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24] 청송
청송
병든 어머니 집에 두고 청송 갔다
점곡, 옥산, 길안 사과밭들 지나 청송 갔다
끝없이 떨어져 내리는 사과알들을
놓치기만 하며 푸르른 청송 갔다
주산지를 물으며 청송 갔다
주산지를 오래 걸으며 청송 갔다
한밤중 동해를 향해 폭우 속,
굽이굽이 태백산맥 넘어 청송 갔다
옛날 어머니 찾아 푸르른 청송 갔다
청송 지나 계속 눈 비비며 청송 갔다
-이영광(1965~)
이영광 시인은 최근에 펴낸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나는 내가 조금씩 사라져간다고 느끼지만 이 봄에도 어느 바람결에나 다시 살아나는 것들이 많다”고 썼다.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은 현재 시간일 테고, 다시 살아나는 것은 옛 시간일 테다. 그러므로 고성(古城)과도 같은 옛 시간 속에 있는 옛사람 생각이 난다는 뜻일 것이다. 비록 그리워해도 옛사람은 옛 시간 속에 살 수밖에 없겠지만.
시인은 병중(病中)인 어머니를 두고 청송엘 간다. 청송은 멀고 멀다. 험준하고 고불고불한 산고개를 넘고 넘어야 한다. 왜 청송엘 가려는 것일까. 청송이라는 지명에는 불로장생(不老長生)과 신선(神仙) 세계의 뜻이 들어 있다는데, 그런 이유에서 그럴까. 단서가 될 법한 시구는 “푸르른”과 “옛날 어머니 찾아”라고 쓴 대목일 텐데, 아마도 어머니의 옛 시간을 찾아 청송엘 간 것이 아닐까 한다. 탈이 없고 아프지 않았던 어머니를 찾아서, 사과 알처럼 앳되고 젊었던 어머니를 찾아서 간 것이 아닐까 한다. 낙과(落果)한 열매 같은, 병중의 어머니께 예전의 푸르른 시간을 찾아 드리고 싶었던 것일 테니 아, 이 시의 독후(讀後)에는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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