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을 일본 기계로 만다고? 한국형 김밥 기계에 올인한 이 남자
버튼만 누르면 흰 실리콘 벨트 위에 가로∙세로 18㎝ 크기, 5㎜ 두께로 흰밥이 펼쳐진다. 사람이 단무지, 당근, 우엉 같은 속재료를 올린 뒤, 다시 버튼을 누르면 김밥을 한 줄 말아준다. 걸린 시간은 불과 30초 남짓. 김밥 절단기에 옮기면 5초 만에 10여 조각으로 썰어주기까지 한다.
김칠현(66) 럭키엔지니어링 대표는 1992년부터 이렇게 김밥∙초밥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기계를 제작하고 있다. 그는 지난 11일 ‘서울푸드 전시회’에서 만난 기자에게 “처음 김밥∙초밥 기계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하니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겠냐’고 비하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꾸준히 기술을 개발해왔다”고 말했다. 현재 김 대표 회사의 기계는 국내에서만 힐튼∙김가네∙고봉민김밥 등 21개 업체에 납품될 뿐 아니라, 이마트 전 매장을 비롯한 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 마트 400여 매장에서 초밥을 만들고 있다.
◇공기업 그만두고 사업… 유명 호텔에 ‘퇴짜’도
그는 대구공고 기계과와 영남대 무역학과 졸업 후 1985년부터 텅스텐 생산 공기업 ‘대한중석’에 다녔다. 당시 대학생 사이에선 ‘선경∙코오롱이냐 대한중석이냐’고 할 만큼 선망받던 기업이었다. 5년쯤 다녔을 무렵 한 거래처 직원이 “미국에서 공작기계를 수입해오는 사업을 해보자”는 제안서를 내밀었고, 그는 용감하게 사표를 던졌다고 한다. 하지만 공기업 간판도 없는 사업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결국 1년 만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는 “백수가 된 1년 동안 집중력 향상기기 같은 유망 업종 5~6곳에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었지만 전부 쫄딱 망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그는 34세였던 1992년, “일본산 김밥 기계로 한국 김밥을 만들면 옆구리가 터지기 일쑤”라는 말을 듣고 ‘김밥은 한국 기계로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한국형 김밥 기계’ 사업을 떠올렸다. 3년간 한 번에 쌀을 10㎏씩 버려가며 연구했지만 ‘사람이 만든 게 품질이 낫다’는 혹평까지 들었다. 1500만원짜리 기계는 매년 7~8대밖에 못 팔았고, 출시 직후 서울 한 유명 호텔의 납품 제안을 받긴 했지만 “김밥은 손맛이 기술인데 기계로 만들 생각은 하지 말라”고 퇴짜를 맞았다. 그는 “첫 7년 동안은 아내가 십자수를 팔아 부업을 할 만큼 근근이 살았다”고 했다.
이런 김 대표에게 첫 기회가 찾아온 건 ‘대형 마트 전성시대’인 1999년. 초밥 같은 즉석식품 도시락이 마트에서 인기를 얻은 게 발판이었다. 수요가 높아지자 마트들은 초밥 기계를 찾아다녔고 김 대표가 선택을 받았다. 이마트 용산점 등 10여 곳에서 처음 시범 운영을 했고, 단숨에 연 매출은 10억원까지 뛰었다. 초밥 낱개 포장 기능을 탑재하고, 기계도 4분의 1 크기로 줄였다.
◇美 H마트 30곳 진출… 나고야 첫 대리점
2020년부터는 코트라의 지원으로 미국·일본 등 해외시장까지 세를 넓혔다. 북미 지역 유명 대형 마트인 H마트 약 30곳에 김밥 기계를 납품했고, 한식당을 하려는 현지인과 교포들 문의가 줄을 이었다. 한 일본인 주방장은 “내가 만든 김밥보다 낫다”고 했고, 일본의 한 유명 회전 초밥 업체는 “한국식 김밥을 만들고 싶다”며 구매에 나섰다. 일본 나고야에는 첫 대리점도 냈다.
그 덕에 김 대표 회사의 전체 매출은 2020년 52억4000만원에서 지난해 103억원이 돼 3년 만에 약 2배로 늘었다. 그중 수출액은 같은 기간 5억4000만원에서 18억원이 돼 약 3배로 증가했다. 올해 1~5월 수출액만 벌써 17억4000만원을 기록했다. 그는 “북미∙호주는 물론 폴란드∙불가리아∙멕시코에서도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며 “올 하반기에는 롤케이크∙케밥∙월남쌈 기계도 출시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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