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모든 것을 바꾸는 아름다움의 힘
얼마 전 악몽을 꿨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하루였는데, 해질녘 고요하던 동네 어딘가에서 낯선 소리가 들렸다. 밖을 내다봤지만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없었고, 그래서 더 불안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총소리 같았다. ‘전쟁이 났나?’ 생각하던 찰나 저 멀리서 군인 몇 명이 총을 쏘는 모습이 보인다. “진짜 전쟁이 났어!”라고 말하는 순간 잠에서 깼다. 잠들기 전 북한에서 보낸 오물 풍선을 조심하라는 안내 문자를 보고 잔 탓이었다. 꿈이었지만 얼마든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깨고 나서도 한동안 두려운 감정에 휩싸였다.
나 혼자만 이런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있다. 북한과 대치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잊고 지내던 그 사실이 피부에 너무나 절실하게 와 닿는다. 이런 상황에서 오물 풍선에 대한 대응으로 대북 방송을 재개한다는 뉴스를 보면 불안함은 몇 배로 증가한다. 그 와중에 군대에서 발생하는 참담한 사고들로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도대체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불안하고 위험한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평화란 무엇일까? 지금 우리 사회도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평화롭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어떻게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잠재된 위험 속에 산다는 것은 정말이지 위태롭다. 어떻게 하면 평화를 지켜낼 수 있을까? 여기 비슷한 고민을 한 인류학자가 있다. ‘비바레리뇽 고원-선함의 뿌리를 찾아서’를 쓴 매기 팩슨이다. 그녀는 군사의 수, 폭탄의 위력 등 수치화할 수 있는 폭력에 비해 평화는 그렇지 못해서, 제대로 연구되지 않고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평화의 실재를 찾고자 여정을 떠나는 과정에서 비바레리뇽 고원을 알게 된다. 비바레리뇽은 프랑스 중남부에 있는 작은 고원인데, 이곳 주민 대부분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게 쫓기는 사람들을 숨겨주고 먹여주고 교육도 시키며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나치에 대항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실제로 처벌을 받거나 목숨을 빼앗기기까지 했는데 비바레리뇽 고원 사람들은 대체 왜 그런 일을 스스로 했을까?
매기 팩슨은 기록과 기억을 추적하며 선함의 뿌리에 대해서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500쪽이 넘는 그녀의 저서에는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이 자세하게 쓰여 있는데, 그들과의 만남에서 그녀가 얻게 된 진실 하나는 바로 이것, “아름다운 것들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우선 비바레리뇽 고원은 ‘환희를 선사’할 만큼 아름다운 공간이다. 저자는 자신이 사회과학자이지만, 자연이 아름다운 곳에서는 도덕적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물론 이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이곳 사람들은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신념을 지킨 대표적인 인물이 다니엘 트로크메라는 사람인데,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돌보는 보호소를 운영한 그는 매일 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그는 아무리 버려진 아이라고 할지라도, 세상에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도 세상이 친절하기를 바라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 믿음은 효과가 있었고, 보호소에서 공부하며 자란 아이들은 자기들의 목표를 ‘모두를 위해 행동하라’로 정했다.
전쟁을 막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지 안다. 낭만적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간디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비폭력 불복종’을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환희, 친절한 인간에 대한 선망, 온전한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평화를 실재하게 한다. 비바레리뇽 고원은 그 증거일 것이다. 비록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선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나와 나를 둘러싼 많은 것을 지켜낼 것이다. 그러므로 평화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아름답고 당연한 일상을 지키고 싶은, 강렬하고 강력한 삶의 의지라는 것을 잊지 않겠다. 매기 팩슨이 여정을 통해 얻은 진실처럼 아름다움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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