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의 곡선미를 보라”… 더러운 것의 아름다움 찾아내기[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변기 사진 촬영해 전시한 웨스턴
獨-佛-英美 변기 비교분석한 지제크
천함서 고매함 찾아낸 ‘진성 변태’… 정상성에 대한 사회 압력 벗어던져
변태성은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기본 욕구에서 드러나는 법. 그 점은 세계문학사상 최고의 변태로 알려진 사드(de Sade)의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외설과 방탕을 이유로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사드는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라는 외설과 방탕과 가학 행위의 끝판왕 같은 작품을 쓴다. 서두에서 “기묘한 환락의 향연”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선포한 뒤, 실제로 난교와 악덕과 오물과 배설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로 가득 채웠으니, 이 괴작을 널리 읽으라고 권장할 수 있을까.
예컨대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런던리뷰오브북스’에 기고한 글에서 서양의 변기를 섬세하게 비교한 적이 있다. “전통적인 독일 변기에서는 대변이 빠져나가는 구멍이 앞에 있기에, 볼일 보고 나서 자기 대변 냄새를 맡고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점검할 수 있다. 그러나 전형적인 프랑스 변기는 그 구멍이 뒤에 있어서 물을 내리자마자 그냥 휙 사라진다. 영미권 변기는 독일 변기와 프랑스 변기의 종합으로서 물이 찰랑찰랑 차 있고, 변을 보면 변이 거기 잠기게 된다. 따라서 자기 대변을 볼 수는 있으나 꼼꼼히 살펴볼 수는 없다. 이러한 변기 차이는 유용성이란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세 나라 특유의 이데올로기와 관련이 있다.” 지제크의 이러한 변태적(?) 장광설에 따르면, 독일 변기는 보수주의, 프랑스 변기는 급진주의, 영미권 변기는 자유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제크의 이 에세이가 변태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가 일견 비천해 보이는 변기로부터 일견 고매한 학술적 논의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로 읽는 것과 시각으로 보는 것은 엄연히 다른 법.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가 사드의 소설을 영화화한 ‘살로 소돔의 120일’을 보면서 그 점을 실감했다. 그 영화에서는 마지 부인이라는 인물이 등장해서 대변 먹기를 좋아한 변태 파시스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실제로 대변 먹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기괴한 장면으로 가득 찬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이 흥미로웠나. 아니, 그렇지 않았다. 사드의 소설보다 재미없었다. 뭔가 특이한 것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은 채웠을망정, 그런 장면들은 지속적인 흥미를 자아내지 않았다. 지루했다. 마치 인생처럼 지루했다.
변기에 관한 변태적 묘사로 치자면, 일본의 문인 다니자키 준이치로를 따를 사람이 없다. 장차 지제크보고 들으라는 듯이 그는 ‘무주공 비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대의 수세식 화장실 등은 청결하고 위생의 취지에는 부합하지만 누구보다 자기가 그것을 똑바로 보게 되므로 노골적이며, 다른 사람이 없을 때에도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버린 천박한 고안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무주공 비화’·민음사)
그러면 다니자키가 보기에 천박하지 않은 화장실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에 따르면 다이묘 집안에서 태어난 귀부인들은 자기 배설물을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 깊은 통로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볼일을 본 뒤, 죽은 뒤에는 그 통로를 막아버렸다. 14세기 중국의 예술가 예운림(倪雲林)의 화장실은 또 어떤가. 잔뜩 쌓아놓은 나방의 날개 위에 똥을 누었고, 그의 배설물은 나방 날개 위에 떨어지자마자 그 속으로 눈 녹듯이 사라졌다고 한다. 자기 똥이 묻힐 무덤을 만들기 위해 나방의 날개를 모으는 예운림이야말로 희대의 변태가 아니었을까. 이런 변태들은 지나친 사회적 정상성 압력을 잠시나마 완화시켜 준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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