 국민들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언동을 하는 사람으로 비치게 됨으로써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명예훼손을 당하였습니다.”
지난 4월26일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상임위원은 한겨레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와 1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언론조정신청서를 내며 ‘신청 이유’로 이런 내용을 적었다. 신청서에 언급된 ‘실성하다시피 한 위 사람들’이란 인권위 송두환 위원장과 김수정·원민경 위원, 박진 사무총장을 가리킨다. 이들과 코드가 잘 맞는 한겨레 기자가 한패가 되어 허위보도를 했다는 취지다.
언론중재위 낸 문서에 “실성하다시피…”
이는 김 위원이 침해구제제1위원회(침해1소위)에서 스스로 해석한 의결 방식에 따라 진정 안건을 무더기 기각했다는 언론 보도를 문제 삼은 것인데, 김 위원은 늘 이런 식이다. 그동안 인권위 전원위원회와 상임위원회에서 무례와 폭언을 예사로 써온 그는 놀랍게도 공식 문서에까지 ‘실성하다시피 했다’라는 모욕과 비하의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13일 상임위원회에서는 기자와 방청객들을 회의장에 못 들어오게 하자며 “기레기들이 들어와서 방청하고 쓰레기 기사를 써왔다. 인권 장사치들도 회의 내용을 왜곡한다”는 발언을 했다. 정보공개청구 1·2심 소송기록 일체를 안 내놓는다며 인권위 담당 간부를 윽박지르고 다그쳐 결국 병가를 내게 하기도 했다.
인권수호의 보루인 인권위에서 차관급 공직자 대우를 받는 상임위원이자 군인권보호관인 그는 어쩌다가 이렇게 반인권적 언동의 대명사가 됐을까. 김 위원이 지난해 2월 후보추천위원회를 거쳐 대통령 지명으로 임명되었을 때만 해도 은근히 기대가 있었다. 1987년 부산 최대 부랑아 수용시설 형제복지원 울주작업장을 수사한 검사 출신이라는 명성에 다들 주목했다. 당시 평검사로서 대통령 전두환과 부산지검장 박희태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 있게 수용시설 인권문제를 들춰냈다고 보았다. 정치적 위치를 떠나 보편적 인권옹호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기자엔 쓰레기, 인권단체엔 장사치
최근 김용원 위원이 쏟아내는 말 폭탄의 강도가 더 세지면서 ‘김용원스럽다’는 신조어가 나올 판이다. 한겨레가 10회가 넘는 전원위와 상임위 회의를 지켜본 바에 따르면, ‘김용원스러움’이란 상호소통이 어려울 지경으로 습관화된 고약한 말법과 상대에 대한 하대로 요약된다. 특히 여성과 나이 어린 사람 앞에서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 기원을 따지며 새삼 그의 과거를 폭넓게 조명하려는 이들도 있다. 익히 알려진 ‘형제복지원 수사 검사’에 가려진 다른 모습 말이다.
10일 밤 11시30분께 부산 남구 광안2동 198 초록카페(주인 이윤복·37)에서 술을 마시던 부산지검 박휴상 부장검사 등 검사 4명이 퇴폐영업 단속을 나온 경찰관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며 폭언과 폭행을 해 말썽을 빚고 있다.
이날 단속을 벌였던 부산시경 특수기동대 최대윤(34) 경장 등에 따르면 “밀실을 만들어 놓고 여종업원들에게 음란 퇴폐행위를 조장하고 수배된 폭력배가 출입한다”는 전화제보를 받고 출동, 조사를 하던 중 술을 마시고 있던 김용원 검사가 신분증 제시를 요구해와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일행인 이상민 검사가 단속반인 황성철(27) 순경의 목 부분을 때렸다는 것이다.(중략)
이에 대해 김 검사는 “룸에서 술을 마시던 중 10여명이 텔레비전 카메라를 앞세우고 들어와 ‘누구냐’고 물으니 먼저 욕을 해 이를 따지고 난 뒤 술집을 나가면서 욕을 한 경찰관의 목덜미를 쳤을 뿐 공무집행을 방해한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다. (한겨레 1990년 1월12일)
1990년 룸카페 사건은 한겨레뿐 아니라 한국방송, 국민일보, 동아일보도 잇따라 보도했다. 김 위원이 1987년 전반기 형제복지원 수사를 하다가 그해 미국 미시간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였다. 한국방송에 따르면, 그는 룸카페 단속 현장에 나온 순경을 폭행해 경고를 받은 뒤 검사 옷을 벗었다. 변호사로 변신한 뒤엔 1993년 ‘브레이크 없는 벤츠’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해 화제를 뿌렸다. 검찰의 부조리와 검찰권 남용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이 책에서 1990년 룸카페 폭행사건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보복·함정 수사 의혹도 받아
한국방송은 1993년 9월3일 저녁 9시 뉴스에서 “김씨가 술을 마시다가 단속 나온 경찰관을 폭행한 사건을 (책에서) 회고하면서 당시 이를 취재한 한국방송 기자를 파렴치한 사이비 기자로 매도하고 있어서 기자협회 등에서 공개사과 촉구 성명을 잇달아 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를 취재한 한국방송 기자’는 강아무개 기자로 몇 개월 뒤 다른 폭행과 금품 수수 사건에 연루돼 검찰에 구속됐다. 하지만 당시 강 기자가 보복·함정 수사에 걸린 것이라는 의혹이 일었고, ‘보복·함정 수사를 한 것’으로 의심받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 김용원 검사였다. 당시 기자의 변호인은 문재인 변호사였다. 한국방송은 또 그가 룸카페 폭행 사실도 부인했다면서 “단속 현장에서 목덜미를 맞은 황성철 순경은 일기장에서 김씨에게 맞았던 당시의 심경을 분명히 적고 있다”고 했다.
