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유가족 “많은 위로 받아…시민들 한마디가 큰 힘”
“진상조사 위한 첫발 특조위 출범 앞두고 더 많은 관심 필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동규군의 어머니 안영선씨는 2년 전 겨울 서울 녹사평역에 차려졌던 분향소의 추위를 기억한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미처 돌볼 틈도 없이 안씨는 모욕과 싸워야 했다.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는 현수막과 확성기가 유가족의 눈과 귀를 어지럽혔다. 안씨가 조금이나마 위로를 찾은 것은 499일 전 분향소가 서울시청 광장으로 옮겨온 뒤였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시청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만난 안씨는 “녹사평역에선 매우 힘들었는데 시청 분향소에 와선 아이들도 햇볕을 더 많이 볼 수 있고 가족들도 위로를 많이 받았다”며 “시민들이 ‘잊지 않겠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함께하겠다’고 얘기해줄 때 너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참사를 기억하고 연대하는 공간이었던 시청광장 분향소가 16일 운영을 종료했다. 같은 날 시청 인근 부림빌딩 1층에 기억·소통 공간 ‘별들의 집’이 문을 열었다. 이전을 앞둔 이틀간 만난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위해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도 “새로운 장소에서도 기억하고 연대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오후 1시59분 열린 분향소 운영종료식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2024년 6월16일 서울시청 광장 분향소를 오늘로 마무리하고 새로운 길을 가도록 공식 선포한다”고 말했다. 그는 종료식을 찾은 유가족과 시민 100여명에게 큰절을 했다.
분향소를 떠나는 이들은 저마다의 기억을 떠올렸다. 고 강가희씨 어머니 이숙자씨에게 분향소는 유가족과 서로를 보듬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이씨는 “그리움에 사무쳐 울다가도 여기 와서 가족들과 얘기하다 웃고 밥도 한술 뜨면서 하루를 견딜 수 있었다”며 “다들 ‘가희 엄마 표정이 (지난해 4월 처음 분향소에 왔을 때보다) 제일 밝아졌다’고 얘기한다”고 했다.
길 위의 싸움이 길어지면서 가족들의 연대도 깊어졌다. 시청 분향소는 진상규명을 향한 투쟁의 상징이 됐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외치며 국회로, 용산 대통령실로 향할 때도 시작 지점은 시청 분향소였다. 이곳에서 유가족들은 장맛비를 맞으며 국회까지 삼보일배했고, 혹한 속에선 밤새 1만5900배를 했다.
고 문효균씨 아버지 문성철씨는 “분향소는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며 “지금은 특별법이 통과돼 서울시와 합의한 곳으로 이전하지만 만약 참사 조사가 잘 이뤄지지 않거나 후속 조치가 없다면 언제든 다시 길거리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시민들의 발걸음은 이어졌다.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시민들은 영정을 찬찬히 바라본 뒤 분향소에 놓인 보라색 리본을 챙겨갔다. 가족과 시청 인근을 찾았다가 분향소에 처음 와봤다는 임철씨는 “뉴스로만 이태원 참사를 접할 때는 잘 몰랐는데 직접 와서 영정 속 얼굴들과 이름을 보니 두 딸을 둔 아버지로서 가족들의 마음에 이입됐다”며 “오늘이라도 와보게 돼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임씨는 “건물 내부에 있으면 괜히 들어가기 어렵거나 모르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새로 옮겨가는 곳은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되고 접근성을 높이도록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차 서울을 찾았다는 폴 존스는 “이태원에 갔었는데 참사가 일어났던 골목이라는 것을 알아보기 어려웠다”며 “시민들과 정부가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제대로 된 추모공간을 만드는 노력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로 문을 연 기억·소통 공간은 오는 11월2일까지 운영된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영정 대신 159명 개인의 일상을 담은 사진이 액자에 걸렸다. 서울시가 공간 사용 기한(11월) 이후 대안을 제시하지 않아 이후의 운영 방침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분향소를 새로운 공간으로 이전하고 특별조사위원회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더 많은 시민의 지지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고 최유진씨 아버지 최정주씨는 “분향소를 설치한 지 500일이 넘었고 특별법도 통과됐지만 정부가 참사를 대하는 모습에 바뀐 것은 없다”며 “이제 막 진상조사를 위한 첫발을 내딛는 만큼 최소한의 책임과 재발 방지를 위한 방향성을 고민해 조사에 나서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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