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덕분에 美 무명용사도, 저도 집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美軍 유해 발굴하는 진주현과 크리스토퍼 배 하와이대 교수< strong>
호놀룰루 바닷가의 집 발코니를 거북, 말, 돼지 등 동물 뼈로 장식해 놓은 이 부부는, 인간을 가장 정확히 증언하는 열쇠가 ‘뼈’라고 믿는 인류학자다. 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만, 하는 일은 다르다. 남편은 수십만 년 전 인간의 뼈를 감식해 인류의 기원을 찾는 고고학자이고, 아내는 전쟁에서 실종된 군인의 유골을 찾아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한다.
남편 또한 아내를 만나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입양아 출신인 크리스토퍼 배 하와이대 교수와 미 국방부 전쟁 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에서 일하는 진주현 박사 이야기다. 마침 서울에 온 부부를 지난 현충일에 만났다.
◇무명용사의 이름 밝혀주는 女人
-DPAA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실종된 미군 8만3000명의 유해를 발굴해 신원을 확인한 뒤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한다. 나는 13년동안 한국전을 총괄해 오다 지난해부터 제2차 대전, 베트남 전쟁까지 아우르는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
-2010년부터 일했더라.
“하와이대 교수로 임용된 남편을 따라 호놀룰루로 왔는데 마침 하와이에 본부를 둔 DPAA에서 ‘한국전 프로젝트’ 담당자를 구하고 있었다. 한국어, 영어를 할 줄 알고 뼈에 대해서도 아니까 채용된 것 같다.”
-그동안 한국전에서 실종된 미군 중 500여명의 신원을 확인해 가족 품으로 돌려보냈다.
“한국전 미군 전사자는 3만6000명이고, 그중 실종자가 현재 7600명 정도 남아 있다. 대부분 18~23세 젊은 군인들로,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나라 ‘코리아’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의 유해를 찾아 집으로 보내는 일이 운명적으로 느껴졌다.”
-조부모가 6·25 때 이북에서 온 피란민이라던데.
“평안도가 고향으로, 흥남 부두에서 미 군함을 타고 내려오셨다. 피란민들과 함께 동대문에서 옷감 장사 하며 자식들 키워낸 할아버지는 현재 96세로 건강하게 살아 계신데, 그들을 지키러 왔다가 전사한 군인들은 유해로 돌아와 내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늘 가슴 아팠다.”
-2018년 북한에 들어가 미군 유해 상자 55개를 직접 받아왔다고 하더라.
“트럼프·김정은 회담 성사로 미 군용기를 타고 원산으로 날아가 유해를 확인한 뒤 하와이로 모셨다. 대부분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군인으로, 상자 55개에 250명의 유해가 들어 있었다. 그중 100여 명은 카투사로 참전한 한국군이었다. 2021년 문재인 대통령이 하와이로 와서 1호기에 태워 모시고 갔는데, 그중 신원이 확인된 분의 증손녀가 간호 장교가 되어 증조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단 한 명의 전사자를 찾을 때까지
-신원 확인하는 일이 쉽지 않다던데, 어떤 방법으로 유해를 감식하나.
“함께 발굴된 유품을 비롯해 DNA(유전자), 치아 기록, 흉부 엑스레이 사진 등을 총동원한다. 미국이 대단한 나라라고 느끼는 대목이, 군인들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정말 잘 갖춰 놨다는 점이다. 1940년대부터 전쟁에 나간 군인들의 치아 기록과 흉부 엑스레이, 그리고 ‘모닝 리포트’라고 부르는 전사 기록이 그대로 보존돼 있고, 최근 이걸 다 디지털화해 놨다. 한국전 참전 군인 유가족의 유전자도 90% 확보해놨다.”
-유해를 찾은 가족은 많이 울겠다.
“한번은 나이 많은 여자분이 유해를 보기 전 ‘잠시만요’ 하더니 머리를 매만졌다. ‘여러분은 이해 못 하겠지만 나는 오늘 우리 아버지를 처음 보는 거예요’라면서. 그리고 어머니 지갑에 꽂혀 있었다던 사진을 꺼내더라. 반으로 찢어진 사진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유해에서 나머지 반쪽 사진이 나왔다.”
