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기 가계는 빚 줄이고, 기업은 늘렸다…경제주체 반응 달라져
2021년 8월 이후 본격화된 한국은행의 금리인상기 동안 핵심 경제 주체인 가계와 기업이 서로 다른 반응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가계는 고금리 국면에서 부채 확대에 조심하거나 줄이는 쪽으로 움직였다면 기업은 자금 조달·운용 면에서 통화 긴축 기조 본격화 이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한은이 최적의 통화 정책을 모색할 때 물가·성장률·고용 변수 외에도 경제주체별로 상이한 반응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3일 한겨레는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ECOS)을 통해 한은의 금리 인상이 시작된 2021년 8월 이후 올해 3월까지 2년7개월 동안 가계와 기업의 부채 흐름을 살폈다. 기준금리 변화가 가계와 기업 부문의 수요 미친 영향을 따져보기 위해서다.
이를 보면, 가계 부문 부채증가율은 2021년 하반기에는 경상성장률(명목 국내총생산 증가·전년동기대비 7.2%)을 소폭 웃돈 7.7%였으나 본격 금리인상기인 2022년 상반기에는 경상성장률(7.6%)에 견줘 부채 증가율(3.2%)이 크게 낮아졌다. 그해 하반기 가계부채 증가율은 0.2%로 해당 시기 경상성장률(7.8%)과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경상성장률이 4.8%인 가운데 가계부채는 외려 감소(-0.4%)했다.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1분기에는 가계부채가 다시 증가 폭을 조금씩 키우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형성되고 정책금융상품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런 흐름은 가계 부문에서는 통화정책이 그때그때 즉각적으로 시장에 파급되면서 소비와 자금운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짐작게 한다.
반면 같은 기간 기업의 자금 조달·운용은 가계 움직임과는 사뭇 달랐다. 비금융법인의 원화 장·단기채권 발행잔액은 2021년 3분기 502조6천억원에서 그 후 가파른 금리인상기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지난해 1분기(585조7천억원)까지 매 분기 6조~24조원씩 늘었다. 비금융법인의 분기별 장·단기채권 순발행액(발행액-상환액)도 마찬가지 흐름을 보였다. 금리 동결기에 들어선 이후엔 외려 채권 순발행액이 지난해 3분기와 4분기에 오히려 감소(신규 발행보다 기존 채권 상환액이 더 많음)했으며, 발행잔액도 같은 기간 정체(지난해 3분기·1천억원)되거나 감소(지난해 4분기·-1조8천억원)했다.
민간기업의 대출금(기말 잔액) 통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흐름이 관찰된다. 민간기업 대출금 규모는 2021년 상반기(1538조9천억원)부터 2023년 하반기(1916조원)까지 꾸준히 늘었다. 비금융법인의 총 금융부채 중에서 금융기관 차입금의 비중도 2021년 상반기 24.8%에서 그 후 계속 증가해 2022년 하반기에는 29.8%까지 커져, 금리 인상기에 일반 기업에서 채권발행과 금융기관 차입을 동시에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은 쪽은 ”가파른 금리 상승기인 2022년에 원자재 가격들이 급등하고 부동산 등 여러 자산가격이 크게 부풀려 있는 상태라서 기업마다 운전자금 조달 수요가 많아졌고, 또 당시엔 고금리가 아주 견뎌내기 힘든 정도는 아니어서 기업들이 금리인상(채권발행금리 상승)에도 불구하고 단기 채권이나 은행 차입을 극적으로 늘리는 식으로 자금을 조달·운용했다”며 “당시 시장금리 상승국면에 딱딱 맞춰서 기업이 채권발행 및 차입을 줄이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금리 동결 기조에 들어선 지난해 상반기부터는 경기가 나빠지고 누적된 고금리 발행부담도 커지는 등 시장 여건이 악화하자 채권발행 조달을 이제는 다시 줄여나가는 양상이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가계와 기업 부문은 최근 금리인상기에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인 셈인데, 한은은 그동안 “대내외 경제환경이 급변하면서 통화정책 파급 효과와 경로, 시차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를 곧잘 해왔다. 금리변동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반응 행태가 서로 달라지고 있다면 경제 내 총수요 조절을 목표로 하는 통화정책 결정방향에서도 어느 정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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