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오래된 공공성’의 운명은?
정체성 상실·‘사유화’걱정…대화·설명·대안·토론 필요
구덕운동장은 한 번도 공공의 자산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일제강점기 1928년 문을 열었을 때 이름이 부산공설(公設)운동장이다. 이 도시 시민은 구덕운동장 품에서 함께 자랐다. 구덕운동장 터는 풍수·교통 면에서도 뛰어나 한때 이 운동장 주위로 각급 학교가 즐비하게 포진했다. 이 ‘오래된 공공성’은 구덕운동장 정체성의 핵심을 이룬다.
오래된 공공성에는 문화적 가치가 깃든다. 조선 궁궐이나 옛 동양척식회사부산지점·부산미문화원(지금의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을 보존한 원리·이유가 거기서 나왔다. 유엔이 세계유산을 지정하는 근거도 여기 있다. 개발·발전 관점에서 오래된 공공성에 깃드는 문화 가치를 폄하하거나 싫어하는 경우를 꽤 봤다. 그분들 시선을 인정한다. 하지만 오래된 공공성에서 문화 가치가 깃드는 건 필연이다.
대도시 부산 역사의 특징을 문화 관점에서 보면 한 가지 흐름이 손에 잡힌다. 공공적 가치를 지닌 자산이 곧잘 사유화된다. 부산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후쿠오카의 하카다항으로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보이는 뭍의 풍경은 ‘국영(國營)’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이다. 하카다항에서 배로 부산항에 들어올 때 먼저 보는 부산 뭍의 풍경은 오륙도 SK뷰 아파트다. 둘 다 해안 절경을 품은 자리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엘시티도 저런 식으로 해운대에 들어설 거라고 미리 상상한 사람이 몇이나 됐겠는가.
부산에서 공공 가치를 잘 지켜낸 사례도 꽤 있고, 나름대로 신중히 과정을 밟아 설득력 있는 결과를 도출한 경우도 늘었다. 또한 좋은 가치를 지닌 자원을 민간이 획득해 개발함으로써 지역과 경제가 발전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문화 또는 정치 관점에서는 이 문제를 훨씬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대중이 매우 민감하게 여기는 주제이고 상징적 파괴력이 크기 때문이다.
시민이 볼 때 분명 공공 가치가 큰 자산인데, 이걸 민간 업자가 획득해 거기서 나오는 이익을 차지하게 해주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됐다고 치자. 시민은 이런 주제에 정서적으로 반응한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는 뜻이다. “역시, 시는(시장은) 우리 같은 시민(서민)의 편이 아니었어. 결국, 돈 많고 영향력이 큰 부자나 업자 편이야.” 이걸 한 방 맞으면 내상이 오래 간다.
구덕운동장을 재개발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시의 계획에 지역 주민은 반대하고 나섰다. 핵심은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업부지 3분의 1 면적에 49층짜리 아파트 4개 동(850세대)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축구전용구장 등 공공시설도 함께 짓는다. 주민 주장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이 정도 규모 아파트가 들어오면 구덕운동장 재개발의 공공적 가치는 줄고 그마저 소수가 사유화한다’.
공공 가치가 높은 자산이 사실상 사유화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은 근거가 있다. 불편의 종류·원인·크기 등은 따지지 않고 무작정 제기하는 민원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세태를 보면 충분히 그렇게 짐작할 수 있다. 문화 관점에서 살필 사안은 또 하나 있다. 공공의 복리를 주장하는 공적 담론이 패배하면 시민 사이에 열패감이 생긴다. 여기서 열패감은 공익을 시민이 창의적인 방식으로 함께 해결했을 때 오는 성취감과 반대 개념이다. ‘역시, 우리는 안 돼. 결국, 부산은 문화적으로 아직 멀었어’. 이런 감정 말이다. 그런 도시는 활력이 떨어진다.
지금 계획대로 생활체육공원은 없애고 49층짜리 아파트 4개 동 건립을 ‘역사상 단 한 번도 공공의 자산이 아니었던 적이 없는’ 구덕운동장의 재개발의 핵심으로 진행해야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재개발에 필요한 비용을 확보할 길은 열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동시에 저 정도 규모 아파트가 들어가면 그 일대는 사실상 사유화된다는 주장도 합리적 근거가 있다. 부산시의 진의가 어떠하든, 적잖은 시민은 이런 열패감을 느낄 것이다. ‘오래된 공공성에 깃든 문화 가치는 한 번 지워지면 회복할 수 없는데, 역시 우리는 안 되는 건가, 왜 이익을 소수가 가져가야 하나…’.
한때 부산 중구 상인들은 옛 부산미문화원 건물을 철거하고 쇼핑센터를 짓자고 강력히 주장하며 노력했다. 부산시는 공적 가치에 주목해 그 옛 건물을 지켜냈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이 건물은 부산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됐다. 결국, 그 곁의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까지 보존하게 됐고 그 둘을 합쳐 부산근현대역사관이 탄생했다. 요즘 남포·광복동 상황을 참고하면, 거기 쇼핑센터를 지었다면 망했을 것 같다. 비슷한 사례를 더 찾을 수 있다.
알맞은 개발이 있어야 도시에는 활력이 돌 터이다. 그러니 이 사안과 관련해 서로 결을 달리하는 다르고 다양한 의견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좀 더 넓게 이야기도 들어보고, 설명도 하고, 대안도 내고, 토론도 해보는 접근법을 꿈꿔본다.
조봉권 부국장 겸 문화라이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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