-미 정부가 실종 소식을 각 가정에 전달할 때 아들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한다던데.
“한번은 어느 유해의 신원을 5명으로 추린 적이 있는데 도무지 결정적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감식 리포트에 ‘어릴 때 팔뼈가 부러졌다가 붙은 자국, 그리고 허리를 다친 흔적이 있다’고 적혀 있더라. 그래서 5명의 개인 기록을 다시 찾아 읽어보니, 1954년 한 어머니가 쓴 편지에 아들이 여덟 살 때 팔이 부러지고 열 몇 살에 허리를 다친 적이 있다고 답장한 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찾았다!’를 외쳤다.”
-발굴에서 감식, 송환까지 극한 직업이라던데 그만두고 싶을 때는 없었는지.
“베트남 정글에서 40일간 텐트 치고 작업할 때 너무 힘들어서 미국에 돌아가면 그만두고 말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지금도 일하고 있다(웃음). 우리 사무실 벽에 거대한 포스터가 걸려 있다. 내가 집으로 돌려보낸 500여 군인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붙여 놓은 것인데,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청년들을 보면 다시 일해야겠다는 의욕이 솟는다.”
◇ 입양아 출신 고고인류학자
-크리스토퍼 배 박사는 고인류학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논문을 여럿 발표했더라. 현생 인류의 조상이 12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넘어왔다는 내용의 논문으로도 주목받았다.
“2017년 12월 ‘사이언스’에 실은 논문이다. 현생 인류가 아시아에 넘어온 시점이 6만년 전이라는 게 정설이었는데, 그 시점을 두 배 뒤로 물린 것이라 주목받았다.”
-2021년엔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인류종이 학계에 보고됐는데 크리스토퍼 배도 논문 저자 중 한 사람이었다.
“1976년 에티오피아의 계곡 보도다르에서 발견한 두개골 유적을 분석한 연구 결과였다. 이 두개골 주인에게 ‘호모 보도엔시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한국, 중국, 일본의 구석기 연구도 활발하던데.
“한반도 현생 인류의 이동 경로를 연구하기 위해 구석기, 신석기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발굴 작업을 했다. 요즘은 중국에 자주 가는데 언젠가 꼭 북한에 들어가 구석기 유적지를 발굴해 보고 싶다. 한국인의 뿌리를 찾는 데 조사 가치가 굉장히 큰 미개척지다.”
-고인류학에 대한 관심은 입양아였던 자신의 뿌리 찾기와도 관련 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파편을 찾아 과거를 재구성해 나가는 인류학이 나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져 좋았다. 나는 생후 1년 된 시점에 서울 용산에서 발견됐다는데, 그렇다면 최소 1년은 엄마가 나를 키웠다는 뜻이다. 잃어버린 그 1년(missing one year)을 찾고 싶다.”
-뉴욕의 백인 가정으로 입양됐지만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다고 들었다.
“친아들이 태어나자 나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집에서 쫓겨났고, 혁대로 맞기도 했다. 집세도 내라고 해서 중학생 때부터 햄버거 가게 주방 보조 등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덕분에 생활력이 강해져 대학 등록금을 스스로 벌 수 있었지만(웃음).”
-공부할 시간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대학에 갔나?
“트럭 운전수가 될 줄 알았는데 대학생이 됐다고 친구들이 놀라긴 한다(웃음). 공부는 안 했지만 성적은 잘 나와서, 내 삶에서 나를 한번 증명해 보고 싶었다. 스스로 번 학비가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공부했다.”
-연세대 교환학생으로 오면서 입양 20년만에 한국에 왔다던데.
“신촌 하숙집 형들이 변기에 쭈그리고 앉아 신문을 읽던 모습에 엄청 놀랐던 기억이 난다(웃음). 당시 고인류학 모임에서 만나 답사를 다녔던 학생들이 지금은 교수가 되어 함께 연구하고 술도 마신다.”
◇ “엄마는 항상 보고 싶죠”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나?
