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정치판 흔들더니 외교판까지…‘낙태권’ 놓고 프랑스·이탈리아 갈등 조짐

김덕식 기자(dskim2k@mk.co.kr) 2024. 6. 16.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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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멜로니 G7서 충돌
결국 공동성명에 표기 못해
브라질은 여성단체 시위격화
“낙태가 강간보다 중형될 판”
美대법 ‘낙태약 유지’ 판결에
바이든·트럼프도 예의주시
1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풀리아주 브린디시의 보르고 에냐치아 리조트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세계 정치판을 흔들고 있는 ‘낙태 논란’이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할 조짐이다. 지난 주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낙태권을 포함할 지 여부를 두고 입장 차가 커지면서다. 대선 핵심 이슈로 떠오른 미국과 관련법 개정안에 갈등이 격화되는 브라질까지, 지구촌 전역이 낙태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가 15일(현지시간) 폐막한 가운데, 이날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낙태권이 명시되지 않았다. 공동성명 중 성평등 분야에는 “우리는 포괄적인 성(性) 및 생식 건강과 모두를 위한 권리를 포함해 여성을 위한 적절하고 저렴하며 양질의 보건 서비스에 대한 보편적 접근에 대한 히로시마 정상 선언문의 약속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만 언급됐다.

지난해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의 공동성명에 있던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에 관한 접근성’이라는 문구가 빠진 것이다. 멜로니 총리의 강력한 반대로 ‘낙태’ 문구가 사라졌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1977년생 동갑내기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첫날 회의를 마친 뒤 낙태권 포함을 둘러싼 갈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멜로니 총리를 두고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프랑스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해지는 비전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모든 정치적 입장과 공유되고 있진 않다”고 밝혔다. 이어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자문하는 시점에 여성권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조기 총선을 다분히 의식한 발언이다.

멜로니 총리는 이에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G7 정상회의와 같은 소중한 자리를 이용해 선거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심히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정곡을 찔렀다. 폴리티코는 멜로니 총리가 공동성명에 문제의 문구 부분 삭제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멜로니 총리는 ‘기독교의 어머니’라고 자처하면서 낙태에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다.

마크롱 대통령 외에도 미국과 독일, 캐나다 등 여러 국가 정상들도 낙태권 명시를 요구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낙태 문제는 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에서도 핵심 쟁점 중 하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G7 성명에 대한 지지를 명시적으로 반복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번 소란에 대해 이탈리아 제1야당인 민주당(PD)의 엘리 슐라인 대표는 “이 나라 모든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지 않는 여성 총리는 우리에게 소용없다”며 “국가적 망신”이라고 비난했다. 논란이 커지자 멜로니 총리는 “G7 공동성명 협상 중 낙태 논란은 완전히 조작된 것이며, 논쟁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진화에 나섰다.

같은 날 가톨릭 국가 브라질에서는 임신 22주 이후 낙태를 ‘살인 범죄’와 동일시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놓고 들썩였다. 브라질 주요 여성 인권 단체와 시민들이 상파울루 도심 한복판 파울리스타 대로에서 낙태 불법화 반대 거리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소녀는 엄마가 아니다”, “강간범은 아빠가 아니다”라는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개정안 폐기를 의회에 요구했다. 앞서 브라질 하원은 지난 13일 야당인 자유당 소속 소스테네스 카바우칸체 의원이 발의한 이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상정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임신 22주 이후 낙태는 살인 범죄로 분류돼, 성폭행범보다 더 높은 형량을 받을 수 있다. G7 정상회의 참석차 이탈리아를 찾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제정신이 아닌” 법안이라고 비난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여소야대로 꾸려진 하원은 현재 거세진 반발 여론을 고려해 관련 논의를 중단한 상태다.

미국 정치권은 낙태약 사용에 엄격한 제약을 요구하던 청구를 거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향후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앞서 미국 대법원은 13일 먹는 낙태약인 미페프리스톤을 사용하기 쉽게 한 식품의약국(FDA)의 결정에 문제를 제기한 의사들과 낙태 반대단체들이 소송할 법적 자격이 없다면서 만장일치로 소송을 기각했다.

오는 27일 예정된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첫 TV토론에서도 낙태가 주요 의제로 등장할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보수 우위의 대법원이 2022년 6월 낙태를 헌법 권리로 보호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뒤로 여러 주 의회와 법정에서 낙태 찬반 진영 간의 다툼이 이어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낙태권이 올해 11월 대선의 핵심 공약으로 낙태권 보호를 내건 바 있다. 민주당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방침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낙태권이 민주당에 정치적으로 유리한 이슈라는 점을 의식해 ‘입단속’을 시키고 있다고 악시오스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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