이후 변호사 김용원은 정치를 열망한다. 만 41살 되던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부산 영도구에 출마해 김형오 의원과 붙지만 20.15%를 얻고 낙선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여야 공천에 탈락한 중진급 정치인들이 대거 탈당해 창당한 민주국민당에 적을 두고 다시 부산 영도구에서 김형오 의원과 대결했으나 16.86%를 얻는 데 그쳤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새누리당(현 국민의힘)과 민주당, 무소속을 오가며 출마의 기회를 엿보지만 번번이 경선에 떨어지거나 선거에서 패배했다.
“할복하라”며 장관에게 65cm 일본도 보내
그의 정치적 열망은 도를 넘은 행위로도 이어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2000년 선거 출마를 노리던 김용원 변호사는 1999년 3월 김선길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한일어업협상 실패의 책임을 지고 할복자살할 것을 권유하는 편지와 함께 길이 65㎝짜리 일본도를 우편으로 보냈다. 아무리 선거를 앞두고 이름을 알리기 위한 정치적 퍼포먼스라고 해도 섬뜩한 일이었다.
아르바이트 대학생 10명에게 일당을 주고 구청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 경쟁자였던 김형오 의원의 금품수수설을 부각하는 전화설문조사를 시키다 발각된 것도 이즈음이다. 남의 회사 명의를 도용해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설문조사를 했다며 현대리서치연구소라는 여론조사기관으로부터 고소도 당한다.
2000~2002년엔 변호사로서 당시 부산에서 불거진 안상영 부산시장의 성추문 의혹과 관련해 피해 여직원의 남편과 법적 대응을 협의하는데, 나중엔 그 남편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고 부산일보가 보도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이혼소송과 관련, 재산실태 파악을 위해 은행계좌에 대한 사실조회를 법원에 신청하면서 해당 소송과는 무관한 그 남편의 예금 계좌 조회 신청도 포함해 편법으로 사실확인을 해서다. 나중에 무죄를 선고받기는 했으나 법조계로부터 현직 변호사가 소송과 관련 없는 개인 계좌내역을 파악한 일은 부도덕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과연 인권위원장 자리까지 욕심낼까
그는 갑자기 변한 게 아니었다. ‘형제복지원 수사 검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첫 사례가 1990년 룸카페 사건이었고 수시로 정치적 입신을 도모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 이제 그가 안착한 곳은 검사 후배 윤석열 대통령이 마련해준 인권위의 차관급 자리였다. 2024년 22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도 저울질했지만 결국 접었다. 다음 관전포인트는 그가 오는 8월 송두환 위원장의 퇴임으로 자리가 비는 장관급 인권위원장 자리에 도전할 지다.
1987년 1월17일 검사 김용원은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 등 운영진 6명을 구속했다. 대통령 전두환이 박인근 원장의 석방을 지시하지만 김 검사는 수사를 본격화해 6월9일 박인근에게 징역 15년, 벌금 6억8178만 원을 비롯하여 모든 피고인에게 중형을 구형했다. “우연히 강제노역 장면을 목격한 젊은 검사의 똘기였을 뿐이다”, “바로 미국 유학을 가며 내뺐다”는 폄하도 있지만 형제복지원 수사가 한국 인권사에 남긴 발자국은 분명히 인정할 만 한다.
그러나 이미 37년 전 일이다. ‘형제복지원 수사 검사’는 오래 전에 빛을 잃었다. 2024년 이 순간의 인권상황에서 김용원 상임위원이 권한을 행사하는 인권위는 군사망사건 피해자 유족을 비롯한 진정인들에게 너무 치명적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내일 제주부터 ‘최대 200㎜’ 초강력 장마…내륙은 35도 ‘불더위’
- 동네병원 휴진…“원장님 ‘치과 가서’ ‘학회 가서’ 쉽니다”
- 북한군 20~30명 군사분계선 또 넘어와…경고사격에 북상
- 국회 안 나오고 버티는 국토장관…청문회 증인으로 불러낸다
- 경북도청에 10억짜리 박정희 동상…생일 맞춰 10m 높이 추진
- 라인야후 ‘탈네이버’ 가속화…“올해 안에 시스템 분리”
- 권익위 답 할까…“여사께 300만원 엿 선물 괜찮나요”
- 최태원·노소영 재판부 “판결문 수정해도 재산분할 비율 불변”
- [단독] 도이치 재판대 세워진 ‘김건희 동일 혐의’…기소 요구 힘 받는다
- [단독] 백종원 믿고 계약했더니…“본사 매출 45% 늘 때 점주 40% 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