진: “중국 윈난성에서 박사 논문 자료를 수집하다 베이징으로 잠시 여행을 갔는데 중국 과학원 산하 고인류학 연구소의 한 교수님이 여기서 ‘포닥(박사 후 과정)’을 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이 있는데 한번 만나보라고 하더라. 그게 남편이었다.”
-첫눈에 끌린 건가?
진: “대뜸 100만년 된 말 뼈, 아니 말 발가락 뼈를 보여주더라. 거기 넘어간 것 같다, 하하!”
-서로의 일을 어떻게 평가하나.
배: “자랑스럽다. 미국도 양당이 치열하게 싸우지만 군인의 유해를 찾는 일은 당을 초월해 협력한다. 나라가 가장 숭고하게 여기는 가치를 아내는 멋지게 해내고 있다.”
진: “남편이 쓴 고인류학 분야 논문만 150편에 달한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눈만 뜨면 책상에 앉아 논문을 쓰니 아내로선 열받지만, 학자로선 훌륭한 것 같다. 얼마 전엔 ‘동아시아의 고인류학’이라는 책을 냈는데, ‘내가 가장 사랑하는 3명의 아시아인에게 바친다’고 썼더라. 나와 두 딸 리아, 인아다(웃음).”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하진 않았는지.
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엄마가 없는 사람이라고 믿는 부모님은 남편을 아들처럼 사랑해 주셨다. 상견례 때도 호텔에 묵는 남편을 위해 엄마가 도시락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주셨다.”
배: “한번은 추울 때 한국에 왔는데, 하와이에서 반바지를 입고 온 내게 아버님이 당신 바지를 벗어서 입혀 주시더라. 양부모에게선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이었다. 가족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다.”
-배는 장모님 성(姓)을 딴 거라고 하더라.
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양부모와 절연했다. 나와 우리 아이들이 한국인인데 양부모의 성을 더 이상 쓸 이유가 없었다. 장모님은 나를 아들처럼 사랑해주신 분이라 그 성을 물려받고 싶었다.”
진: “엄마가 환호성을 지르더라. ‘아버지, 넷째 딸인 내가 성을 물려줬어요’ 라면서, 하하!”
-두 딸은 엄마 아빠의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나?
진: “첫째 리아가 수업 시간에 ‘우리 엄마는 뼈를 모으는 사람’이라고 해서 연쇄 살인범으로 오해받을 뻔했다(웃음). 둘 다 바빠서 자유 방임으로 키우는데 남편이 나보다 더 심각한 방임이다. ‘나는 엄마 아빠 없이도 이만큼 살았는데 엄마 아빠가 다 있는 너희는 무슨 요구와 불평이 그리 많냐’며 혼을 낸다.”
-크리스토퍼는 오는 8월 하와이대 한국학 센터 소장으로 부임한다던데.
배: “입양아로 처음 한국학 센터 소장이 되는 거라 뜻깊다. 한국어 영역에 머물지 않고 중국학·일본학 센터와 연대해 한국학 연구의 폭을 넓혀갈 것이다. 입양도 한국학의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친어머니를 계속해서 찾고 있다고 들었다.
배: “나를 왜 버렸는지 물어보려고.”
진: “‘말을 안 들어서’ ‘시끄럽게 울어서’라고 하시면 어쩌지(웃음)?”
배: “그런 말이라도 듣고 싶다(웃음).”
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남편과 함께 봤는데, 엄마 없는 택(박보검)에게 누가 ‘엄마가 언제 보고 싶어?’라고 묻자 택이 말한다. ‘엄마는 항상 보고 싶죠.’ 남편이 울고 있더라.”
☞진주현·크리스토퍼 배
진주현: 1978년 서울 출생.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한 뒤, 미 스탠퍼드대에서 인류학 석사,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부터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 ‘뼈가 들려준 이야기’ ‘발굴하는 직업’을 펴냈다.
크리스토퍼 배: 1971년 서울 용산에서 발견돼 미국으로 입양됐다. 뉴욕주립대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뒤,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인류학 석사, 럿거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하와이대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오는 8월 하와이대 한국학센터 소장으로 부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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